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7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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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다고 쓰는 내 마음이 맑지 않다. 서울집 정원에 들어서니 흙먼지가 나도록 풀들이 목말라 있다. 내 눈과 귀에는 저들의 소리가 보고 들리는데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가닿지 않을까? 이상하다. 서울에서는 하얀 찔레도 흔하지 않은데, 마당 절구에 물먹으러 온 새들이 보은 차원에서 꽃씨를 물어 왔는지 대문 입구의 담장 옆으로 찔레가 길게 가지를 뻗었다. 잘라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옆집 원룸에 사는 덕성여대생들이 담밖으로 늘어진 하얀 찔레꽃을 보고 잠시라도 시심에 젖어 보라고 담넘어로 넝쿨을 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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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오빠 등에 잠들었던/ 철부지 누이가 고운 여인 되어

소꼽친구 돌이네 시집을 갔다/ 구름 머무는 찔레꽃 숲길 돌아

떠날 때 울던 누이가 오려는가/ 종일 앞산 까치만 울어댄다.“ 

(공재룡, “찔레꽃에서)


문정 아짐들 함양읍에 나가면 '병원투어'를 한다더니, 시골 노인들 자식들 사는 서울 가면 으레 병원 투어를 한다더니 우리 둘이 딱 그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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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10시에는 서정치과 곽선생에게 들러 우리 둘 다 스켈링을 받았다. 여러 해 만이다. 그런데 보스코의 토종 옥수수 치열 뒤로 난 앞니가 뿌리는 썩은 채 떠 있어 크게 손질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발치를 해주는 우정치과 단선생에게 오후 4시에 진찰을 예약했다.


오후 2시에는 새 교구장으로 취임하신 정대주교님을 예방하였다그분은 가르멜수도회 수도자답게 어딘지 다른 모습이어서 우리 마음을 안심시키신다앞으로 15년은 한국교회의 책임자로한국사회가 기대하는 어른으로 처세해야 할 분이니 어깨가 무거우리라선임 두 분 교구장과는 보스코가 지면(紙面)을 거친 논쟁으로 소원했지만새 교구장님은 영성으로도 꾸준히 교우들을 심화시켜나갈 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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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75803

http://donbosco.pe.kr/xe1/?mid=newspaper&page=3&listStyle=list&document_srl=162558

http://donbosco.pe.kr/xe1/?mid=newspaper&page=3&document_srl=172244


전철을 타고 서울을 돌면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얼굴만으로도 내게 이야기를 건넨다. 서울대역 부근의 우정치과에 가서 보스코의 썩은 이 두 개(80여년 봉사해온 치아여서 고맙다는 작별인사를 했다)를 뽑고 덧씌울 앞니를 본뜨고서 돌아오는 전철에서.


내 곁에 60대 중반의 아줌마가 앉았다. 차림과 두 손을 보니 청소나 파출부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 같다. 내 팔뚝도 휴천재 텃밭 흙을 주무르고 파느라 손 밑은 새까맣게 흙이 끼고, 이틀간 서울집 정원 장미넝쿨에 찢기고 부어 허옇게 터 있었다. 가방에서 바셀린 통을 꺼내든 아줌마가 자기 손에 바르고 나를 흘끗 쳐다본다. 내가 서슴없이 손등을 내밀고 나두!”라고 하니 많이?”라고 묻는다. “, 많이.” 아줌마의 측은지심이 듬뿍한 표정을 내 손등에 얹는다


전철을 내릴 때까지도 바셀린으로 번들거리는 두 여자의 두 손은 서로가 동지임을 끈적하게 일러 주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부비며 사는 도시의 생활이라면 외롭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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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에 한 번씩 가는 보스코의 양압기 처방을 위해 오늘 오후 3시에 은평성모병원엘 갔다. 양압기 착용 지속여부만 정하면 될 텐데 담당의는 보스코가 제출한, 다른 병원의 검사결과(대형병원이 진찰하면서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오라고 한 것은 상당한 배려로 보인다)를 보고서, 골다공증이라며 하드칼츄어블이라는 약을 처방하고 6개월에 한 번씩 맞으라며 무슨 주사도 처방했다. 그런데 그 주사를 맞고 보니 의료비가 거의 10만원! 공단 부담까지 합친다면 20만 원 짜리 주사여서 이건 아닌 데싶었다. 언젠가는 보스코가 과체중이니 배를 빼야 한다면서 무려 15만 원짜리 주사약을 처방한 적도 있었다!


다음엔 그 의사가 처방하는 주사나 약은 신중해야겠다. 은평에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건물을 새로 지었으니 어디에선가 돈을 갹출해야겠지만 환자가 돈으로 보여서는.... 강남 다운 성모병원’ ‘여의도 성모병원’ ‘은평 성모병원모조리 성모(聖母)’라는 자애로운 상호를 달았지만 저렇게 거창한 건물에서 저렇게 으리으리한 설비를 갖추고 저렇게 많은 의료인들이 종사하려면 가난한 이들마저 보스코 같은 비싼 처방을 받을 경우 그 부담이 퍽 버거울 게다


가난한 사람들이 적은 돈을 내거나 무료로 올 수 있게 소박한 의료를 행하는 교회 병원들, 미아리의 성가 병원, 광주의 성요한 병원, 영등포의 요셉 의원 등이 그래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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