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9일 화요일, 흐리고 소나기 


지난 주일 우리 효자 호천이는 엄마가 안식을 취하시는 실버타운 유무상통 '하늘문'에 가서 성묘를 하고 엄마가 그 양로원에 계시면서 15년 넘게 다니시던 노곡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단다. 자녀들이 드리는 용돈이면 모조리 교회에 헌금하시던 정성을 아는 그곳 신도들은 조장로님 신앙심을 기억하고 있다이것으로 엄마가 사셨던 삶의 끈이 다 정리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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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 제법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새벽 다섯가 넘자 저절로 눈이 떠진다. 보스코에게 날이 밝았으니 남호리에 돌 주으러 가자니까 순순히 따라나선다. 워낙 산자락이라 돌이 많은데다 포클래인으로 긁어 뒤집어 놓았으니 땅속에 숨었던 돌까지 튀어 나와 사방에서 발에 걸린다. 예초기를 돌릴 때마다 날이 튀어 위험도 하고 예초기 날도 쉽게 상한다는 점과 한주일 전 이사야가 와서 풀을 베느라 고생 많았으므로 한 사흘 새벽마다 남호리 가서 돌을 주워 모으기로 했다. 아침도 싸가서 먹자고 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일을 해 보니 위쪽의 돌줍기는 의외로 두어 시간 안에 대강 마무리 되어 그 다음으로는 보스코는 칡넝쿨과 복분자를 낫으로 토벌하고, 나는 우리가 심은 나무에 부직포를 씌운 구멍 틈새로 자라 오른 잡초를 뽑고 신선초 이랑 사이에 돋아난 풀을 맸다. 신선초 밭에는 휴천재에서부터 신선초에 더부살이하던 흰민들레, 나팔꽃, 원추리, 코스모스 등이 남호리까지 따라와 한 지붕 아래 살림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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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초봄에 심은 호도나무는 마흔 그루 중에서는 딱 한 그루만 죽었고(혹시 장마 지나고 뿌리 곁에서 새싹을 올릴지 몰라 이번에도 뽑아버리지 않았다), 밤나무 네 그루. 체리 여덟 그루, 엄나무들이 실수 없이 모두 살았다. 내가 나무 심은 정성을 아시는 분께서 거의 매주 비를 내려 주셔서 애태우지 않고 잘 컸다.


세 시간 정도 쉬지 않고 낫을 흔들고 나니 더는 팔이 안 올라가 그만 아침을 먹자고 했다. 음식가방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니 갈나무는 바람에 잎을 살랑거리고, 어린 소나무들은 부는 바람에 맞춰 몸을 흔들고, 산벗나무에서는 새가 울고, 멀리 흐르는 강물은 재잘거리며 갈 길을 재촉하고...  ', 여기가 낙원이구나!' 싸온 떡과 빵, 시원한 커피우유, 까서 조각내서 들고 온 사과 키위 수박... 한 상 차려진 아침에 우리 둘은 모든 피곤이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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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님댁에서 얻어온 마늘을 묶어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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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대밭에서 꺾어온 죽순을 다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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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보스코는 샤워하고서 쉬겠다고 올라가고 나는 흙투성이 된 옷과 신발을 빨아 널었다. 진이 엄마 말마따나 가끔 하면 힘 드는데 매일 하면 괜찮아요”하더니 과연 자꾸 하니까 오히려 몸이 풀린다. 며칠 전 캐 놓은 감자를 골라 담아 지인들에게 택배로 부쳤다. 농협에서 농산물은 택배비 4000원을 균일하게 받아서 한진택배에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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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언니가 친환경소독이라며 식초1, 소주1, 1을 섞어 고추나 채소에 주면 병충해가 없어진다기에 그렇게 배합해서 루콜라와 바질에 주었더니만, 루콜라는 하얗게 잎이 타버렸고 바질은 아예 죽어버렸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식초는 50:1로 물에 섞으라고 나와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실수도 있는 법. 모험 하다 머리가 깨질 수도 있지만 머리 깨지는 게 겁나 아무것도 안 하면 항상 그 자리뿌리가 해충 제거에 좋다 해서 어제 남호리에서 캐온 '미국자리공'도 일단 끓여 놓았으니 노린재가 장을 보는 오이에  이걸 뿌려봐야겠다. 걱정스러우니 우선 엷게 물과 섞어서 주려고 한다


잃어버린 핸폰 대신 쓰라고 빵고 신부가 중고 핸폰을 하나 사서 모든 앱을 깔아 보냈다. 오늘 아침 함양 읍내로 나가 택배회사에 운송된 핸폰을 찾아 SK에 가서 심-카드를 넣고, 경찰서로 가서는 운전면허증을 (내 것과 보스코의 '장롱면허증' 둘 다) 신청했다. 핸폰에 끼워져 있다 분실된 탓이다. 


내가 24일 아침에 임실로 떠나면서 차 트렁크 위에 핸폰을 올려놓고 출발한 채 고속도로를 달렸으니 아마도 차에서 떨어지고 뒷차들 바퀴에 밟혀 악살박살이 났을 듯하다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우리 큰아들도 알프스에 갔다 등산화를 벗어 차 지붕에 올려놓은 채 집에 와서 보니 한 짝은 사라지고 한쪽만 남아 하는 수 없이 버렸다며 나이 40대 아들도 이러니 70대 엄마는 지극히 정상이에요.”라며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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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진이 엄마도 보닛 위에 지갑 올려놓고 달린 적 있고, 내 핸폰 분실을 동네 방송으로 공지한 우리 이장도 차트렁크 위에 핸폰을 두고 달렸다 어느 산골 커브길에 떨어뜨린 얘기를 들려준다(이장은 논가에서 핸폰을 주운 사람이 전화해서 요행히 되찾았단다). 핸폰 분실이 드문 일은 아닌 성싶지만 오늘도 군청에 들러 일을 보고서 핸폰을 창구에 둔 채로 돌아오다 아차 싶어 돌아가 찾아오니 "전순란의 성한 시대는 간 것 같다"는 보스코의 탄식을 들어야 했다. 


오후엔 후드득 거리는 빗속에 감자 캐고 빈 밭에 부직포를 씌웠다. 드물댁도 지나가다 일손을 도왔다. 더운 여름은 땅도 흙도 안식하는 계절이다. 김장거리 심을 가을까지는 전순란도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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