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8일 화요일. 맑음


밤이 너무 길다. 영원히 새벽이 찾아오지 않는 길목에서 밤새 촛불은 다 타버리고 뜨거운 마지막 촛농을 손등에 떨구며 꺼진다. 저만치 다가오는 새벽의 발소리도 귀에 닫지 않는다.


어제 오후 따뜻한 날씨에 산책 잘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로 짓는 진이네 집공사 천정과 지붕 올린 것 구경 좀 가자는데 힘들어 싫다는 그를 얼러 굳이 언덕길을 올라갔다. 저 무거운 철근과 판넬만으로 멋진 집을 그 작은 거인들이 상큼하게 골조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진이아빠, 진이삼촌, 진이남편 셋이서! 얼마후면 '함양 살기 6개월' 프로에 월세로 나갈 집이나 꼼꼼히 정성스레 짓는 모습은 전문가의 솜씨에 애정을 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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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덕촌댁네 무덤 옆 조그만 텃밭에 들어갔다. 기둥을 하는 고춧대로 파란색 그물 망으로 둘러쳐 있었다. 담을 넘어 들어가 미치광이나물냉이를 뜯었다. 멀칭한 비닐 틈새로 돋아난 풀은 옆으로만 뻗어가 힘자랑하는 청년 같다. 저것들이 지내온 시간만큼 대접을 못 받고 스러지면 내년이면 열 배 백 배로 식구를 늘릴 수 있다.


냉이에게서 나는 봄의 향기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상하다, 몇 해 전부터 모든 식물은 향기를 잃어 간다. 벌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꿀을 찾기 시작하는 초봄이면 봄나물이라며 돋아나는 풀들도 자기 나름의 향기를 품으며 나비와 벌을 불렀다. 그러나 꿀벌이 사라져간 자리엔 꽃들도 향기를 발하지 않는다. 초여름 아카시아도 장미도 심지어 치자꽃도 예전 같지 않다. 냄새에 민감한 보스코에게 냉이 향을 맡아 보라고 코밑에 갖다 대주니 아무 냄새가 안 난다고, 몇 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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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6시부터 그 코가 문제였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보스코가 주르르 피가 흐르는 코를 웅켜잡고 일어섰다. 그렇게 흐르다 멈추다를 두세 시간 간격으로 밤새 7번이나 피를 쏟아냈다. 그가 초딩 때 한 반 동무랑 변소 뒤에서 겨루다 얻어 터져 코피를 본지 70년 만에 피를 본 그에게서 심장은 부정맥으로 방망이질 하고 출혈 때마다 측정하는 혈압은 100~190까지 널을 뛰었다.


새벽 세시가 넘자 김원장님에게라도 연락해보자는 걸 달래서 6시에 새벽기도를 바치고 있을, 우리 주변에서 제일 부지런한 소담정 도메니카를 불렀다. 그미는 단숨에 달려와 보스코의 코에 바셀린 솜을 갈아주고 심장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었다. 요동치던 심장도 차츰 평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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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나 국내 대선 정황이 그리스도의 수난처럼 우리에게 고통스럽다. 그러나, 죽어야 살아나는 부활의 기쁨과 신비를 신앙의 개조로 삼는 우리는 정치적 고통곧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가르친대로, 신앙에서 우러난 사회적 사랑으로 가슴을 앓으며 주님의 수난에 동참한다. 이런 고통이 몸으로도 오고 그것을 참아내야 현실에 동참한다는 일깨움 같다.


고통스런 밤을 보낸 보스코가 평정을 되찾고 곤히 잠들어 있는데 임실에서 김원장님이 휴천재까지 오셨다. 당신이 꼭 필요할 것 같아 오셨단다. 그분의 든든한 왕진으로 보스코는 원장님을 본 순간 이미 치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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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은 우리를 데리고 남원으로 가서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코 치료를 받게 하고, 보스코가 미진하게 생각하자 다른 이비인후과까지 데리고 가서 앞서 받은 치료가 맞다는 확인까지 시켜 주었다. 심지어 가정의학과에 가서 혈압약까지 사게 했다.


저 모든 절차를 밟아 자기 코피를 받아들인 보스코가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첫째, ‘코피 나서 사람 죽는 일은 아주아주 드물다!’ 둘째,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의사들이 어떻게 환자를 다룰 수 있는가?!’ 매사에 절대로 설득을 않고 본인이 스스로 깨닫게 인내를 다하느라 김원장님 속으로 맘고생 많으셨으리라 송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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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끝났고 내일은 대선 날! 우리를 생사람 잡듯 마음 졸이게 만든 반년 세월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주변의 자매들과 바른 후보를 뽑는 9일 기도를 마지막으로 함께 올린다국민은 주어진 투표권으로 자신과 민족의 미래를, 우크라 사태까지 초래할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의 뜻에 맡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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