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8일 화요일. 흐림


며칠을 두고 비 오는 것도 아닌데 날씨가 계속 흐린 것은 무슨 일일까? 새벽녘 잠깐 얼굴을 보여준 태양은 구름 속 어디서 놀고 있을까? 말리다가 만 땅콩과 대추는 말릴 수도 안 말릴 수도 없이 날파리들만 살 판 났다. 걔들이 지내기 딱 좋은 날씨다. 이런 날이 몇 주고, 몇 달이고 이어지는 북유럽인들의 성격이 우울한 이유는 날씨 때문이라는데 한반도에서 요 며칠을 지내보면 공감이 간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가을 겨울이면 워낙 날이 짧아 어두운 마음에 반딧불이라도 되라고, 집을 지을 때는 내닫이창들을 만들고 밤이면 집집이 그 창마다 촛불을 밝혀 마음의 어두움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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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컴천지에서 보스코의 컴퓨터를 다 갈아 엎어손질을 마쳤다고 찾아가라는 전화가 왔고, 우리 소나타에 오렌지색 경고등이 들어와 자동차정비소에도 가야 해서 보스코 점심을 차려놓고 읍내에 나갔다. 내 단골 스피드메이트에 차를 맡기고 함양산삼축제에서 풍기인삼 홍보관에서 알바하는 윤희씨를 찾아갔다가 점심을 함께 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사는 그미의 발굴의 기지가 축제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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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에 큰 동서가 대단한 개그를 남겼다. “작년과 올 들어선 무슨 농사를 해도 안 된다. 북한 김정일이가 있을 때는 참깨도 땅콩도 심었다 하면 잘 됐는데, 김정은이가 거시기가 되고 나더니 단호박, 들깨, 고구마... 어떤 걸 심어도 안 된다. 땅콩도 고구마도 고라니와 멧돼지 등쌀에 안되고, 나머지 농작물도 싸그리 망해 부렀다. 다 김정은이 때문이다.” 빵고신부나 나도 처음에는 그미의 말장난인 줄 알고 웃어넘겼는데 자꾸만 되풀이 하는 걸로 보아 일종의 신앙고백이었다. 해방전에 이전(李專)을 나왔고 오래오래 장로님으로 봉직한 울 엄마도(2003년이었던가?) “우리 창고 쌀 다 북한에 퍼주어 연천에 홍수가 났다!”는 주장을 펴신 적 있다. 보스코 말마따나, '정치적 사랑'은 학식과 종교신앙에 상관없이 절대불변의 신념을 심어주나보다. 


한겨레에서 퍼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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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여년간 대한민국 정치판을 보면 이런 코믹을 마구 해 대는 인간들이 보수언론들의 아이콘으로 등장하여 떠드는 바람에 나같은 시골아낙의 귀도 참 괴롭다. 지난 토요일, 전남 영광 출신 이낙연 후보(힘들게 얻은 종로구 국회의원 자리를 내던지고 후보 경선에 올인하던)가 경북 안동 출신 이재명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광주 전남 경선에서 '무려' 0.17%(122) 차이로 물리치자 드디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아~~~”고 대서특필해 준 보수언론의 나팔에는 부끄러움이 전혀 안 보인다. 기레기 언론인들의 산수실력으로는 일요일 전북(이재명 54% ↔ 이낙연 38%)에서의 이낙연의 패배는 '겨우' 14%에 불과한 간발의 차이였겠지


조국 규탄’(그 딸이 무슨 봉사에 표창장 하나를 위조했다는 죄목으로)에 앞장서온 곽상도의 아들이 ‘50억의 퇴직금을 받은 것도 이재명의 설계대로라는 국민의 힘이라든가, '조민 규탄'에 그토록 열광했고 자기들 취직이 그토록 힘들다면서도 그 정도 받았다고 뭐가 어떠냐?’로 묵살하는 일부 청년들의 관용에는 아연해진다


하기야 전두환이 7000(노태후는 4000) 부정축재가 들어났던 90년대에 정치를 하면 그 정도 비리는 저지르게 돼요. 우리 모두 죄인인데 누가 누굴 심판합니까?”라던 한국 가톨릭 주교가 월간조선으로부터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미리엘 주교님 같은 성자(聖者)'로 보인다는 칭찬을 받던 개그를 기억하면, '멧돼지가 땅콩과 고구마 밭을 망치는 게 김정은 탓'이라는 시골 농사꾼 아낙의 말은 차라리 애교처럼 들린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0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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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텃밭에 마지막 남은 옥수수밭 이랑에서 보스코가 옥수수대를 잘라내고 퇴비를 섞어 괭이질을 했다. 내일 비가 내린 후 멀칭을 하고 마늘을 심을 자리다. 올해 마지막으로 거둔 아기손 같은 옥수수 한 소쿠리는 쪄서 주변 사람과 나누고 일부는 돌아오는 주일에 옥수수를 최애하는언니 주려고 냉동실에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친정아버지가 강원도 평강 사람이어서?) 옥수수를 여름내내 원 없이 먹었다. 씨알 한 톨에서 한 길 넘는 옥수수 나무를 키워낸 땅도 고맙고, 포기마다 아기 여럿을 낳아 포대기로 업어 키운 나무들도 고맙다.


오후 3시에 단성에 일을 보러 왔던 가톨릭농민회 전국회장 정한길 선생 부부가 휴천재에 다녀 갔다. 80년대 '우리밀 살리기 운동'에서 시작한, 40년 넘는 우정이다. 친구는 언제 보아도 늘 보아 온 듯 한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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