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2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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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820일에 무를 심었기에 엊그제 금요일 같은 날에 무씨를 심었다. 멀칭한 이랑에 그제 신식 모종삽으로 구멍을 만들고 어제는 한 구멍에 딱 세 알씩 심는데 2000알 가량 든 씨앗 봉지의 무를 다 심었다. 한 구멍에서 순이 셋다 올라오면 두 개 씩은 중간에 뽑아 열무김치도 담고 적당한 크기로 자라면 알타리 김치도 담으려 한다. 그래도 한 개씩 남는 무가 (구멍을 세보니) 600개는 될 테니 일부 말라 죽더라도 500개는 남아서 김장에 쓰일 것 같다.


어느 새 드물댁도 올라와 자기 이랑에도 구멍을 파고 씨를 넣는데 한 구멍에 열 알씩은 실히 될 것 같다. 내 이랑에도 심어 준다고 나섰지만 손이 투박해서 세 알씩 못 잡기에 그냥 옆에서 말동무나 해 달라 했다. 이 동네 아짐들 중 농사지을 땅이 없는 유일한 여자여서 '뒷짐지고 슬슬 들여다보며 노는 그미'가 제일 팔자 편한 여자라고들 놀려댄다. 맞는 말이다. 재물이 족쇄가 되고 거기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오죽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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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산보를 하면 한길가 문정식당안주인(우동댁: 윗마을 문상마을에서 살다 내려왔단다)을 만나곤 하는데, 우리 부부를 볼 적마다 아이고, 난 언제나 서방 곁에서 저리 실실 놀러 다닐 시간이 올꼬?” 부러워 한탄한다. 식당 맞은편 시멘트 마당에는 삼백 근은 족히 될 붉은 고추가 깔개 위에 누워 태양에 썬텐을 하는 중. 다만 요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쏟아질 때면 안주인이 어딜 간다는 건 맘도 먹을 수 없으니 고추가 그미에겐 족쇄인 셈. 500백근을 하면 1000만원 돈인데 그 정도 고추 농사를 지으려면 새벽 6시 고추 밭에다 출근 도장 찍고, 저녁 8시에나 퇴근해야한단다. “그래서 사먹는 게 제일 싸게 먹혀!”라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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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보스코와 묵주기도를 하며 문상마을 길을 돌고 더 걷고 싶어 송문교를 오가기로 했다. 드물댁이 송문교 다리께에 앉아있다 10년지기 만난 듯 반긴다. 셋이서 다리 위를 오가며 걷다 보스코는 먼저 올라가고 우리는 마을입구 국계댁집에 잠깐 들렀다. 한 집에 한 명씩 안식구만 남아 있으니 모두 시리고 시린 외로움을 옆구리에 끼고들 산다. 틈나면 TV를 켜두고 거슴츠레 보이지도 않는 눈을 비벼가며 들여다보는 게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다자석들은 바쁘고 코로나로 오지도 몬하니”, 아침 눈 뜨면서부터 켜놓은 TV 소리가 유일한 인기척으로 노인들에게 효도를 한다.


나와 드물댁의 밤마실에 깜짝 놀란 국계댁은 나를 보고 워메, 2층집 서울새대기가 웬일이랑가?” 하여 반긴다. 일흔 넘은 '새댁'은 그 인사에 그저 황공할 뿐이지만 지금 농촌 여성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주는 안타까운 말이기도 하다. 잠깐 들렀다 일어나려 니까 테레비 더 보고 가요.” 그게 손님 대접이다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 송해의 노래자랑을 누가 보나 했더니시골 와서 보니 할매들이 최애하는 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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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 코로나 4단계로 닫혔던 공소예절을 하였다. 지난 주간에 공소회장이 사람을 불러 방 두 개를 나무로 도배하고 대청소도 해 놓았다. 공소 앞 꽃밭도 처음으로 예초기를 돌려 앞이 훤하다. 공소 앞 감나무 두 그루도 베어냈는데 이웃한 그루터기가 하트 모양으로 사랑하며 30여년 살아왔음을 늦게사 우리 인간들이 보았다. 컴퓨터 유튜브 영상으로 성인 김대건 순교자의 생애를 나래이션으로 엮은 작품도 감상하였다. 


금요일부터 사흘간 효소 단식을 하는 중이다. 보스코는 한 끼를 굶어도 세상에 종말이 오기 땜에 나 혼자서. 아침 나절 텃밭으로 내려가 가지와 고추를 따서 올라오니 휴천재 마당에 흰색 카니발이 서 있다. ‘큰딸이엘리가 깜짝 방문을 왔다. 애들이 휴가여서 자기도 딸들한테서 휴가를 받았다나? 내게는 큰 선물이고 반가운 일이지만 손주들 보느라 그렇게 빡빡한 일정에도 우리 생각을 했다니 고맙다. 연년생 두 손주를 보는 게 무던히도 힘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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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기들은 그 사랑스러움 자체가 할머니에게는 충분한 보상이다. ‘죽어도 손주는 안 봐준다는 여인들을 가끔 만나는데 그 인생 참 팍팍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육신이야 힘이 좀 들겠지만 생기가 팔팔한 아기에게서 받는 삶의 에너지가 노화를 물리치는 특효약 아닐까? “당신이 손주를 안 키워 봐서 그런 소릴하는 거야.” 나무라는 친구도 없진 않지만 아무튼 우리 여인은 사랑을 베풂으로써 얻는 에너지로 살아가고 그래서 남정들보다 오래 살지 않던가?


어제 한바탕 큰비가 오고서 밝게 개인 밤하늘에 보름달이 부지런히 구름 사이로 노저어 가고 있다. 저 달이 이울었다 다시 차면 한가위! , 낼모레면 우리 작은아들이 휴천재로 본가방문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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