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3일 목요일. 맑음


서울은 지리산 보다 5정도는 더 춥다. 휴천재는 서남쪽에서 지리산이, 북쪽으로는 법화산이 찬바람을 막아주고 양옆에서 법화산 아랫줄기가 문정리를 조심스레 감싸 안아 느낌 만으로도 따뜻하다. 그곳에서는 시간도 더디 가고 서둘러야 할 일들도 별로 없어 우리 두 노인 발걸음 만큼이나 매사가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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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 8, 의정부에 있는 정태현 신부님이 설립한 '한님성서연구소'에 간담회를 하러 가는 보스코를 창동역에 태워다 주고 집에 돌아와 차를 놓고는 나는 지하철로 약수동 국민은행에 갔다. 1997년에 lMF로 인해 무너진 우리나라 경제사정으로 국민의 대부분이 고생했듯이, 안식년을 맞아 로마에 객원교수로 초빙받아간 2년간의 겨울은 더없이 참담했다. 프로판가스로 난방을 하는 주택이었는데, 밤이면 침대 속에 깔아 놓은 전기담요로 추위를 피했고, 낮이면 보스코는 쟌까를로 신부님이 내어주신 C.N.0.S.의 따뜻하게 난방된 사무실에서 아우구스터누스의 신국론를 번역했고, 신부님들만 계신 곳이기에, 나는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담벼락 앞에 차를 세우고 책을 보거나 졸았다.


집을 세 주고 안식년 가며 그 셋돈을 친정에 맡겨 놓았지만 그 돈은 다 날아가 2년 후 돌아와서는 전세를 빼줄 길이 없어 은행융자를 냈었다. 힘든 친척도 도울 겸 빌린 돈이 무려 8! 오래 걸려 빚은 갚았는데, 그간 근저당 설정을 안 풀었다는 통보를 최근 받고 20여년 지난 오늘에야 근저당을 풀었다. 돌아보면 사고는 내가 치고 돈 벌어 갚은 사람은 보스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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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더러 당신은 정말 경제 개념이 없어.” 라고 놀림 반 탄식 반의 이야기를 하는데, 내 대답이 더 기막힐 게다. “여보, 당신은 내가 부동산 투기라도 해서 돈방석에 앉혀주기를 바래요? 그랬더라면 당신은 망가지고(어느 면에서?), 그렇게 하는 건 전순란이 아니라구요. 내가 당신을 굶겼어요, 헐벗게 했어요? 남에게 궁상맞게 보이게 했어요, 우리 집 온 사람 섭하게 돌려보낸 일 있어요?” 이렇게 큰소리치면 보스코는 그래! 전순란 그러고도 기죽지 않아서 장하다!” 한 마디 하고서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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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장하다는 말을 듣는 내가 할 일은 남편을 (하늘처럼 모시지는 않지만) ‘충실한 베이비시터로서 최선은 다 한다. 어제 같으면 은행에서 돌아와서, 그가 강연 끝나는 시간에 맞춰 창동역으로 마중 가 그를 싣고 보훈병원에 모셔가 심장 체크를 하고, 그를 앉혀 놓고 바깥 약방에 가서 약을 타고, 부리나케 가족 상봉을 위해 빵고신부를 찾아가 저녁을 먹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졸음 운전으로 돌아오니 밤 9.


오늘은 그의 무호흡증과 코골이 때문에 받는 양압기 처방 연장을 위해 은평성모병원엘 데려갔다가, 호천이네에 들르고, 정릉 한목사네도 들러 그집 딸내미가 내게 가져온 선물을 받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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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호흡기 내과 선생님이 보스코에게 팔십이 되셨네요.”라고 인사하기에, 내가 나서서 너무 많이 살았죠?”라고 대꾸하니(병원에 가면 선생님 문진에 내가 대답을 다 한다.) 선생님은 예상외로 “80은 요즘 젊은 거예요. 오늘도 108세 할머니가 양압기 처방받으러 오셨는데요.”라는 대답이다


누구 말대로 재수 없으면 당신 120까지 살아!”라는 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요양병원 침대에서 기저귀 차고 영양제 주사나 뉴케어로 연명하는 비인간적인 생명연장에 강한 반감을 갖는 이들의 표현이리라. 의료보험비만 내고 병원엔 갈 일도 그럴 시간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염치없는 틀딱이 되어버렸으니 이 일을 어쩌나!


한국일보에서 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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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사태'가 닥치자 이재명을 무고했다 자살한 듯한 어떤 남자를 두고 이재명 살인의혹!”을 제목으로 달아 어제 하루 종일 포탈 최상단에 띄워놓은 기레기들이 당사자의 심장질환이라는 부검이 나오자 이재명의 간접살인!”이라는 야당 정치인들의 발언을 열심히도 제목으로 오늘도 하루 종일 퍼나른다


기레기는 겨울이면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데, 인간 기레기는 썩은 내 나는 곳에만 코를 박고 추기물을 입에 흘리며 우짖으니 저 철새들에게 미안해 차라리 쓰레기라고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