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6일 일요일. 흐림


아침 식탁에서 내가 보스코에게 하는 잔소리 중 가장 간절한 말은 삶은 계란 먹을 때 '소금 좀 적게 찍어먹으라', 빵에 버터 바를 적에는 '버터 향만 날 정도로 조금만 바르라'는 말이다. 나이 들어서도 그의 콜레스테롤 치수가 300이 넘으니 버터는 금물이고 염분을 과다섭취하는 그의 습성이 건강을 해친다는 내 신념 때문. 아들들은 그러려면 나더러 집에 아예 버터를 두지 말라지만 보스코에게 너무 가혹한듯하여 단행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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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그만 바르라며 버터 싼 봉지를 내 쪽으로 끌어다 감춘다는 것이 종이만 들려오고 버터는 그의 접시에 놓인 빵 위로 덩어리째 뚝! 하고 떨어졌다. 그가 얼마나 신나하던지! 내 실수에 그렇게 즐거워하는 남편을 보니 때로는 실수가 사람을 퍽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1998년 우리가 로마 산갈리스도 카타콤바 입구(아피아 가도 쿼바디스 성당 바로 건너편), 문지기수사가 수백년 살던 수위실 건물에 살 적의 일화(97~98년 이태를 안식년으로 로마에서 보냈다). 교황청 부지(곧 영토)인 그 카타콤바를 살레시오 수도회가 100여년째 관리하고 있었는데, 관광객이 제일 많이 몰리는 토요일과 일요일엔 입장권 판 돈을 은행에 가져다 입금시킬 수가 없었다. 경리수사님은 그 돈이 걱정스러워 검정 비닐 봉지에 담아 침대 옆에 놓고 주무셨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밤에 권총을 든 도둑이 들어와 수사님을 묶고 협박을 해서 돈 봉지를 들고 이층 창밖으로 내던지고는 도둑은 2층 홈통을 타고 내려가 사라졌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경리수사님을 더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돈 든 비닐봉지는 창밑에 고스란히 놓여 있고 그 옆 쓰레기통 곁에 놓아둔, 똑같이 새까만 쓰레기 봉지만 도둑님이 둘러메고 사라졌더란다. 남편의 버터나 수사님네 돈봉투나 희극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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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컴퓨터 데스크탑을 빵고 신부가 업그레이드 해주고 갔는데 뭐가 어찌 되었는지 스피커 기능이 작동 안 한다. 대구에 가 있는 빵고신부가 아무래도 함양 컴천지로 가져가서 갈아엎어야' 할 것이란다. 토요일 아침에 읍으로 실어다 맡겼는데 보스코는 정말 두 아들의 말마따나 기계 망가뜨리는 은사를 받았는지 한두 해에 한번씩 내가 데스크탑을 싣고 읍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 그때마다 4,5만원의 경비도 들고... 두 아들은 정반대로 가전제품 치유의 은사를 입어 제네바 교민들에게, 수도원 회원들에게 컴퓨터 수리를 도맡고 있는데.... 


어제는 하루 종일 구름이 껴서 선선하고 산보하기 딱 좋은 날. 도정 체칠리아가 병원 정기진단도 받을 겸 추석도 쇨 겸 서울 딸네집에 갔는데 오랫동안 집을 비워두어 걱정이다하기에 도정으로 올라가 그집 텃밭과 마당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가기 전 집안 단도리를 얼마나 잘했는지 배추밭 몇 포기가 상한 것 외에는 도정 '솔바우촌'은 깔끔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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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선생네 채소밭과 마당의 코스모스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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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딸네 집에 가서도 청소를 하고 집안을 치워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딸네집 연례 대청소’를 하는 중이라나. 딸네집의 모습은, 스.선생님 표현을 빌리자면, ‘집안은 전쟁터, 마당은 완전 페허더라나. 애들 둘을 키우면서 사업을 직접 경영하고 돕는 사람 하나도 없이 살림까지 하자면 여인의 삶이 분명 전쟁일 테니 당연하다.


그렇게 도정으로 보스코를 걸리다 보니 문상마을 쓰레기 수거함에 10인용 '쿠쿠' 밥통 하나가 버려져 있다. 집에 주워와서 닦고 또 닦고 나니 우리 5인분용보다 1년 늦게 나온 제품이다녹슬고 여닫이 스프링이 고장 나서 그렇지 서울에 가져가서 A/S를 받으면 내가 10년은 족히 쓸만하겠다. 가구도 가전제품도 심지어 의류나 신발도 버려진 걸 주워다 재활용하는 일이 '빵기네집' 전통이다. 둘째딸 순둥이가 그대로 배우는 것 같아 좀 찜찜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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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신부가 운영하는 보스코젤라또에서 홍시 샤벳을 내놓겠다고 해서 홍시를 구하는데 홍시가 나올 철이 아직 아니고 지금 홍시는 병들어 지레 떨어지는 감이라 맛이 없다. 오늘 오후 운서마을 유진국 선생댁 마당에 있는 감을 한 상자 따왔는데 진이 엄마 조언으로는 깨끗이 씻어 병든 꼭지 손질하고 감식초나 담으란다. 곶감하는 감을 딸 무렵에 그집 농장 감나무에 홍시로 지레 익은 감이라야 샤벳으로 쓸만하겠다. 


기후변화로 지리산 일대도 감을 키우기도 곶감을 만들기도 어려워지는 중이란다. 휴천재 텃밭 주위의 감나무들을 보더라도, 나무가 병들어 잎사귀는 지레 떨어지고 감도 깎지병, 검은 곰팡이병으로 몸살을 하거나 꼭지가 빠져서 떨어지고 만다. 세 해 전 새로 심은 단감나무도 감이 다 떨어졌다. 곶감을 생업으로 삼았던 지리산 사람들은 생존전략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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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7시에 주일 공소예절을 올리고 돌아와 아침을 먹는데 2층 올라오는 발소리가 난다드물댁이 빨리 텃밭의 무를 솎자고 온 길이다휴천재 텃밭을 건너다 본 아짐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는 드물댁의 전언. “무는 무척 잘됐는데너무 배잡아 저래 둬선 조진다.” 잎사귀만 무성하면 뿌리가 안 든다는 염려도 전해왔다내게는 직접 말 안 하는데우리의 동업자 드물댁에게 어지간히 잔소리를 해 싼다는 전언


한 구멍에 세 알씩 넣은 무씨 중 한 알 몫은 이미 솎아 김치를 해 먹었고 오늘은 한 구멍에 한 뿌리씩 만 남기고 다 뽑았다 우리 고랑에서 뽑아 다듬어 놓은 열무는 잉구씨가 말려서 어제 갖다 준 대추랑 서울 딸들에게 부쳐야겠다. 나도 물김치를 담고 나니 밤 10시다. 호남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이겼다는 소식이니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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