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7일 일요일. 흐림


우리집 네 식구 중에 보스코만 빼놓고 셋이 코로나에 걸렸으니 그 바이러스 위력 정말 대단하다. 나는 회복되고 나서도 아직 가래와 기침이 가끔 나와 뒤끝 작렬하는 오미크론을 맛보는 중이다. 빵고 신부는 회복되자마자 열심히 사순절 강연을 다니고,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갔다가 스위스로 돌아왔던 빵기는 코로나 걸렸다 닷새 만에 회복을 보고서 아프리카 나이제리아 난민촌으로 다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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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제리아는 '보코하람'을 중심으로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세력이 자기네 우두머리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위한 복수'라는 명목으로 다시 선전 포고를 하고서 각종 테러를 일삼자 거기서 발생한 피해자들과 피난민들을 도우러 간 길이다. 우크라이나와 그밖의 분쟁지역에서 하루도 편히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되레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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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부당한 일이 닥치면 누구나 분개한다. 그런데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분노할 때,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세계 정의'가 실현된다 하지 않던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탈리아 시간으로 지난 25일 저녁 630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파티마의 성모님'께 봉헌하고서 세계평화를 비는 미사를 드리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같은 지향으로 기도하자고 호소하셨을까! 우리도 그 기도문을 다운받아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를 드렸다. 보스코는 '파티마의 제3비밀'을 염두에 두고 늘 불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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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 담양에 나간 길에 사온 완두콩과 상추 그리고 루콜라 씨앗을 포실포실 메마른 휴천재 텃밭에 서너 알 씩 묻어 준 적 있었다. 저게 싹터 오를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런데 땅이 포근해지면 제일 좋아하는 게 고양이다. 그 넓은 땅을 이쪽저쪽 파서 똥을 싸고 묻는 화장실로 쓰다 보니 씨앗이 뒤집혀 밖으로 나오고 배고픈 물까치가 놓칠 리 없다


그래도 요행이 살아 남은 씨앗은 요 며칠 내린 봄비에 새싹을 내보이며 반갑다고 손을 흔든다. 우리 딸들은 봄철은 좋은데 '어무이'인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싫어 봄이 그다지 안 고맙다고 푸념한다. 그래도 흙을 만지고 그 흙과 교감을 하며 살아가는 날들이 얼마나 내 건강에 이바지하는지 모르나 보다. 미루네 빼고 세 딸네가 모조리 온 집안이 코로나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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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에는 감자밭 바깥으로 옥수수를 서너 알씩 심어 넣었다. 세 이랑을 심었으니 저게 커서 익기 시작하면 우리 입은 신나는 하모니카 연주로 호강할 게다. 토란은 아직 안 심었지만, 시인 홍해리 선생님 말씀대로, 늙은 토란 둥치째 심으면 올가을엔 어쩜 토란꽃을 볼 수 있겠다.


보스코의 사순제4주일 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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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로나 감염으로 거의 3주 가까이 임신부님 오누이랑 미루네를 못 봐 궁금하던 터에 미루네 회사에서 주일미사를 드리자는 초청이 와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다. 남해 형부네가 빠져서 서운했지만, 판데믹이 하도 기승을 부리니 기저질환 땜에 형부가 많이 걱정스럽다. 형부네도 작은딸이 양성이 나왔다니 심경이 퍽 불안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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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미루 동생 부부한테서 육회비빔밥을 대접받았다. 산티아고 떠날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는 임신부님과 이사야의 기대도 얘기 들었다. 근 2년이나 미뤄진 순례여행이다. 인생도 여행도 편안하게 길을 떠나려면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게 만고의 진리. 산티아고를 걷자면 옷 한 벌도 없었으면 하고 심지어 칫솔 하나도 짐이 되더라는 봉재 언니의 회고. "옛날 어르신들 서울 가려면 눈썹도 무거워 빼놓고 간다" 했다는데, 이제 얼마 안 남은 인생길에 나도 너무 많은 걸 아직도 쥐고 있으니 이 짐을 어이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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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지난번 부산에 주문해서 집에 와 있던, 서재 창문에 새로 달 수평 블라인드 커튼을 설치해 주러 스.선생님이 도정에서 내려왔다(마루와 침실들은 30년 전의 주름 커튼)보스코가 그래도 시다’(보조)를 하니 생각보다 쉽게 오래 된 버티칼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새로 온 커튼을 달았다. 휴천재 지은 지 거의 30여년 만에 이층의 창문들이 이건창호로 바뀌어 조망과 난방이 개선되었고, 서재는 새 커튼으로 단장을 마쳤다.


두 남정의 작업 동안 나랑 체칠리아는 텃밭에 내려가 원추리와 신선초, 쪽파를 뜯어 내일 찬거리를 마련했다. 이렇게 산중 인생의 나날이 이웃 덕분에 봄나물처럼 감칠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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