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7일 일요일, 맑음


서울에서 돌아오자 이틀간 감자 캐고 풀매는 텃밭 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그제 새벽에야 남호리엘 갔다. 이사야의 예초기와 미루의 낫질이 지나간 자리는 풀들이 쓰러져 나무들도 보이고 신선초도 보이는데 미쳐 손길이 안 닿은 자리는 풀들이 무서운 속도로 땅을 점령했다. 예초기 돌리는 곳곳에 커다란 돌멩이가 복병으로 숨어 있어 이사야가 여간 힘들지 않았겠다. 자기네 공장 일로도 바쁜 사람에게 우리 밭까지 풀을 베게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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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에 태어난 아이가 파파 할머니가 되어도 아직 끝나지 않는 한국전쟁! (우리들 가슴에 겨레를 증오하고 경원하는 마음이 있는 한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리산종교연대가 금요일 오후에 산청함양 추모공원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사단법인 '숲길`도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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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71.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정전의 한반도. 지나간 좌우 남북대립에 스러져간 영령들을 기억하고 한반도 평화정책을 위해. 군부 구테타로 신음하는 미얀마의 시민들과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간 대립과 분쟁이 종식돼고 평화 정착을 위해 드리는 생명 평화 기도문을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순으로 바쳤다. 6.25와 그때의 비참함 그리고 전쟁이 가져오는 온갖 병폐를 이미 경험한 우리로서는 지구상에서 지금도 그런 상황에 있는 (미얀마와 팔레스티나) 사람들과 연대와 책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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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후 그곳에 묻힌 분들의 묘역을 한 바퀴 돌았다. 돌면서 돌아본 묘석에 적힌 사람들의 생몰 연월일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10세 미만의 어린이거나 여자였다! 한 살이 안 된 아가도 엄마 품에서 공비라는 누명 아래 막 뜬 눈을 감아야 했다! 이 울분이 우리가 각성하여 평화를 염원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오랜만에 율리아나 수녀님이 서울에서까지 오셨고 부산에서는 장교무님이 오셔서 옛 동지를 만난 기쁨도 있었다. 뜻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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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함양 느티나무독서회 아우들이 엄마를 여읜 나를 위로하러 찾아왔다. 정옥씨, 희정씨, 미해씨. 언제라도 보면 반가운 사람들이다. 코로나 사태로 함께 모인지 너무 오래돼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이 가물가물하지만 걱정 없이 서로 만날 날이 빨리 오리라 기대해 본다. 시골생활을 지적으로 교양으로 넉넉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아우님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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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아침 공소예절에 온 식구가 모두 다섯. 누구는 블루베리 수확으로, 어떤 이는 벌꿀 따느라 도저히 시간을 못 낸다. 시골에서는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이 있어 주일 지키는 일보다 먼저일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는 개신교 신자들이 주일 예배에 가톨릭 신자들보다 더 충실한데, 내가 구교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다 보니 맘이 널널해져 구교가 더 편하고 익숙하다. '하느님이 우리 사정을 잘 아시리라'는 핑계로 맘편히 먹고 살지만 개신교 가정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어쩌다 주일학교라도 빠지면 당장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질 것 같던 두려움이 뼛속에 아직도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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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에게도 주일은 꼭 지키게 닦달했더니만 부모의 하느님이 두 아들의 하느님으로, 그리고 두 손주의 하느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엄마의 장례식 때에 보니 우리 다섯 형제 부부와 그 다음 세대까지 모조리 신구교로 '예수 믿는' 집안이 되어 있었다. 


오늘 오후 스.선생 부부가 울 엄마의 귀천에 조의를 표하러 휴천재를 방문했다. 체칠리아에게도 90 넘는 어머니가 계시고 아직은 건강하셔서 혼자 살고 계시지만 늘 마음이 안 놓여 무남독녀 체칠리아가 자주 부산을 오가며 효성을 다한다. 우리 세대를 보면 거의가 부부로만 살고, 혼자 된 사람까지 자녀네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곳 문정리만 보아도 홀어미 돼서도 자식과 같이 살기를 다들 기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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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만난 친구의 탄식. 몇 해 만에 아들 집엘 가서 사흘을 보냈는데 매일 저녁은 나가서 사 먹이고, 아침에도 쿠팡에서 새벽에 배달한음식을 데워 주는데, 그러면서도 며느리 입에서 무슨 말이라도 나올까 아들이 어찌나 아내 눈치를 보는지 너무 속상하더란다. 그러면서 만나기는 힘들지만 멀리 스위스로 아들네를 보낸 내가 제일 마음 편한 사람이라나? 


호천이 전화를 받으니 봐라봐! 누나가 매형 전활 뺐었잖아?” 하며 막내 호연이와 둘이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핸폰 저 편에서 들린다. '누나가 핸드폰을 잃어먹었으니 틀림없이 매형 것을 뺐아 쓰고 있으리라' 둘이서 내기라도 했나 보다. 우리 큰딸도 핸드폰 잃은 게 대사님이었다면 (아내의 꾸중에) 죽었다 복창했을 거에요!”라고 날 놀리니 어쩌다 조손하기 이를 데 없어 순할 자를 이름으로 쓰는 내가 이토록 못된 여자로 오해받고 있으니(?) 참 억울하다.


엊저녁 해거름 산봇길에 몇 년째 불이 꺼져 있던 강건너 자영이네집에 불이 켜졌기에 오늘 저녁 로사리오 산보 길에 그리로 가 보았다. 누가 와서 주말을 지내고 갔는지 타이머로 켜지는 정원등만 일몰시간에 맞춰 켜져 있고 인기척은 없다. 불꺼진 집은 쓸쓸하다. 휴천재에서 제일 가까운 요안나 아줌마네도 아줌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자 빈집에 잡초만 우거진 어둠 속이다. 몇 년 후면 많은 집이 저렇게 어두운 폐가로 변할 테고 우리 집 휴천재도 다르지 않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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