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3일 화요일. 아침에는 비, 종일 흐리다


우리 둘째 '순둥이'가 무슨 일인지 이번 주간에는 휴가를 하고 가게문을 닫겠단다. 설에도, 추석에도 '남이 다 쉴 때가 돈 벌 수 있는 기회'라면서 놀지 않고 일욕심을 부렸는데 멀쩡히 놀겠다니 무슨 일이 있음에 틀림없다. 아무튼 이렇게 덥고 코로나로 손님이 없을 때, 더구나 남편도 장염으로 고생한 위장이 아직도 회복이 안된 터이니 그미가 놀겠다는 데는 우리 우오방(牛五幇) 모두 대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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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목사는 '진짜 노는가 인천으로 점검을 나가야겠다'고 할만큼 우리 모두가 그미를 사랑하여 염려하는 중이었다.그런데 내 생각에 노는데 뭔가 사연이 있지 않나 미심쩍어 순둥이에게 사실을 물었다. 엊그제 저녁에 여자 둘이 아구탕을 먹으러 왔더란다. 이미 충분히 매운데도 더 맵게 해달라 별도로 주문을 하더란다. '이보다 더 매우면 배탈이 날 텐데' 걱정을 하면서도 더 맵게 요리를 내놓았는데, 말하자면 두 번을 끓여낸 셈인데, 이튿날 찾아와서 "생선이 덜 익어 배탈이 났다. 보험 들었으면 보험금 받게 처리해달라"고 억지를 쓰더란다


그야말로 전문적인 '보험꾼'으로 보였지만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서 처리해주라 했는데, 장사도 안되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저렇게 남의 등을 치는 인종지말자를 보자니 울화가 치밀더란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아예 여름 휴가라고 가게문에 써붙였단다. 장사를 하다 보면 온갖 바닥인생을 만나는데 자기가 벗어 놓은 신발을 나 몰라라 하고 누가 신을 바꿔신고 갔다고 새 신발 사놓으라는 인간들도 있어 일년에 몇 번씩이나 비싼 신을 사주다가 못 견뎌 신발장이 잘 보이게 아예 CCTV를 달기도 했고, 요즘은 식탁을 아예 걸상과 테이블로 바꿔 신을 벗지 않게 했단다이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인간에 대한 신뢰나 아름다움보다 혐오감이 들까 우리 둘째딸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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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휴가를 맞은 그미가 그 첫날행사로 '담양천주교묘지'에 묻힌 이태석 신부님을 성묘하러 온다기에 한시간 남짓 길이니 휴천재에 들러서 자고 가라 했다. 작은아들이 부산에서 올라와 있어서 휴천재에 들러 저녁만 먹고 가겠단다. 그것만이라도 내게는 얼마나 신나는가.


나는 기분이 좋아 저녁으로 피자를 준비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호박수꽃을 따서 엔초비를 넣어 호박꽃 피자를 해줬다. 자기 남편 '나뭇꾼'이 너무 낯을 가린다고 몇 번이나 얘기한 터라 염려를 했는데 아주 자상하고 재미있는 분이었다. 그를 관찰하던 보스코가 "진짜 순둥이는 남편 전서방이구먼"이라는 인물평을 남겼다.  젖먹일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 터에 대학생 마지막 학기를 맞는 작은아들을 돌보러 밤도와 부지런히 인천까지 돌아가는 어미 마음이 참 애틋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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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녘 한바탕 쏟아진 비에 대자연의 모든 생물이 한숨 돌린듯 시원하다. 머지않아 가을이 되어 선선해지면 염천으로 타오르던 태양의 계절을 기억하면서 시원한 가을을 고마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게다. 하기야 이 타는 듯한 무더위가 벼에도 참깨에도 더할나위없는 선물이기도 하다.


20여년전, 서울집 옆에 있던 내 친구집에 서울여성의전화 '쉼터'가 세들어 있었다. 거기 시설장이던 이문자(아녜스) 선생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혼자 사시던 분이라 며칠 늦게 발견된 고독사였지만 그나마 몇 달 만에 발견된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선생님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연락해와서 오늘 저녁기도 중에 그분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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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 나온 여인들을 거둬주던 선생님과 그 가엾던 여인들, 그리고 딸려 나온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여자가 가장 사랑 받아야 할 남편으로부터 잔혹한 폭력에 시달리던 아픈 기억에서 해방되었는지, 외롭고 힘겨운 인생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지금쯤은 나름 행복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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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네는 돌로미티 한복판 카나제이 라는 계곡 마을에 집을 얻어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오늘은 비 오는 알프스를 혼자 오르면서 그 일대의 알프스 영봉들을 그리워하는 아빠를 위해 핸폰으로 산을 보여주며, 고맙게도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우리가 15년 가까이 보낸 이탈리아이지만 보스코가 아직도 미련을 남긴 곳을 꼽으라면 돌로미티 알프스다. 그가 굳이 지리산 휴천재를 고수하고 여기서 여생을 보내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아서도 그의 인생은 산과 인연이 깊은가 보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590944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8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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