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8일 화요일. 맑음


몹시 추운 날 스텔라를 시장길 다리께서 만났다. 강바람이 유난스러워 잔뜩 웅크린 내가 안됐던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씌워주고 내 옷깃을 여며주고서 다정함이 병인 그미는 찬바람 속으로 만보(萬步)를 걸으며 다리 건너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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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요일 내게 시간이 나니 집으로 식사하러 오라고 했더니, (‘휴천재일기에 의하면) 내가 매일 밥만 하니 하루라도 자기가 대접을 하겠다는 초대가 왔다. ‘우리딸엘리나 순둥이, 미루나 꼬맹이까지 내가 밥하는 걸 몹시 싫어한다. ‘내가 해주는 밥이 입에 안 맞나?’ 억지 추측을 해보지만 '엄마의 고생'이 안쓰러워서임을 모르지 않는다. 변함없이 손님을 부르고 대접하는 보스코가 있어 다행이다.


어제 스텔라가 대접해 주는 점심을 먹으며 그미의 라이프스토리를 들었다. 큰딸이던 자기 나이 스물에 늦둥이 막내 여동생이 열 살 적에 어머니를 뇌졸증으로 보내드렸단다. 그런데 성당에서 오신 분들이 어머니는 하느님 나라에, 좋은 곳으로 가셨다, ‘하느님이 사랑하셔서 데려가셨다’는 둥, 사별의 슬픔에 위로 치곤 참 고약하게 들리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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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그렇다 치고 엄마 없이 살 열 살 짜리 막내를 보니 그런 말이 너무 원망스러워 오랫동안 성당을 못 나갔단다. “오빠 라자로가 죽어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성경에 쓰여 있는 터에 '하느님이 사랑하셔서 엄마를 데려가셨다'(?)


먼 훗날 자기 딸이 호주로 유학 가서 잠시 딸 곁에 가 있었는데 밤이면 무섬증이 들곤해 성당을 찾았단다. 전화로 문의하니 어느 늙수그레한 외국인이 집까지 찾아와  차에 싣고서 성당에 데려다주더라나? 그런데 성당 사무장 쯤이려니 했던 그 노인이 본당신부님이시더란다. 오래 냉담해서 고백성사를 받고 싶은데 영어가 안 된다는 말에도 하느님은 다 알아들으시니 한국말도 하세요. 그리고 끝났다는 말만 영어로 하세요." 하더란다.


그 사제의 자상한 배려로 다시 찾은 신앙의 기쁨으로 지금은 나날이 충만하다는 이야기하느님의 셈법은 우리가 모르고 그분의 끈기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안 놓으신다눈이 펑펑 내리는 강변길로 만보걷기를 하며 사라져가는 그미의 뒷모습에는 하느님과 함께라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어제 저녁에는 오빠한테 내려갔다. 오빠는 늘 혼자여서 모처럼 사람을 만나면 얘기가 끝나질 않는다(남동생들이 이빨이라고 부르는데 요즘 말로는 틀딱’). 그를 입막음 하러 "이번 선거에 누구를 찍을 꺼야?"는 뻔한 질문을 던지니 이아무개는 완전 미친X이고 윤아무개는 검찰이어서 지가 법이니 제멋대로 나라를 말아먹을 X이란다. 의외의 답에 "그럼 누굴 찍어?" 되물으니 허경영!’ 이유는 딱 하나, ‘대통령이 되면 국회의원들을 사그리 삼청교육대로 보내겠다!’는 공약 때문이라나? “저런 쓰레기들은 몽땅 삼청교육대로 보내는 게 맞다!”는 오빠의 선언은 자기 매부가 대사로 임명 됐을 때도 빨갱이가 출세했네?”라던 멘트였으니 과연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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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물에 떠 있으려면 얼마나 부지런히 발을 저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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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건 말은 그렇게 해도 속은 따뜻하고 어렸을 적부터 나를 끔찍하게 사랑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가 쓰시던 '노리다께' 접시들도 챙겨서 싸주면서 모처럼 내리던 눈길을 걸어 집으로 올라오는 내가 넘어질까 어찌나 걱정을 하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빠 나 살아 돌아왔어!'라는 신고전화를 해야 했다


사람들의 말 속에 숨은 그림을 알아보는 일은 우리 삶에서 중요할 뿐더러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심전심 더 쉽게 감지된다. 늙으면서 아마 사람이 단순해져서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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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보스코랑 오랜만에 우이천변을 걸었다. 원앙, 청둥오리, 비둘기, 해오라비가 추위에 굼뜬 물고기 사냥에 열을 올리고 사람들은 모처럼 풀린 햇살을 받으며 새들의 물놀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밤늦게 지리산 가져갈 물건을 1층에 내려다 놓고 자동차에 싣고 하니, 이젠 돌아갈 시간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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