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1일 목요일. 맑음


새로 산 핸드폰에서 느닷없이 카스가 사라졌다! 아침부터 그걸 복구하느라 서너 시간을 머리를 썼는데도 소용없어 그냥 내 머리가 한물 갔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속이 몹시 상하다. 벌써 6년전 일이지만 예전에 문섐이랑 김원장님이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밀라노에서 택시를 탔다 핸드폰을 잃고 황당했을 생각을 하며 그 불행보단 좀 낫구나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5472


여기는 한국 그미는 이탈리아에서, 나는 한국말에 능통한데 그미는 이탈리아말을 전혀 못 하던 처지, 여기서는 뭐든지 빨리빨리’인데 거긴 만사가 만만디’, 여기서는 도와줄 사람이 지천인데 거기서는 지인의 전화도 주소도 모른 채!  이국 땅에서 몇 달을 지내야 하는데 모든 신용카드가 없어지고 핸폰에 입력한 지인들 정보가 모조리 사라졌었으니! 그날 두 사람은 바로 지옥을 맛보았으리라그때 문섐의 딸이 한국에서 보스코에게 이메일을 보내  S.O.S.를 쳤으므로 토리노 근처에서 여름을 나던 우리는 밀라노 가까이에 있던 빵고 신부와 함께 두 사람이 묵고 있는 밀라노 호텔을 찾아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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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일단 '도난신고'를 하러 밀라노 경찰서에 찾아가 보니 경찰서 그 기다란 줄이 대부분 핸드폰을 잃고 애태우는 외국 관광객들이었다! 담당 경찰이 하필 '천하태평 나폴리사람'이어서 애가 타는 신고자들은 아랑곳 않고 일동에게 농담을 걸며 안심을 시키고 심지어 오솔레미오를 불러 위로까지 해주던 일아가씨! 걱정 말아요. 여기 태어날 때 핸드폰 쥐고 태어난 사람 있어요? 하나도 없죠? 죽을 때 핸드폰 갖고 갈 사람 있나요? 없죠? 다 빈손이에요.” 어차피 목숨 걸 일 아닌데 지구가 끝날 것 같은 표정을 짓지 말라는 말이다


나 역시 이번에 핸드폰을 잃어 먹은 일이나 잘못 꼬인 프로그램에 좀 대범하자고 맘먹고 나니 하늘이 무너질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엊저녁에 일기를 쓰려고 태블릿을 열었더니만 아침에 사라졌던 카스가 거기에는 떠있었다! 이 또한 기적 같은 일. 새 핸드폰은 여전히 카스에 먹통이지만 작은아들이 다다음 주 만나서 해결해 주겠단다. 아무튼 우리가 핸드폰에 얼마나 매어 사는지 이번에 톡톡히 배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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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일찍 텃밭 이웃에서 대나무를 잘라 오이밭에 지주를 해주고 있는데 보스코가 내려와 전날 텃밭에 부직포 씌우다 소나기가 와서 멈췄던 작업을 마저 끝냈다. 김장채소 심을 때까지 잠시 묵혀야 하는 텃밭에 풀이 나는 걸 막자고 꾀를 낸 게 부직포를 깔아버리는 일이다. 부직포는 빗물이 새들어가므로 흙이 마르지는 않는다. 텃밭 오이와 가지 고추가 넘치게 열려 요즘은 그걸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느라 재미가 쏠쏠하다. 딸들이 좀 가까이 살아 갖다 먹으면 참 좋으련만...


다음 주에 늦장마가 온다는 예보! 비가 오면 풀밭 잡초는 제 세상 만난 듯 한길 넘게 자라오르고 남호리 신선초 밭은 밀림이 될 텐데... 오늘 새벽에 그 생각이 들자 번쩍 눈이 떠진다. 아직 색색 새벽잠을 자고 있는 보스코 먹으라고 아침상을 서둘러 차려 놓고 내 간식을 챙기고 일복을 입고 낫을 들고 15년 묵은 소나타를 탱크처럼 몰고서 남호리로 전진하는 전사(戰士) 전순란! 


새벽 다섯 시가 미처 못된 시간인데도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를 기웃거리며 아침꺼리를 찾고 아직도 짝을 못 찾은 뻐꾸기는 애절하게 님을 부르며 뻐꾹거리고 있다. 오늘 절반을 매면 하루만 더 오면 되고, 아니면 서너 번 남호리로 아침 번개를 해야.... 풀밭에 들어서니 깍따귀가 굶주린 아귀떼로 몰려든다얼른 망모자를 뒤집어쓰고 벌레 퇴치 약을 온몸에 뿌리고서 신들린 사람처럼 낫을 휘둘렀다.


80대 여인의 부끄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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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로사리오 산보길. 당신 밭에서 걸어나오던 잉구어머니얼굴이 온통 부어 있었다! 나 어렸을 적 동네에서 가장 사나운 여자애 얼굴 같았달까? 깔따귀에 온통 물려 마치 손톱으로 할퀴고 뜯긴 얼굴 같아 내가 그만 깔깔 웃자 할머니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나야 웃지만 본인은 무지 괴롭고 또 부끄러운가 보다. 비록 저만치 떨어져 앞서 가고 있었지만 함께 산보길 나선 남정네(보스코)도 있지 않은가! 여자는 저 나이 되어도 남자 앞에 부끄러운 얼굴을 보이기 싫은가 보다.


아침 이슬에 젖은 남호리 풀밭에서 온몸은 젖고 흙물이 들어 흙강아지가 따로 없다. 그 와중에 보스코가 속없이 자꾸 전화를 해와서 새로 받은 전화기가 흙범벅이 된다! 아침잠 깨어 엄마가 안 보이자 으앙 울면서 집안을 돌아다니는 어린애다. 엄말 찾지 말라고 밥상에 메모까지 남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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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까지 풀을 매고 일어서려는데 허리가 안 펴진다. 그래도 나무 그늘에서 싸간 아침을 먹고 나니 얼마나 허기졌던지 그제야 세상이 보인다. 온몸이 흙강아지가 되어 돌아온 나를 보고 내 차림이 물논에서 걸어나오는 유영감 수준이라며 보스코가 웃음을 터뜨린다. 흙탕옷을 빨고 샤워를 하고 보스코가 허리를 밟아주니 몸이 펴져 모처럼 낮잠에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드물댁이 혼자서 고생했다고 남호리 신선초밭 매는데 내일은 함께 가주겠단다. 내일은 나도 하루 쉬고 싶었는데... 고마운 이웃마저도 내 몸을 안 봐준다. 그래도 날 도와주겠다니 감지덕지할 일이요 일기를 쓰고 난 지금 한밤중이지만 내일 드물댁이랑 먹을 새참을 준비해 놓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70대 여자의 '안부끄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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