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7일 목요일. 흐리다 비


먼 산부터 잔뜩 찌푸리는 품이 그럴듯한 비라도 한바탕 쏟아주겠다는 태세인데, 워낙 3개월간 속아와서 안 믿어지면서도 눈은 자꾸 테라스로 간다. 테라스에 내다놓은 우리 집 측우기빨간 딸기그릇에는 1센티 못 되는 비가 염치없다는 듯 딴청을 부린다. 구장네 부부는 관리기로 엊저녁내 밭을 갈더니 오늘은 부부가 감자 이랑을 타고 앉아 멀칭을 하여 그림처럼 만들어 놓았다. 여기저기 동네아낙들이 부산스럽게 봄을 맞고 있다.


[크기변환]IMG_9590.JPG


드물댁이 휴천재 곁을 오르내리며 나를 찾는 것 같은데 일부러 모르는 척 내다보지 않았다. 그동안 왜 얼굴 안 보여주었냐 물으면 오미크론을 탓해야 하는데 그런 소문은 해지기 전 문하마을 전체에 알려질 게다. 이장 각시가 코로나 걸렸다 소문나자 버스에서 내려 멀리서 걸어오면 행여 마주칠까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순식간에 마을 사람들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나는 어젯밤 12시로 자가격리 해제가 됐다. 밭에 나가 일하고 집안을 돌아보며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는데, 공연히 집안에서 격리하라니까 안달이 나서 사람들이 더 서성이나 보다. 오늘 아침에는 개운한 맘으로 보스코랑 '티벳 요가'도 했다. 거의 일주일만이다. 


[크기변환]IMG_9640.jpg


그래도 제일 시간이 잘 가는 상책이 책 읽는 일이라 요 며칠 새 크고 작은 일곱 권의 책을 읽었다어제는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관계된 친구들이 '주책처방'이라는 책읽기 모임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로 언어의 높이뛰기를 읽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 혹은 집이라고 하는데(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철학자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언어를 특히 줄여서 하는 말을 따라가자면 높이뛰기가 아니라 사까닥질’(자맥질)을 해야 할 판이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사물 존대의 표현이 가관이다. '신상품이지만 작년 상품보다 저렴하게 나오셨습니다.' '이 옷은 신상품이십니다.' 병원에서는 '진료실로 들어오실 게요.' '주사실로 이동하실 게요.' '돌아누우실 게요.' 이건 평서문을 명령문처럼 행동을 요구하는 공손한 표현이란다. 심지어는 '제가 아시는 분' 같은 말은 화자 자신을 높이기도 한다.


문법을 훼손해도 좋으니 공손성을 유지하라는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말이란다. ‘손님은 왕이다에서 갑질하는 소비자에 의해 한글이 정말 고생이 많다. 완전히 망가지는 중이다. 이런 언어를 바로잡을라치면 듣는 사람들이 왜 존대말을 안 쓰냐고 항의를 한다니 과연 존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봄이 오니 먹이가 생겨 보스코 서재 앞 가문비나무에 새들도 분주히 오간다 

[크기변환]IMG_9603.JPG


한 열흘 장을 못 봐서 살 물건이 많아 오랜만에 읍내에 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는 했지만 보건소 마당에 코로나 검사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 내가 가까이 가자 오히려 반가워 하면서 검사하러 오셨냐고 묻는다. 요즘은 오미크론의 바이러스가 약해져 감기보다도 수월하다니 정부의 감시하에 자가격리 안 당하고 아예 혼자서 알아서 아파버리기로 했나 보다.


친구 어머니가 지난 1월에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는데, 퇴원 후 기구 착용을 소홀히 하다 2월부터 무려 네번 째 입원을 하셨단다. 그러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코로나가 걸려 모시고 간 내 친구까지 병원에서 격리되었단다. 더위를 못 견디는 친구인데 병실의 더운 공기가 견디기 제일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울 엄마가 효도병원에 입원하기 전 밤마다 복도엘 마실 다니시다 넘어져 이마도 깨고 뺨도 찢기는 등 탈이 나자 실버타운 담당자가 나섰다. 계단에서라도 넘어지면 실버타운이 책임질 수 없으니 돌봐주는 사람이 배정되어 있는 아래층 병원에 모시자 했다


[크기변환]IMG_9616.JPG


그런데 병원에서는 입원환자를 그때마다 화장실 모시고 다니기가 번거롭다고 간호사들이 강제로 기저귀를 채우고 거기다 볼일을 다 보라고 윽박지르더란다. 정신이 멀쩡한데 기저귀에 볼일 보는 걸 엄마는 너무 힘들어하셨다. 설득도 하고 야단도 쳐 엄마도 결국 받아들이면서 엄마는 심리적으로 자존감을 완전히 상실하셨다. 사람은 자존감을 놓치면 삶의 의욕도 내려놓는다.


26개월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고 코로나로 자녀들마저 면회를 못 오자 절망한 엄마는 100세를 사신 당신이 더 긴 시간을 견디기 힘들다며 스스로 곡기를 끊으셨고 그런지 18일만에 엄마의 생에 커튼을 내리셨다. 늙는다는 것, 내 몸을 내 맘대로 못하는 것, 생각 만으로도 너무 우울해지는 이 일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머쟎아 보스코에게, 그다음 내게 곧 닥칠 일인데....


[크기변환]IMG_940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