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일 일요일. 흐림


오늘 오후 어떤 친구와 전화하다 요즘 정치판 땜에 자기 고등학교 친구가 떠올라 팔팔 뛴다는 호소를 들었다. 금방 아니 며칠 안에 탄로 날 일을 너무 천연덕스럽게 꾸며대곤 하더란다. 학교 앞 떡볶이집 아줌마에게 저 몇 반 반장인데요, 같은 반 학생 엄마가 상이 났는데 내일 거둬 줄 테니 5만원만 꿔주세요.’ 저학년 반에 찾아가서는 나 몇 반 반장인데, 너희에게 뭘 해 주기로 했어.’ 약속하고 돈을 거둬가고... 시집가서도 계속된 거짓말에 이혼까지 당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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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지탄받는 여자가 대한민국 영부인 후보로 등장했다! 한 여자의 서류철에서 어쩜 저리도 끝도 없이 거짓말이 나오는지, ‘학위’, ‘경력’, ‘수상’ ‘전시회까지 안 걸리는 게 없을 만큼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 못하니까 국민의 힘을 무조건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참 계면쩍겠다. 누구는 자녀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진실과 법정의 투사를 자처하며) 고래고래 악을 쓰던 보수언론들이 그보다 몇 배 심각한 사태에 어찌 저리도 조용하고 얌전하고 관대한지


아무리 야당에 몸담아도 상식은 조금 남아있을 법한 정치가들이 우리가 국모를 뽑나 [쥴리면 어때]?’ ‘왜 여자만 붙들고 기획 공격을 해?’ ‘김건희는 묘사를 멋지게 했을 뿐 위조는 안 했어!’라며 싸고 도는데 남편마저 국민에게 엣다, 사과 먹어라!’고 나온다. 하기사 최고의 부정으로 투옥된 경제사범 이명박이 "우리 집 가훈은 정직!"이라고 뽐냈으니까. 거짓말을 최악으로 평가하는 서구사회에 방문가서 거짓말쟁이 영부인으로서나 쥴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여인’이라고 희롱 당할 일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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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엔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진다고 예보되었다. 우리 배추밭에는 아직도 3, 40포기가 남아 있었고, 드물댁네는 절반쯤 배추가 남아 있었다. 드물댁 큰딸이 낼모레 와서 캐 간다는데, 영하 9도면 얼었다 녹지를 않고 배추가 고스란히 썩는다. 아짐은 어제 코로나 주사를 맞고 와 힘을 쓸 수도 없어 꼼짝달싹 못하겠단다. 내 밭에 배추를 길러 썩혀버리는 일은 두고 볼 수 없어 아줌마를 채근해 그 집 마루까지 실어다 주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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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눈도 내리고 날씨도 추운데 김원장님 부부와 광주극장엘 갔다. 이번에 필름에서 디지털로 복원했다는 닥터 지바고를 감상했다. 젊은이들은 눈 내리고 추운 날 노친네들이 낙상하면 어쩌려고?’ 하는 눈치로 우리 둘을 훔쳐보는데 그 영화를 보기엔 딱 알맞는 날씨에다 딱 맞는 우리 나이였다! 극장에 난방이 안 되어 모두 담요를 가져와 두르고서도 자못 심각한 풍경이 춥고 각박했던 1917년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전후 역사를 관객이 체온으로 체험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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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1957년에 밀라노에서 번역판으로 처음 나오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고 1965년에 영화화했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내 스스로 라라의 마음이 되어 애간장 녹이는 상상에 밤잠도 못 이뤘는데... 혁명의 소용돌이, 끝없는 전쟁과 이별, 전체주의 하에서 생사를 건 위기와 고독이라는 극한 상황일수록 빛나는 하얀 설원과 노랑 수선화와 처절한 사랑!


아내 토냐는 모스크바에서 파리로 떠나고, 라라와 해후한 유리의 어디에도 기댈 데 없는 절박한 사랑을 누가 감히 불륜이라 질타하겠는가! “사랑으로 죽어간 모습은 [항상] 용서할 수 있다!” 더구나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얽혀 4년과 4년 무려 8년간 강제수용소에서 고통 받은 올가 이빈스카야(작중의 '라라')의 애정과 헌신을 두고 누가 손가락질 하겠는가러시아에서만도 푸쉬킨에게 안나 케른, 예세닌에게 이사도라, 그밖에 주홍글씨를 가슴에 단 채로 문인들과 예술가들에게 헌신적 영감을 끼친 여인들이라니... “많이 사랑하는 이는 많이 용서 받으려니...” 


덜덜 떨며 3시간 30분 짜리 영화를 보고 눈보라 치는 밤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70대의 여자 운전사는 자기가 라라인지 토냐인지 몽혼에서 깨어나지를 못하는데 80대의 유리는 태평하게 잘도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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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림 마지막 주일이자 올해 본당신부님이 마지막으로 문정공소를 방문하신 미사. 새로 뽑힌 본당 사목회 회장단이 함께 와서 인사를 했고, 신부님은 당신 임기 3년이 어언 다 되었다고 떠날 차비를 하신다. 처자식 거느린 개신교 목사들과 달리, 독신생활을 하며 교구청의 명령 하나로 괴나리봇짐을 들고 미련 없이 떠나는 가톨릭 사제들의 자유로운 가난이 아름답다. 우리 신신부님, 성숙하고 따뜻한 분이었으니 어디 가서나 잘 지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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