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16일 목요일. 흐림


수요일 아침. 보스코의 일년 넘은 이빨 공사에 준공이 떨어지는 날이다. 그의 이빨은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완죤 토종 옥수수.’ 한 개가 나올 앞니 자리에 앞뒤로 세 개가 비스듬히 엉켜 입 안은 비온 뒤 죽순 올라오듯 공간만 있으면 자리를 찾았나 본데, 자리가 부족하자 못 나온 이는 코 옆으로 비스듬히 아직도 잇몸 속에 숨어서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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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도 큰아들 빵기가 어려서 똑같은 자리에 이 하나가 누워 숨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 치아를 깨뜨려 한쪽은 입천장에서, 나머지 반쪽은 콧구멍 잇몸 윗쪽에서 꺼냈다. 그리고 축농증도 사라졌다. 이탈리아에 살 적의 일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치아가 하얗고 고르고 예쁘다는 말을 듣는 전순란은 치과의사를 먹여 살릴 만큼 치아를 많이 손댔는데(엑스레이를 찍으면 입속이 온통 하얗게 나온다) ‘말처럼 입을 벌려 치아상태를 보고서 값을 치른다면 생전 장가를 못 갔으리라는 말을 듣는 보스코는 이번에 하는 임플란트가 생전 처음 하는 이빨 공사라는 점이다그러니까 사람은 살아봐야 안다고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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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한양 나들이에 아이들 소풍날 도시락 싸 주듯이 점심과 간식으로 버터와 쨈을 듬뿍 바른 빵 한 조각(접어서), 케이크 엷게 두 쪽, 음료수로는 커피 우유, 밀감 한 개를 가방에 넣어주었더니 컴퓨터 가방을 메고 야심 차게 950분발 서울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나이 80에 아내가 싸준 점심을 암전히 싸가는 남자가 나를 웃긴다. “내가 당신에게 엄청 보호를 받는 게 맞지?”


오가는 차 안에서 번역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문을 하고, 차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햄버거 가게 책상에서 두어 시간 가량 공부를 했다는 할아버지니 그를 과보호 해주지 않으면 지구별의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짬짬이 시간을 쓰는데 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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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떠나보내고 나는 함양산양삼축제를 보러 상림에 갔다. 요즈음 날씨에 비해 기막히게 좋은 날 상림숲 일대는 온통 꽃세상이다. 아쉬운 것은 행사를 진행하는 스탭들 외에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커다란 무대에서 프로그램에 따라 공연을 하는데 관객이 단 한 명도없으니 공연하는 사람들이 불쌍키만 하다


매해 이래 왔고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이런 행사를 하는 이유를 알만한 사람에게 물으니, “중앙정부에서 돈을 받아서 그걸 써야 한다.”는 답변. 나야 농협에서 나눠준 공짜 입장권을 갖고 어슬렁거리지만 더구나 입장료 6000원을 내고 들어올 외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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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최고의 특템풍기인삼 안내알바를 하는 윤희씨를 만난 일이다. 전주로 이사 간 뒤 그렇게나 보고 싶었는데 장난꾸러기 천사처럼 쨘 하고 나타났다. 희정씨도 함께 불러 점심을 하고 독서모임을 못하는 아쉬움을 찐하게 나누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이렇게 라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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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고 문정리로 돌아와 집으로 올라오는데 모니카가 도토리를 주워왔다며 화계 방앗간에 같이 가잔다, 내 차로. 다람쥐처럼 한 알씩 모아온 것을 나에게 세 되가 넘게 주니 방앗간에서 갈아다, 자루에 걸러서, 가라앉혀서, 여러 번 물을 갈고, 패트병에 넣어 김치장냉고에 넣어두었다. 손님 오면 한 병씩 꺼내 도토리묵을 쑤면 된다. 이래저래 이웃아낙들의 도움으로 시골의 진국을 맛본다.


10시가 다 되어 돌아온 보스코를 마중 하러 읍으로 나갔다. 새로 한 이빨(왼쪽 제일 안쪽 윗편 어금니)을 내보이며 로또에 당첨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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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요일 아침, 다시  태양이 빛난다. 그래서 마르다 지친 붉은 고추를 모처럼 테라스에 널고, 식구들 추석에 오면 깔고 덮게 가을 이불들도 다락에서 꺼내다 일광욕을 시켰다.


추석 전이라 김치 담그기에 괴기장’(생선이나 고기를 사오는)에 주부들 일손도 바빠지는 만큼 즐거움도 거기에 비례한다. 늙은 엄마들이 대처에서 내려오는 자손들을 맞을 준비에 들떠 있다.


오락가락하는 태풍이 바람을 앞세워 식당채 뒤편 대추나무를 마구 흔들어 댄다. 추석이 끝날 때까지 대추나무가 견디어 내기를, 코로나로 딴 핑계로 추석에 고향에 오가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도 잘 버티기를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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