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9일 수요일, 흐리다 해 나다 일하기 좋은 날

 

요새 눈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고 “다음”에서 오늘 날씨를 보는 일이다. 집에서 데크 공사를 하다 보니 날일 하는 사람들에게 날씨가 중요한 요건이 된다. 동네 부지런한 사람들이 새벽 접속을 많이 하는지 몰라도 인터넷 속도가 무지하게 느리다. 서울에서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하는 네티즌들은 새벽잠이 깊어서 새벽에 인테넷을 켰다하면 바로 접속이 되는데, 이곳에서는 우리 홈피마저 비밀 번호를 대라, 뭘 치라 하고 심통을 부려 “얘가 잠이 덜 깼나?” 냅다 두드리면 그제야 잠꾸러기 막내처럼 마지못해 화면을 떠올린다.

 

인터넷 늦다는 말도 상대적이다. 밭에서 풀을 뽑거나 일을 하다보면 두어 시간도 후딱 가는데 컴퓨터에 뭐가 떠오르기 기다리는 시간은 30초도 평생을 기다리는 듯 길고 지루해서 엔터를 치고 또 친다. 누군가 IT 산업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미와 아주 닮아서 우리가 IT 강국이 되었다는데 이게 아마 대표적인 단점이 대표적인 장점이 된 사례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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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상으로는 비가 온다는데 다행히 구름만 껴서 일하는 데는 더 편한 듯하다. 서울에서는 아침 7시면 땡하고 일꾼들이 와서 9시면 새참을 먹곤 하는데, 여기서 양사장네는 8시 30쯤 왔다. 10시경 간식을 주니까 데크를 디자인하는 박사장이 오늘 아침 너무 일찍 일어나서 정신이 멍 하단다.

 

그는 함양읍에서 커피전문점을 하는 미술가로 밤늦게까지 예술활동을 하는 게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였다. 시골의 삶이 대사에게 배밭 소독약통을 매게 하고 교수님에게 예초기를 돌리게 하고 박사에게도 기자에게도 모든 잡역을 차별 않고 시키는 만큼 공평한 세상에서 공평하게 일들을 하고 있다. “새잡는 게 매”라는 속담대로 데크 공사 역시 미술가가 예술적으로 해 놓으면 좋겠다.

 

오늘 일하는 걸 보니 엊그제 만든 골조 위에 합판을 깔고 그 위에 방수포를 깔고 그 위에다 마루를 까는 공사로 들어간다. 꼼꼼하게 철저하게 천천히 하는 일이 느리긴 해도 믿음이 간다. 날일을 시키는 게 아니니까 기다리고 볼 만하다.

 

           산청 성심원 강당에서 공연된 "바보 추기경" (지성구 연출)  [임수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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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30분경에 송문교 앞에 모인 일행이 산청 "성심원"으로 문화생활을 하러 갔다. 파비아노 선생님과 윤교장 선생님, 스테파노씨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 6명이 스.선생 차로 떠났다. 연극 “바보 추기경”을 보러 가는 길이다. 7시 조금 넘어 도착했음에도 기다랗게 줄을 지어 추기경님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어린 추억이 여기까지 돋보이게 만들었다.

 

80년대 우리의 가난한 로마 유학시절에도 회의 차 로마에 오시던 추기경님은 우리의 가난한 초대에도 기꺼이 가정을 방문해 주셨고, 어린 빵고가 신부가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자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 주셨다. 로마에서도 불면증으로 고생하시던 계시던 참이어서 내가 성체회 모니카 수녀님께 모셔가 수지침을 놓아 드리기도 하였다.

 

        80년대 유학시절 우리 집을 방문해 주신 김수환 추기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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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하러 갔다가 추기경님을 뵈면 그때도 불면증 치료차 쑥뜸을 하고 계셔서 이마 한 가운데가 부처님처럼 까맣게 타있었다. 내가 “추기경님, 잠깐만 계세요. 제가 한번 만져볼 게요.”라고 손가락으로 추기경님 이마를 만져보아도 잠자코 웃고만 계셨다. 시국에 대해 얼마나 많은 번민을 하셨으면 혼자 주무시는 그 밤이 걱정과 아픔으로 잠 못이루게 만들었을까 짐작이 갔다.       

 

       추기경님 이마에 쏙 들어간 점을 만져본 여교우는 나밖에 없을 게다     추기경-00.jpg

 

우리 장학금이 갑자기 떨어져 안정된 장학금이 필요했고, 윤루카 신부님(지금은 벨기 겐트교구 교구장 주교)을 통해 부탁을 드렸더니 교구장으로서 기꺼이 추천장을 써 주셔서 독일 주교단의 MISSIO로부터 우리가 5년간 장학금을 받게 도와주기도 하셨다. 보스코의 대사시절 관저를 방문하신 자리에서 그 일을 감사드리니 그분 특유의 겸연쩍은 미소로 “그래서 바티칸 대사 되셨쟎습니까?”라고 답하시던 기억이 난다. 

 

           로마 유학시절의 보스코와 추기경님 (1983년)     추기경-02.jpg

 

늘 소박하고 자상하고, 연극에서 추기경 역을 했던 배우가 관중에게 한 말처럼 “일관성 있고” “인간에 대한 크나큰 애정”이 놀라운 분이었다. 그 배우가 인사말에서 “매일 죽는 게 제일 힘들다.”는 말을 털어놓았는데 연극에서 늘 추기경님이 죽는 장면으로 끝나니까 하던 말이지만 내게는 가슴 깊이 다가왔다.

 

“매일 죽는 삶”, 죽음이라는 영구한 소멸 앞에 섰을 적에 내가 했어야 할 일과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 극명하게 나타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과 민족과 교회를 위해서 매일 죽는 삶이 그분을 그토록 존경스러운 어른으로 보이게 한 듯하다.

 

연극이 끝나고 프란치스코회 신부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레모네이트와 수정과를 들면서 환담하다 집에 오니 11시가 넘었다.

 

         공연후 주연 우기홍씨와 기념촬영 (임수근 사진)     9840IMG_984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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