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2일 목요일, 대서(大暑). 맑음


낮에는 무지하게 더워도 해가 지면 땅도 쉬이 식는지, 풀과 숲이 많아 아예 땅이 덜 데워지는지, 어둠이 내리면 한더위도 뒷걸음질 치는지 세상은 살 만하다. 어젯밤에도 이불을 챙겨 덮고 새벽녘엔 창문을 닫았다. 도시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에 덕을 본다면 우리는 지리산과 더불어 그 혜택을 누리며 산다. 그래야 인생이 공평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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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더위에 조용하던 길냥이들이 밤이 깊어지자 달밤에 연인을 찾는 소리가 요란하다. 저 구름새 달처럼 좀 괴괴한 어둠 속에서 내는 소리는 머리 풀고 소나무에 목이라도 매는 듯 섬뜩하다. 조금 전 로사리오 산보 길에 조막만한 새끼 고양이가 우리를 피해 깨순 뒤로 숨어들던데 저 새끼가 다 크기도 전에, 어미는 또다시 새끼를 배니 먹을 게 별로 없는 산속이어선지 눈에 보이는 고양이들은 모두 깡말라 있다더구나 신식고양이들은 쥐를 잡는 일도 없는 듯, 시궁쥐가 고양이 앞을 유유히 오간다. 예외가 있으니 대장 수컷 한 마리만 쥐를 잡나본데 새끼호랑이 만큼 커다란 몸채에 우리 정자 그늘에 길게 누워 잠만 자고 있으니 그 또한 밉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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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우이동 집에 드나들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암컷이 새끼를 낳았지만 수컷이 발견하면 물어 죽이기에 용케 숨긴다는 게 하필 연탄광이었다. 그런데 열다섯 장씩 쌓아 올린 연탄 사이로 새끼가 떨어져 어미가 얼마나 애달피 울어대는지 나 혼자 수백 장 연탄을 다 꺼내고서 새끼를 꺼내준 적도 있다. 암코양이가 새끼를 낳다가 힘이 빠져 사경을 헤매는 장면을 보고 고무장갑을 끼고 산도에서 끄집어내어 살려낸 그 새끼 고양이여서 산파로서의 A/S 삼아 그 고생까지 했다.


 아비 고양이를 보기만 하면  막대기를 들고 쫓아 보냈더니만 결국 새끼 찾아 죽이기를 포기하고 사라졌다, 그 뒤로 우리 집에서만은 암코양이의 모권이 확실히 보장됐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암코양이들 여권 신장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도 지리산 으슥한 달밤에 애 우는 소리를 밤새 내는 저 암코양이들 소리는 정말 듣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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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나더러 유영감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드리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홀아비로 사는 노인이 안쓰러워 말벗도 해드리고 종종 반찬도 해다 드리고 가끔은 식사도 대접했는데 "꽃 좀 가져갔다고 독하게 굴더라"며 나를 서운해 하더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나 보다. 당신네 화단에 심으려고 휴천재 꽃밭에서 뽑아간 꽃은 그저 '꽃이 좋아 그러셨나 보다' 넘어가곤 했지만 막 피기 시작한 꽃을 낫으로 베버렸기에 나도 꼭지가 돌아 찾아가서 혼내드린 적이 있었다. '낫을 새로 갈았는디 얼매나 잘 드나 보느라' 그랬다는 천연덕스러운 대꾸가 나왔는데 그게 그분과의 마지막 댓거리일 줄이야


맘을 풀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기도 중에라도 달래드리라는 말 같다. 나 역시 제일 가까운 이웃으로 살았으니, 영감님이 나를 성가시게 했던 일을 꼽자면 수도 없이 많지만 죽음 앞에서는 용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오늘 로사리오 중에 그분을 위해 한 단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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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도 정자에 앉아  대서 한더위를 식히던 너댓 명 아짐들이 유영감 가신 일을 입담에 올리고 있었다. "그 영감 죽을 복 하난 타고 났어!" 라며 부러워했다. 다들 자기 죽음을 지척에 둔 나이들이다. "그 고집에 양로원에는 못 계시고 마을에 살면서 노망이 심해지면 동네 사람들도, 자식들도 못할 노릇인데..." "첫째, 본인에게 잘 됐고, 둘째 자식들 복인기라, 그렇게 가신 게."라고 그분의 죽음을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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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촌댁처럼 나이 94에다 새벽 일짝부터 달포 후 돌아올 할배 제사에 누름적 부칠 파 심어 놓고, 수돗가에서 빨개 벗고 찬물로 깨깟이 목욕하고, 맨몸으로 방에 쏙 들어갈 수 있는 여자"는 살아남아도 된단다. "저 나이에도 자식들 수발 안 받고 혼자 잘 살고 계시니" 그 또한 모두 부러워하는 건강이다.


어제는 중복이었다. 강원도에서 온 옥수수가 생겨서 삶아 들고서 미루네에 가져갔다. 더위에 가만 앉아 있기만도 힘든데 다음 주에 효소공장 위생검사까지 통보되어 대청소 중이란다. 가까운 함바집에서 그미가 늘 먹는 점심을 먹었다. 식판에 담아 주변에서 일하는 일꾼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여럿이 먹으니 집밥은 아니지만 늘 바쁜 그미의 일손을 덜어주니 그런대로 고맙다.


인화씨네는 저 천년송과 바위에 반해서 귀농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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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동강 솔바우정원인화씨네에 들러 복숭아를 원 없이 얻어와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백연마을 쪽 복숭아는 몇해째 먹어봐도 맛이 싱거운데 동강마을 뒤 인화씨네 복숭아는 달고도 맛있어 택배 맞추기도 힘들 만큼 일손이 바쁜데도 성품 지긋한 남편과 둘이서 7000평 과수원을 해내고 있다.


오늘 아침에 나오던 이장의 방송: "지리산 오는 사람들 땀시 함양에 코로나 감염자가 여섯이나 나왔으니, 대처 사는 자손들 고향에 오지 말라카이소. 오면 이장한테 신고하이소!” 아니, 자식들이 간첩도 아닌데, 방학 맞아 고향 할매 집에 왔다고 이장한테 신고하라고? 이게 뭔가 인공시대도 아니고! 코로나 병균 하나가 세상 인심 다 버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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