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8일 목요일. 맑음


어제 담양엘 갔다. 우리 '은빛나래단'을 챙기느라 늘 고생하는 미루와 이사야를 위로하려는 두 노친네의 마음으로. 지난 번 호천이와 같이 갔던 농막 식당(‘삼거리 농장’)엘 갔다. 솥뚜껑에 닭볶음을 해주는데 고추장을 풀어 닭고기를 익히는 불꽃이 음식의 맛보다 눈을 더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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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핸가 저 두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아씨시를 간 일이 있다. 농막 식당의 그 붉은 불꽃을 보고서 미루는 아씨시 산꼭대기 어느 농막 야외식당(이름이 '마굿간')에서 숯불에 구운 양고기와 맛있는 야채 요리, 그리고 맛난 후식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닭볶음에 볶음라면, 볶음밥까지 완전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불량식품인데, 너무나 매워 뱃속이 활활 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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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간 길에 함께 담양 천주교공원묘지’(납골당에는‘부활의 집이라고 적혀 있었다)도 방문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은 그곳에 누워계신 교우들과 특히 수도 성직자들의 맑고 투명한 영혼 같았다. 이태석 신부님과 신현문 신부님은 젊은 나이에 떠나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묘비석을 쓰다듬게 된다. 남녀 살레시안들에 대한 보스코의 추억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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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프로방스를 찾아가 커피를 마시고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기로 했는데, 이사야가 12월에 있을 기타 공연을 연습하러 가야 한다 해서 좀 일찍 돌아왔다. 대신 우리 부부는 동네 송전길을 걸으면서 로사리오를 바쳤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 어언 보름달이 중천에 걸려 휴천강물로도 달빛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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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 일찌거니 마늘 까러 올 께." 하던 드물댁이 정말 아침 일찍 휴천재 수돗가에 올라와 날 기다리고 있다. 아침 내 둘이서 마늘을 깠다. 평소에는 김장철에 보스코가 해주던 일이다. 생강 까고 마늘 까서 갈아 놓으면 김장을 반 쯤 한 기분이다.


'엊저녁 늦게 어딜 갔었냐?'고 물으니 "거문굴때기가 나더러 저녁 일곱 시에 지 논으로 나오라 해서 나갔더니 들깨 단을 태우는데 혼자서 무섭우니 지켜달라커드만." 거문굴댁은 남편이 몇 해 전 갑자기 죽고 나서 맨날 무섭다며 자기더러 자러 와 달라 해서 여러 날 '잠동무'를 해주었단다. 이 동네 주민이 대부분 과수댁들이지만 혼자서 잠드는 고독, 특히 남편의 장사를 치르고 친척들과 자식들이 다 대처로 돌아가 버린 다음의 갑작스러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제일 가까운 이웃 아짐이 잠동무를 해주면서 심리적 위기를 벗어나게 돕는다. 참 현명한 치료다.


그러다가도 그만 집에 가고 싶어 드물댁이 한밤중에 자기 집으로 돌아오다 발자국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면 거문굴댁이 자길 뒤쫓아 오더란다. 그렇게 당산나무를 지나다보면 한밤중에 동네 개들이 난리를 치고, 가동댁이 들창밖으로 내다보다 두 미친년이 오밤중에 돌아다녀싸며 동네를 시끄럽게 하네!”라며 '소락데기'를 지르곤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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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드물댁네 집에 쫓아와 자던 거문굴댁이 새벽녘에 벌떡 일어나더니 집으로 서둘러 달아나기에 이튿날 그 까닭을 물었단다. 그 집 시엄씨가 나타나 나더러 '와 남의 집에 와서 자노?' 노려보지 않갔어? 그렇게 혼령을 보고 나서는 두 과부가 각기 자기 집에서 자게 되었단다. "조상 안 죽은 집은 시상에 엄는데."라는 드물댁의 뒷말에 여운이 길다. 


소설 어머니의 이야기. 폴이 사제관에 밤늦게 돌아오니 어머니는 벽난론의 타고 남은 재 앞에 골똘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마치 시체를 지키는 얼굴로. “왜 아직 안 주무셔요?” 병자를 찾아보고 왔다고 거짓말하는 아들에게 네가 밤마다 어딜 가고 누구와 있는지 내 안다. 죄는 영혼을 공격하기 때문에 어떤 질병보다 더 나쁘다. 네가 구원해야 하는 건 너 자신뿐 아니라 그 여자 영혼도 파괴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 얘기를 꺼내지 않으마.”


문득 깨달음을 얻은 폴신부는 그 여인에게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저는 다시는 당신에게 가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보낸다. 편지를 받은 아녜스는 심하게 앓아누웠고, 하녀의 입에서 그 소식을 들은 폴은 어머니에게 아녜스를 찾아가겠다고 한다. 모친이 폴을 말리자 '교우가 죽을 만큼 아프다면 한밤중에라도 찾아가 병자의 성사를 집전해야 하는 게 사제'라며  집을 나선다. 폴이 찾아오니 아녜스가 놀란다. "나는 당신에게 하녀를 보내지 않았어요. 당신은 나한테 오지 말았어야 해요." 그러면서도 다시 그에게 매달린다. "폴, 우리 당장 이곳을 떠나요. 딴 데 가서 살아요. 안 그러면 내일 새벽미사 후 제단 앞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당신의 위선을 폭로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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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여인을 뿌리치고 돌아와 어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한다. 모자는 아녜스가 미사에 안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녀는 새벽미사에 참석했다. 모자는 미사내내 겟세마니 동산에서 주님이 겪었을 냉혹한 운명의 그림자를 보며 고뇌한다. 미사가 끝난 후 아녜스가 제단으로 걸어 나온다. 모자에게는 파멸의 순간이 다가왔다, 사제직을 잃고 아들을 잃는! 사탄의 신부 예언대로 두 모자는 이 마을에서 쫒겨날 위기의 순간이 왔다.


그런데 아녜스는 제단 맨 아래 계단을 오르다 말고,계단에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고서는 뒤돌아서 문쪽으로 걸어나간다. 아녜스가 나가다 고개를 돌려 잠시 폴 신부의 모친을 바라본다. 미사 내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아들 신부를 영영 잃는다는 엄청난 심리적 번민에 시달리며 몸을 지탱하려고 안간힘 쓰던 어머니 막달레나의 손에서 그 순간 로사리오가 툭 떨어진다


곁에 있던 여교우가 비명을 지른다. “돌아가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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