2022412일 화요일. 맑음


날씨가 갑자기 한여름으로 더워졌다. 겨울에서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직행한 듯하다. 한 주간 전 서울집에 들어설 때만 해도 꽃 피우길 망설이던 마당의 튤립이 한껏 뽐을 낸다.40년이 넘은 서울집 뜰엔 어디서 왔는지 누가 언제 심었는지 기억도 없는 화초들이 사방에서 싹을 틔워 나를 놀라게 한다.


엊그제 수도계량기를 교체하러 온 아저씨가 교체작업을 하면서 은방울꽃 새순을 질겅질겅 밟기에 아저씨, 발밑을 조심하세요. 우리집 마당은 다 지뢰밭이라구요.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 발을 놓을 때도 뗄 때도 조심하세요.” 라고 일러주었더니 어리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저 어린 새싹들이야 추운 겨울을 나고서 겨우 고개를 내미는데, 육중한 걸음으로 짓밟아 버리면 그 생명이 끝나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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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울 온 지 한 주간에 마당의 단풍나무는 연초록 새 순을 소복히 뻗었고 산수유는 그 새 윤기를 잃어가고 담 밖의 벚꽃도, 덕성여대 뒷길의 화려한 벚꽃들도 이울어지면서 봄바람에 낙화로 흩날린다. “아아, 어느 새 올해도 봄 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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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청담 사는 방스텔라와 부천 사는 우리 셋째 순둥이가 위문을 왔다. ‘4.19에서 만나 외식을 하고 공원 산책을 하기로 했는데  그냥 우리 집으로 오라 해서 간단히 파스타와 브루스케타, 닭가슴살 샐러드로 국적 없는 식탁을 차렸다. 하지만 과일과 커피를 후식으로 들며 맘 편히 떠들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지인들 회식은 집에서 하는 게 최고라는 결론.

보스코는 무슨 일인가 협의하려 궁정동에 가서 교황대사를 만나 환담하고서 돌아왔는데 혼자는 좀처럼 외식을 않는 성미라 파스타 인 알리오 올리오를 해 주었다. 두 여자는 우리 집에서 놀다 남대문시장까지 함께 가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단다. 여자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말의 요술을 실컷 부리며 재미를 찾아내는 재주를 타고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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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이 쓴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를 보여주는 불평등한 선진국(북루덴스, 2021)이라는 두툼한 책을 읽는 중이다. 이여인터 과제물이다. 한국 경제의 거대한 불공정은 차치하고 우선 가사노동에서 남녀의 불평등도 시선을 끌었다. 한국에서 남성이 하루에 하는 무급가사노동이 평균 29분가량인데, 직장 여성도 하루 무급가사노동은 3시간 24(남성의 일곱 배)이란다


나이든 우리나라 남자들이 29분이라도 가사노동을 할까? 또 여자들의 3시간 24분의 가사노동으로 집안 살림이 돌아갈지 안 믿어진다. 나의 가사노동을 보면 12시간도 넘고 물론 무급이므로 노사협의도 파업도 잔업수당도 없다. 그저 자발적으로 기꺼이 하고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인다.


보스코는 오늘 아침 곽선생에게 가서 잇몸 치료를 마저 하고 왔다. 서정치과에 세 번을 다녀왔고 낼 모레 우정치과에 가서 앞니를 씌우고 오면 난곡의 치과병원도 세 번을 다녀오는 셈이다. 80대 노인이다 보니 보스코의 이번 상경길은 내내 병원순례로 이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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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뒷산 쌍문근린공원에 산벚이 한창이다. 40여년전 우리집 담밖으로 빙 둘러 심은 십여 그루 벚나무는 연립이 들어서며 다 베어져 나가고 딱 한 그루 살아남았지만 산벗들은 인간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편한 생을 누린다.


내 왼손에 간이 깁스를 해서 조심스러웠지만 지팡이를 짚고 뒷산 능선을 따라 두 시간 넘게 산행을 하였다. 방학동 뒷산 혜화동 옛 묘지를 지나 도봉산 발치라고 할 깃대봉까지 가는 길엔 진달래, 양지꽃, 싸리꽃, 산벚이 원 없이 피어있다. 옛날엔 빵기와 빵고가 병협이 병호, 세레나와 마리아, 정민이와 미선이랑 놀던 산비탈이다. 50년 넘는 세월을 우리가 아직 남아 근린공원을 지키고 있다. 자연에 에워싸여 흙을 밟고 사는 단독주택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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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얼었다 녹았다를 거듭하던 테라스 바닥 타일이 솟아올라 깨졌다. 이웃 사는 정씨 아저씨를 부르니 후딱 와서 손질해 주었다. 이렇게 단독주택은 타인이 꼭 필요함을 집주인들에게 일깨워준다. 담밖으로 내다보며 막 담근 열무김치 그릇도 넘어가고 상수엄마가 하루 종일 끓여낸 감자탕 냄비도 담을 넘어온다. 이제는 그 다정한 인심도 다 사라져가는 중이고, 총총히 설치된 CCTV에 그 흔하던 좀도둑도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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