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5일 목요일, 맑음


새벽 다섯 시 진이아빠가 몰고 나가는 트럭 소리에 눈이 떠지면 잠자리에 편히 누워있는 게 농부로서 죄스러워진다. "오늘은 딱히 할 것 없잖아? 더 자!" 하는 남편의 말에도 일어나 주섬주섬 일복을 입고 나서며 "걱정 말아요. 남호리에 가서 신선초 꽃이 어찌 됐나만 보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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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으로 먼동이 터오는 산비탈에서는 진이 아빠가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골짜기를 울린다. 새벽마다 사라지더니 남호리 한길에서 블루베리 '송지농장'까지 올라오는 외가닥길 옆 풀섶이 단정하게 이발을 했다. 이 길을 다니는 사람이 적어도 열 명은 넘는데, 한 길 자라 오른 풀섶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더구나 깎아야겠다는 사람은? 아무튼 깎는 사람은 딱 한 명! 그 한 명이 되기가 정말 힘들다.


우리 신선초 밭은 아직 아침 이슬에 바지 자락이 젖고 깔따구가 오래 만에 오신 손님 반갑다며 사방에서 우루루 몰려들며 격렬하게 환영을 한다. 귓바퀴, 눈두덩, 턱밑을 사수하라! 그러나 어느 새 턱밑을 한방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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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따구는 모기와 달리 쏘이는 순간 쑤시기 시작하여 지름이 5cm 이상 벌겋게 부어올라 닷새는 욱신거린다. 모기는 쏘이는 순간 따끔하지만 긁지 않으면 한 10분 후 가라앉아 흔적도 없으니 우리 몸이 모기에게 쏘이면 '요것 쯤이야!' 라며 흰피톨이 자신만만하게 처리하니 걱정을 않는데 깔따구는 정말 싫다. 턱에다 겹으로 한 턱 더 붙여주었으니 며칠은 갈 게다. 


바위 위에 올라가 신선초 꽃을 찍었다. 그리고 금방 산을 내려오려 했지만 꽃을 감고 오르는 칡넝쿨이나 나팔꽃을 제거하는 일은 '나중이 없는' 즉결처분! 두어 시간 낫질을 하고 걷다가 걸리는 자갈도 주워 돌탑을 쌓았다'공든탑이 무너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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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든탑이 무너지랴?' 하지만 공든 탑도 무너진다윤석렬에게 '수구-꼴통-태그끼부대'와 '보수-찌라시언론'이 그렇게나 공을 들였는데도 기초가 안돼 있으니 그 친구들 고생이 어지간하다. 그 사람은 돼지국밥에 소주 먹느라 신문이나 핸폰 뉴스마저 안 보나? 매일 지리산 골짝에서 호미질이나 하고 솥뚜껑 운전에 여념이 없는 이 아낙도 잘 아는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도 모르나


그럼 뭘 기본으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건가문정권 4년은 대통령이 어찌 처신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철저하게 교육시킨 터라, 혐의자 불러 책상 두드리고 겁박하던 호통만으로는 국민이 안 넘어 갈 텐데.... 온갖 희망이 사라졌다는 건지 보수층은 저 사람 하나에게 무작정 매달리는 광경이라든가  "위기의 윤석렬. 최후의 보루는 조선일보"라는 어느 기사 제목이 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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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리 새벽 농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텃밭에 호박이라도 열려 있나 돌아보는데 넝쿨만 무성하고, 무더위에 그래도 피는 게 다 수꽃이다. 찬바람이라도 일어야 여성 호박이 요염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 같다


그래도 4단계로 원 없이 심은 옥수수는 알갱이도 바깥 주인 닮아 짜리몽땅이지만 매일 열댓개는 따고 토마토도 늘 붉어 있다. 고추와 부추를 베고 상추를 뜯어 한 소쿠리 들고 올라오니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텃밭의 남새들도 매일 들리는 안주인 발자국 소리에 몸을 추스리며 안주인 맞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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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메니카가 내게 귀뜸해준 말. '유영감님이 돌아가시기 전 내게 서운해하셨을 것 같으니까 기도를 해 드리라'. 그렇게 빨리 떠나실 줄 알았으면 화를 안 냈을 텐데 화해할 시간도 없이 가버리셨으니 좀 죄송하고 또 후회된다. 그래서 9일 기도를 드리며 그분이 떠난 자리와 사고낸 전동차에 성수를 뿌려 드리곤 했다.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끌며 골목을 돌아다니던 모습이며 무작정 논두럭을 괭이로 파내던 광경이 생생하여 아직도 살아계신 것 같다. 누구든지 '바로 내일 영이별을 해도 후회 없도록'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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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송전길 로사리오 산보 길에 걸음을 멈추고 휴천강 건너편 삼봉산 원경을 찍는데 그 아래 민박집 안주인이 자기 집을 찍었다고 마구 화를 냈다. 한승질 하는 내가(우리 '순둥이엄마'답게) 득달같이 쫓아내려가 "이 집 사진 안 찍었다. 핸폰 갤러리를 열어보라"고 다그쳤는데 그집 남편의 사과를 받고서 돌아오면서도 "무슨 사연이 있었겠구나. 만나면 미안하다 해야지." 했는데 오늘 저녁 산보길에 그 부부와 마주쳤다


수인사를 나누고 그날 일을 사과하자 젊은 부인이 더 미안해 하며 민박집인데도 도무지 손님은 없고 사진만 찍어 가기에 화가 나 있었다고 변명한다. 정말 내 나이 70을 넘겼으니 '화는 한 템포 느리게!' '내가 아닌 그 사람 입장이 되어 보도록!' 결심을 세우고 어디 한번 해보자


내가 이런 말을 보스코에게 하면 그는 내 초등학교 동창들의 말을 빌어 한마디로 간추린다. "전순란 사람됐군."  어제였나? "여보, 당신이 하루에 나한테 몇 번이나 잔소릴 할까? 쉰 번에서 백 번 쯤?" 하기에 "여보, 당신은 하루에 몇 번 쯤이나 바보짓을 할까? 쉰 번에서 백 번 쯤?"이라는 대꾸로 그의 입을 막았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04963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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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숙고(?)를 거친 아내의 고언에 그는 도대체 진중함이 없을 뿐더러 여자가 같은 사안을 두고 부단히 버전을 바꿔가면서 다양하게 서술하는 화술이 신기하기만 하다는 표정으로 빙긋이 바라만 볼 뿐이어서 맥이 빠진다. 서울 동네친구 영심씨가 이런 광경을 한두 번 목격하고 내린 촌평이 있다. "교수님이 바가지 긁는 당신을 보기로는 할아버지가 쫑알거리는 손녀딸 바라보는 눈길이야. 그저 이뻐죽겠다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당신이 남편한테 잔소리하는 걸 보면 영락없이 쉰둥이로 낳은 막내아들 취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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