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9일 화요일, 맑음
휴천재 마당 화단에 수선화는 눈부시게 피었지만 튤립은 한 송이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작년에 사다 심은 20여개 구근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의심이 가는 건 두더쥐 영감밖에 없다. 오늘 놀러 온 도메니카도 매해 열심히 무슨 구근이든 구해다 심는데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탄식한다.
우리도 작년 봄부터 두더지 퇴치법을 썼다. 땅속에서 이쪽저쪽 헤집고 다니는데 앞은 못 보지만 귀가 예민한 두더쥐여서 그놈들을 퇴치하려면 고춧대 쇠막대를 세우고 빈 플라스틱 물병을 거꾸로 꽂아 놓아 바람에 달그락거리게 하면 두더쥐가 짜증나서 도망간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런 조처를 하고서도 화단에도 텃밭에도 두더지들은 여전히 굴을 파서 흙을 두둑하게 지표면 위로 올려놓으면 잘만 돌아다닌다. 누가 휴천재 근방에 사는 두더지 영감네 창고를 불심검문하면 먹다 남긴 튤립 구근이 몇 개 쯤 보일 듯하다.
휴천재 마당 끝에 화단을 만들고 꽃밭을 만들어도 아랫집 트럭과 자가용이 꽃밭을 딱 막고 서 있으면 꽃을 구경하기 힘들다. 30여년전 집을 새로 짓고서 몇 해는 마당에 잔디를 정성껏 가꾸었다. 그러나 트럭과 택배차가 수시로 드나들어 잔디가 견딜 재주가 없다. 또 처음에는 잔디에서 잡초를 뽑는데 들인 시간과 공력이 아까워 속상했지만, 우리는 ‘귀촌’해서 노년 인생을 누리는 중이고, 아랫집은 ‘귀농’해서 생존을 경쟁하는 중이어서 우리가 마음을 접었다.
어제 오후에 보스코가 망울진 배나무와 자두나무에 소독을 하였다. 재작년 그 풍성하던 자두를 작년에는 단 한 개도 못 따먹었고, 여러 해 소득이 없던 배나무에서는 그래도 얼마간 열매를 보았으므로 금년에는 개화 전에 소독을 해서 제대로 병충해를 막아보겠다는 생각이다.
오늘 아침, 식사도 하기 전에 드물댁이 서재 뒷문을 두드린다. '오전엔 거문굴댁 장을 담가 주고나서 오후에나 오겠다'던 사람이어서 웬일이냐고 물으니 그집 항아리에 어제 풀어놓은 소금이 미처 녹지를 않아서, 먼저 우리집 토란을 심어주러 왔단다.
보일러실에서 겨울을 난 토란을 꺼내 함께 골랐다. 작년에 키워 굵어진 둥치를 뿌리채 심으면 토란꽃을 볼 수 있다기에 굵은 토란은 넓게 자리를 잡아 한 이랑을 따로 심었다. 토란을 키우면 드물댁은 토란대를 탐내고, 내 친구들은 토란을 가져다 삶아 먹고, 나는 토란국을 끓이고 꽃 구경만 하더라도 동상삼몽(同床三夢)으로 행복해진다.
감자를 놓았겠다, 토란을 심었겠다, 옥수수 씨앗을 감자 두럭 옆구리에 박아 넣었으니 휴천재 텃밭 농사는 매듭을 지은 셈이다. 내달 장에서 고추, 가지, 오이 모종을 사다 심으면 봄농사는 끝난다. 겨우내 가믐으로 빌빌거리던 쪽파와 마늘이 몇 차례의 봄비에 실하게 자라 올랐다. 텃밭 주변의 갓도 탐스럽기에 갓을 베어 파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곁에서 파를 까주며 드물댁이 묻는다. "작년에는 파를 세 이랑이나 심어 퍼내더니 이번 파김치는 누구한테 보낼 생각이오?"
심순화 화백에게서 어제 전화를 받았다. 지난 3년간 수원교구 주보에 주일복음을 동양화로 그려왔는데 그 작품 중 70여점을 4월에는 광주 대교구에서, 그 다음엔 그대로 가져다 의정부 교구에서, 마지막으로 수원 교구에서 개인전을 연 후 그림을 모두 판매하여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에 보낼 생각이란다.
3년 전 심화백이 휴천재에 놀러왔을 때, 수원 교구에서 그 해의 주일복음을 그림으로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자기 몸이 너무 지쳐 있어 거절하고 싶다 하였다. 그러자 보스코가 "화가는 그림을 그리다 죽더라도 기회가 닿을 때 그려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하던 말에 용기를 내어 그리기 시작했고, 그 격려 덕분에 3년간 심혈을 기울인 작품 활동을 하게 되어 고맙다는 전화이기도 했다.
더구나 우크라이나를 돕겠다는 그미의 마음이 너무 고와 그미가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고 깍두기를 담가 내일 택배로 보내줄 참이다. 그미의 그림을 보면 모든 인물이 죄다 그미의 얼굴과 코를 닮았는데 그미의 그림들이 내게는 모두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게 참 이상하다.
심화백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작품들
파김치와 깍두기를 담고 나니 저녁 7시가 넘었다. 유영감님이 부치던 논에 우리 텃밭에서 거둔 호박줄기나 고춧대,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대궁을 쌓아둔 터라 논에 물을 대고 갈아엎기 전에 태워 없애야 했다. 우리 마을 담당 '산불조심 아저씨'가 자기들 퇴근하고서 처리하면 일 없다고 일러주어 불장난을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득달같이 산불조심 아줌마(백연마을 담당이란다)가 달려왔고 잠시 후 물차를 끌고 아래 동네 담당이 달려왔다.
"어이쿠, 교수님이시네요!" 인사하는 사람을 보니 용환씨. 그가 휴천재 옆 구장네 논을 갈러 오거나 벼를 추수하러 오면(조그만 체구에 힘이 천하장사인 아내를 데리고) 내가 간식을 챙겨 주던 일이 고마웠던지, 그가 불을 마저 태우고 소방차에서 물을 받아 말끔히 끄고서 떠났다. 이렇게 잔정을 나누는 맘씨 좋은 이웃들이 있어 저녁 나절이면 아직도 제법 쌀쌀한 지리산 자락의 봄밤이 불땀처럼 환하고 따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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