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5일 일요일, 맑고 간간이 선선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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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예초기를 돌리고 난 뒤 남겨진 텃밭은 내가 낫으로 뒷정리를 해야 한다. 특히 민트가 무성한 구석은 손대지 말라 했더니 도깨비방맹이, 바랭이, 명아주, 까마중이 서로 엉켜 우애를 자랑한다. 민트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잡초를 뽑아내고 민트를 베어냈다. 씻어 말려 차를 만들어야겠다. 축대를 막 넘어 기어오르는 호박 넝쿨이 배나무를 타고 오를까, 매실나무에 터를 잡을까, 아니면 그냥 편하게 맨땅에 해딩할까 고민 중인가 보다. 몇몇 순은 보스코의 예초기에 잘려나가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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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호박씨를 여러 구덩이 심어 각자 입맛대로 갈 길을 잡아 주었다. 내가 호박줄기 잡으려고 박아둔 대나무들을 유영감님이 모조리 뽑아가며 넝쿨을 상하지 않았더라면 포기마다 벌써 제자리를 잡아 몇개씩 애호박이 달렸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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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호박들은 사람들에게 유감이 많을 게다. 그런데 다행히 식물들은 포기마다 책임량을 창조주께 배당받나 보다. 늦게 심어 늦게 열리면 늦게까지 열매를 맺고 일찍 시작한 열매는 일찍 자식농사를 끝낸다. 아마 올해는 서리 맺을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 책임량을 달성할 테지. 보통은 여름 더위를 피해 찬바람이 일면 많이 열리니 올핸 호박꼬지를 많이 할 수 있겠다.


어제 오후에는 유영감님이 마지막 길을 떠나신 또랑을 둘러보았다. 영감님을 저승길로 서둘러 모셨던 전동차는 개울 밖으로 인양되어 비닐 상복을 덮고서 고개를 숙이고 반성 중이다. 어르신 상반신이 빠지면서 충격을 받았더라면 스스로 고개를 들고 나올 기력도 없을 터였지만, 한 노인을 저승으로 실어 나르고도 개울은 맑게도 졸졸 천연덕스럽게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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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시라, 가서는 젊은 날처럼 정갈하게 사시라, 생전에 그 앞에서 꿈쩍도 못하셨다는 엄하신 마나님 앞에서도 행복하시라고 개울 앞에서 주모경을 바쳤다. 보스코가 그 영감님에게 대세 드릴 기회를 엿보던 참이었으니 그 자리에 성수를 뿌리고 영감님을 위해 9일기도를 바치는 중이다. 오늘 로사리오 산보 길에는 우리가 이 동네에 이사온 뒤 세상을 하직한 노인들을 기억하며 묵주알을 돌렸다. 적어도 최근 몇 년 새 보스코의 주선으로 이 동네 두 노인이 대세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


유영감님이 돌아가신 후 그 집 층계에 출생증명서 없이 우리집에서 입양간 꽃나무들이 허리를 반이나 휘고 한여름 더위에 말라 죽어간다. 주인의 상()을 치르는지 순장(殉葬)을 하겠다는 건지... 유영감님이 논농사로 더럽힌 몸과 옷을 씻어 내던 동네 우물엔 그래도 깨진 플라스틱 바가지가 두둥실 뱃놀이를 하기에 바가지로 떠다 그집 화초에 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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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텃밭에 일부러 2~3주 간격으로 심은 옥수수들이 용케도 날짜를 제대로 계산하여 제때에 싹을 틔우고 제때에 나고 커서 제때에 아기들을 등에 업어 하얗고 고른 잇몸을 내보이며 반가이 주인을 맞는다. 날마다 하루에 열 개 쯤 따서 쪄놓으니 진이네와 우리 두 집은 물리도록 먹고 남는다


우리 어렸을 적 시골에 살 적엔 엄마가 매일 아침 소쿠리 가득 옥수수, 참외, 토마토, 감자를 삶아 내놓으시며 의기양양하시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때 엄마는 건사할 식구가 최소한 일곱이었고, 나는 지금 보스코와 딸랑 둘이지만 엄마의 DNA가 나에게서도 힘차게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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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낮에 음식을 만든다는 건 지옥훈련에 가까운 고난의 행렬. 오늘 아침 주일 공소예절을 끝내고 돌아와서 보스코더러 배고프면 식탁에 차려 놓은 옥수수 먹어요하고서 나는 부엌에서 오이 냉국, 치커리 나물, 깻잎 졸임, 호박 나물, 가지구이 반찬을 마련했다. 가지구이를 이탈리아식으로 하려면 열댓 개 정도 구워야 한 접시 나오니 불과 더위의 공포를 넘어서야 한다.


장마가 짧게 지나고 아침저녁 붉은 구름이 염천을 예고하는데 그래도 대서가 지나선지 오늘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 무더위를 모르고 하루를 넘겼다. 그래도 부엌 온도는 50도는 될 성 싶은데 네 개의 화덕이 펄펄 끓는 식당 주방에서 고생할 우리 순둥이의 고생을 생각하며 견디기로 했다. 두 손주를 맡아 씨름 하느라 숨이 막힐 큰딸에게는 저 상큼한 지리산 공기라도 한 보따리 택배로 부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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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무더위에서 온몸을 꼭꼭 싸매고 일하는 건설현장 노동자를 위해서라도 아침 저녁 버얼건 구름을 띄우는 여름을 빨리 몰아내고 싶다. 도쿄의 초라하고 검소하고 썰렁한 오륜기 행사가 안쓰럽던 터에, 저런 건설현장 일꾼들 주 54시간 노동은 아직 너무도 사치스럽게 보여 주120시간의 집약노동을 시키겠다는 '새-대통령'의 생각 없는  노동정책이 개그로 전락하여 삼복더위의 짜증을 더해주고 있다니.... (얼마 전까지 보수언론이 윤총장의 대통령 자리는 '학실하게 따논 당상'처럼 보도해와서 하는 말이다.)


(퍼온 자료)[*혹자는 '기절' '휴식' 자리에 '부고' '발인'이라고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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