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12일 목요일. 흐림


* 알림: 최근 '지리산휴천재일기'를 클릭하여 화면이 지나치게 늦게 뜨는 현상을 겪은 분들 계시면 카톡이나 카카오스토리 등으로 문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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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머리가 더위에 과부화 걸렸던지 어제오늘 택배를 받으며 두 배씩 계를 탔다. 우리 둘째 순둥이의 막내 사무엘이 무더위에 휴천재를 다녀간 자기 엄마아빠에게 맛있는 피자를 만들어 대접해서 고맙다며 이탈리아에서 1등 한올리브유를 한 병 보냈단다. 딸들에게 선물을 받긴 해도 손주들에게까지 선물 받는 건 흔한 일이 아니라 고마워했는데, 택배에는 두 병이 왔다


회사의 착오로 잘못 보냈다고 한 병은 반품하려는데, 속 깊은 사무엘이 "어르신께 선물을 드렸는데 잘못 갔다고 반품하시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으니 주문한 내가 한 병 값을 더 드릴 테니 송료는 택배회사가 부담하시죠." 했단다내가 반품하겠다' 다시 연락했는데도 "손님이 많이 오시는 집이니 그냥 쓰세요."란다.


얼마 전 순둥이 본인도 군사반란으로 고생하는 미얀마 교회에 후원금을 보내기로 하고 큰아들에게 인터넷뱅킹을 부탁했더란다. "잔고가 없어서 지금은 안돼요."라는 아들의 대답에 조카딸에게 송금을 부탁했단다. 그런데 얼마 후 "돈을 꾸어 입금했어요."라는 큰아들의 연락! 뜻밖에 후원금을 두 배로 보낸 결과에 순둥이는 "하느님이 등을 쳐서 간을 빼셨나 보다." 했다나?


그런데 어제 올리브유 인터넷 매장에서 연락이 와 "우리 회사의 착오였으므로 한 병은 고객에게  선물로 드립니다"라는 전화가 왔더란다. "세상에 그런 회사가 어디 있나?" 하는 내 반응에 순둥이는 "하느님이 그 회사도 등을 치셨나봐요." 한. 하느님이 당신께서 사람들 맘에 심어주신 관대한 심정을 이용하여 등치고 간 빼시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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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제주 감귤 두 박스가 도착했다. 이웃 언니가 보낸 것이어서 전활 했더니 "하우스 귤 키우는 후배가 선물로 보내온 귤이 너무 맛있어 한 박스 보냈다."는 대답. 한 박스가 아닌 두 박스는 웬일? 작년에도 귤을 보낸다는 게 청귤을 잘못 보내 다시 귤을 보낸 전력이 있던 후배지만, "매번 실수를 하는 걸 보니 무더위가 문제거나 혼자서 상품을 보내느라 너무 바쁜가보다" 라는 언니의 대답. 한 박스는 언니에게 가져다 드리겠다니까 나더러 그냥 가까운 이웃들과 나눠 먹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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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선물한 언니 후배 농민도, 그걸 받고 몇 상자 팔아준 언니도, 한 상자 값 받고 두 상자 부친 그 후배도, 그리고 무더위에 익어버린 머리들을 이용하여 등치고 간 빼신 하느님도, 말복이 다 되어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 맨정신 찾아가시기를 빈다.


어제 텃밭을 정리하고 퇴비를 준 다음 '친절한 잉구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랑하는 잉구씨, 휴천재 텃밭 부직포 걷어내고 퇴비도 깔았슴다. 이젠 밭갈아 주실 일만 남았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늘 고맙습니다." 회신문자가 없어 '군청이나 면사무소 일로 바쁜가보다' 싶어 이 달 20일까지는 그냥 기다리기로 맘먹었다(작년에도 820일에 무를 심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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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새벽에 텃밭에 내려가 붉은 고추를 따고 있는데 트랙터 소리가 난다. 잉구씨다. "남의 문자 씹더니만 이 새벽에 웬일이에요?" 라니까 "내가 오면 대답이제."라며 트랙터를 몰아 밭으로 들어선다. 후진도 전진도 옆작물을 건들지 않고 텃밭 흙을 떡가루처럼 쳐놓았다


우리 동네 과부 아짐들에게 '친절한 잉구씨'로 통하는 이 베스트 드라이버의 마음은 정말 비단결이다. 땅을 다독이고는 "골은 교수님이 직접 치시쇼, ?"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올라가 버린다. 그집 엄니 말씀마따나 "내가 내 속으로 낳았지만 갸 속 하나 참말로 기막히게 낳았어라!" 자랑하는 마음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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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저녁산보길에 자세히 살펴보니 벼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하늘이 흐리멍텅하여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안 내리는 것도 아닌 오늘 날씨. 요즘 물까치떼는 우리랑 거래처를 바꿨는지 잘 안 보이는데 갑자기 산까치와 까마귀가 배밭을 여수고 있다. 보스코는 내가 쌀에 버무려 놓은 농약 '만루포'를 먹고 저것들이 죽는 건 아닌가 애가 탄다. 새가 쪼아 놓은 배봉지가 떨어져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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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물까치는 못된 녀석들이고 산까치는 '이로운 동물'이라고 믿었을 텐데 오늘 현장에서 그의 눈앞에서 배봉지를 쪼다 딱 걸린 까치를 상대로도 무슨 수를 내야겠다. 긴 원피스에 모자를 씌워 허수아비를 세웠다. 자기가 사는 마을 사람들 얼굴도 애어른 할 것 없이 다 기억한다는 까치가 과연 허수아비와 아들 허수를 구분할까? 아무튼 원피스의 여인이 둘이나 배밭을 지키니, 나는 오늘부터 발 뻗고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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