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4일 목요일, 맑음


3개월마다 보훈병원 심장외과에 가서 보스코의 심장약을 타고, 은평성모병원 호흡기내과에 가서 양합기사용 처방을 받으러 서울 올라오는 일도 이젠 익숙해졌다. 지리산에 사는 나이든 친구들이 3개월 또는 6개월마다 병원 진료를 받으러 서울을 오가면 나도 언제는 저런 처지가 될까?’ 갸우뚱했는데, 이젠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식구의 일이 되었고, 그리 안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어쩌면 '바로 내 일'이 되는 날도 머지 않겠다.


특히 보훈병원엘 가면 나름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분들일 텐데도, 늙음 자체가 초래하는 허튼 모습을 보는 듯해서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더구나 기품을 잃고 아무데서나 큰소리치고 아무한테나 욕지거리하는 늙은 남자들을 보면 저런 사람을 '섬기고 살아야 하는' 부인네들 고생이 참 크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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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어제 병원에서 본 어느 어르신은 동행한 젊은 여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따라 '말 잘 듣는 유치원생' 같았다. 내가 보호자에게 "따님이죠?" 물으니 "맞아요. 시아버지 같으면 이렇게 잔소리도 못하죠."하고 대꾸한다. 잔소리는 듣기도 힘들지만 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남정들은 마누라건 딸이건 잔소리해주는 여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울 날이 오려니 해야 할 게다. 유치원생한테 하듯 '하나하나' 일러주면 빙그레 웃으며 '하나하나' 따라 하는 보스코는 벌써 해탈에 오른 경질까그를 동반하여 병원엘 갈 적마다, 아아, 어린애처럼 엄마나 아내나 딸 며느리를 따라다니는 남자 환자들 모습을 볼 적마다, 남자 사람에게 여자를 지어 데려오시는 창조주의 배려에 또한 감사를 드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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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시가 넘어 보훈병원 예약인데 1130분에 '막내딸' 엄엘리를 만나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해서 9시에 병원엘 갔다.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지하 4층까지 2중 파킹을 한 차들로 보아 우리나라 세금이 모두 병원에 쓰이지 않나 싶었다


1130분, 가까운 식당에서 막내 꼬맹이랑 점심과 커피를 하고 그동안 지낸 이야기, 가족 이야기, 세상사로 두 시간이 너무 짧았다. 꼬맹이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역사 의식이 있고 사회를 위한 헌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내게 벗으로 보내주신 분께도 감사드린다. 하늘의 은총은 반드시 사람들을 통해서 내리고, 은총 어린 만남은 헤어진 뒤에도 은은한 향기를 오래오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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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4. 보스코가 일어나라고 날 깨운다. 지리산에 가져갈 짐을 챙기고(언제나 처럼 반 톤 트럭 분량) 문교수님이 와서 지낼 때를 생각하여 이부자리를 갖춰 놓고서 5시에 집을 나섰다. 동부간선도로에 들어서니 그 시각에 앞뒤 옆으로 차가 빡빡하다. 대한민국 전국민의 대부분이 수도권 서울 경기에 모여 산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지리산에서라면 이 시간에 차를 달리려면 캄캄한 어둠 속에 내 차 전조등에 눈이 부셔 정신줄을 놓는 고라니 멧돼지를 만나고 산짐승은 떡 하니 멈춰 서서 길을 가로막아 서고 내가 전조등을 꺼야만 제 정신이 난 듯 가던 길을 건너가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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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지 앞 유무상통 실버타운에 도착하니 630. 모두가 잠든 시각이라 우선 조용히 하늘문’으로 올라가서 엄마를 찾아 뵙고 문안을 올렸다. 그 언덕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셨을 텐데 이제는 한 줌 재가 되어 조그만 항아리 안에서 다소곳이 우리를 맞으신다. 엄마의 존재가 우리에게 주시는 일깨움이 크다. '아가, 너도 머지않아 한 줌의 재란다.' 서양의 묘지(대개 동네 옆에 있고 높다란 담벼락이 둘러쳐져 있다) 출입 대문에 적힌 라틴어 문구대로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기도를 올리고 조용히 아래 마을로 내려오니 날이 밝았다.


출근시간이 멀어 실버타운에서 내려다만 보던 미산 저수지옆 둘레길을 걸었다. 엄마가 계셨을 때는 이 길을 걸을 겨를이 없었는데, 엄마가 없는 백지에는 이 저수짓길도 그려진다. 능선 위에 세워진 실버타운은 미산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한가로이 아침을 맞고 있다. 9층 맨 끝방 창밖으로 저수지를 바라보며 엄마는 당신 생애 5분의 1, 20년을 사셨다. 산 위의 마을 '유무상통(有無相通)', 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던, 설립자 방상복 신부님의 가르침이 아련하지만 이제 엄마는 거기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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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오리들만 한가로이 아침거리를 찾고 짓궂은 물까치는 떼로 몰려 다니며 우리를 놀린다. 우리의 슬픔과 상관없이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산책 길에 엄마가 다니던 '노곡교회' 권사 부부를 만났다. 울 엄마 '조정옥 장로님'을 잘 알고 있었고 장로님이 돌아가신 뒤 작은 아드님이 인사차 예배에 왔더라는 얘기도 들려주어 내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누군가도 기억한다는 게 뜻 깊게 다가왔다. 서울 오가는 차에서 보스코가 로사리오를 선창하면 한 알 한 알에 죽은 친지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늘 기억하는 기도 습관에도 공감이 간다. 죽은 이와는 추억과 기도 외에 무슨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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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유무상통으로 다시 올라가 요양병원에 들어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모를 뵈었다. 1년 전만 해도 그렇게 명석 하고 활기 넘쳐 엄마와 달리 이모는 늙지도 병들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죽음의 천사의 펄럭이는 망토 자락 안에 들어가면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진실이 허망하지만 현실이다. 하지만, 노쇠와 병고로 다 사그라진 육체에 날개를 접고 자기를 안아갈 죽음의 천사의 방문을 기다리면서 그것이 축복으로 느껴질 날이 우리에게도 오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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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신부님에게 차대접을 받고 환담을 나누며 우리 부부도 머지않아 이곳을 찾아올지 모른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온갖 상상력을 그려내는 구름이 오늘 따라 유난스레 아름다운 고속도로를 달려 휴천재에 도착하니 오후 2. 변함없는 고요와 평화로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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