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일 화요일. 맑음


새벽 일찍 일어나 서울 갈 준비를 한다. 네 시가 좀 넘은 시간. 세상은 깜깜하고 산속에서 아침 먹이를 찾아 헤매는 새들의 날개짓만 가끔 들린다. 새들은 참 일직도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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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만의 서울 나들이여서, 이번에 올라가 점심을 대접할 사람이 있어 준비해 갈 물건이 많았다. 그분이 오랜 영어의 세월을 겪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보스코는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의 눈빛만 보아도 이미 마음을 읽는다. '올라가서 따순밥 한 끼 해드려야겠다.' 라는 내 말에는, 그분이 밥 먹을 데가 없어서 아니고 이곳 바깥에 있던 우리도 당신과 똑같은 마음이었소. 당신이 몸으로 견딘 그 시간이 우리의 자유와 평화, 민주를 가져왔기에 고맙소라는 최소한의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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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꽁꽁 얼고 덕유산 일대는 나무마다 서리를 하얗게 이고 줄지어 선 고속도로를 달려 우선 부천으로 갔다. 우리 순둥이는 늘 타인을 살피고 조금이라도 어루만지려는 따뜻한 마음이 커서 내 뜻을 제일 잘 알아주고 이런 일에 이튿날의 손님 대접에 동참한다. 아구탕과 삼합할 목포 홍어를 구해 놓았단다.


부천 큰딸 이엘리에게 먼저 들러 점심을 대접 받고 헤어지며 시집살이하는 딸 보고 싶어 아래층에서 얼굴만 겨우 보고 돌아가시던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는 그미의 말에, 삶에 지치고 몸이 아파도 하루 쉴 수도, 파업 할 수도 없는 엄마라는 직업의 대표적인 여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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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는 막내 호연이를 낳고 몇 달을 쉬지 않고 하혈을 했다. ‘한 여자의 몸에 얼마나 많은 피가 있으면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살아남을까?’ 하는 걱정에 앞서, ‘엄마가 죽으면 우리 집은 망한다는 공포가 더 컸었다. 아버지는 한겨울에도 우리가 떠다 드리는 따뜻한 물로 방안에서 세수를 하시고, 그 대야에 양치질을 하는, 당신 일신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여서 월급을 벌어다 주는 일 외에 가사를 돕는 일은 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다섯이 둥글반 밥상에서 누에가 뽕잎 먹듯 밥그릇을 비우는 우리 오형제 모습을 보면 책임감과 함께 저것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나?’ 겁도 나셨는지 엄마가 앓아눕자 스스로 살림을 도맡으셨는데, 긴 병에서 낫기만 하면 천국 여행이라도 동반할 것 같던 아버지는 엄마의 완치와 동시에 서슴없이 예전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아버지는 69세에 돌아가셨고 우리들을 대표해 모든 인생의 짐을 지던 엄마는 평소의 내공으로 100세까지 거뜬히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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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주변을 챙기느라 늘 스트레스로 두통과 소화불량을 안고 사는 우리 큰딸도 보살필 가족들 걱정에 100세는 거뜬히 넘기리라. 오지랖 넓은 그 심성으로 자기가 보살펴야 할 생명들이 있는 한 살아남는 끈기를 자녔으리라.


오늘 점심에 손님들이 오기 전 우리 꼬맹이가 먼저 와서 상차림과 음식을 도왔다. 지난번 순둥이환갑 때도 도우미를 해줘 고마웠는데 내 고생을 대신해 뭐라도 해내는 꼬맹이가 있어 내 어깨는 한결 가볍다. 손님들이 가고나서 꼬맹이네 조서방은 아침에 보스코가 부숴뜨린 식탁 의자도 수리해주고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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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가고 나서 4시에는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촬영장비를 들고 와서 이번에 보스코가 낸 아버지 성요셉책자를 소개하는 북콘서트 방송 녹화가 있었다. 나와 막내딸 꼬맹이가 분으로 눈썹으로 입술연지로 분장시킨 보스코는 세 분 수녀님 합쳐 다섯 여인들의 손길에 녹고 내용 전개에 취해서 NG도 별로 안 내고 잘 끝냈다.


6시가 한참 넘어서야 녹화가 끝났고, 수도원에 가봐야 라면밖에 없으리라는 걸 잘 아는 (수도자의 엄마인) 나는 오늘 두 번째 밥상을 차렸다.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식탁에는 주님이 주빈이 되어 한 상에 계시기에 늘 기쁨이 서린다. 9시가 다 되어 진눈깨비가 얼어붙은 골목길을 조심스레 미끄러져 내려가는 수녀님들을 보며 '당신들은 참 좋은 몫을 택했다.'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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