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2일 화요일. 맑은 뒤 소나기 그리고 우박도


세종시를 한두 번 지나간 일은 있었지만 방문한 건 처음이다. 보스코가 살레시오 고등학교 후배인 은퇴 사제 김정수 신부님을 방문하고 점심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그분은 대전교구 여러 본당에 주임으로 계시면서 늘 보스코를 초대하여 교우들에게 강연을 하게 배려해주셨다. 이번에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받으며 대주교로 승품 받은 유흥식 대주교님에게 축하전화를 드리니 잠시 만나자는 말씀도 있어 대전에서 세종시로 옮긴 새 교구청도 방문키로 했다.


대전교구의 새 교구청은 널따란 대지에 품위 있게 자리잡아 계획 신도시 세종의 품격을 한결 높여 주었다. 교구청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온통 녹지와 호수로 정부청사까지 이어져 있다. 세종시를 멀리 감싸고 있는 주변 산세는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아름다웠고 여러 관공서를 한 마리 용처럼 나즈막하게 이어놓은 건출물이나 호수공원도 무척 풍광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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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님은 로마에서 포콜라레 운동으로 유학하실 때부터 우리와 알고 지내던 분이고 보스코가 공직에 있던 기간에도 대사관에 여러 번 방문하신 분으로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교황님께 장관 임명을 받은 비밀이 끝까지 간직된 경위, 코로나로 한결 위기를 맞은 사제들의 신원 문제,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과 풀어갈 과제 등을 두고 보스코와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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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신부님이 교구청으로 오셔서 교구장 비서신부님의 안내로 새로 지은 교구청을 함께 둘러보았고 오가는 복도에서 보좌 김종수 주교님,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신부님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교구청을 나와 신부님댁을 방문하고 그 아파트 가까운 전망대에 올라 세종시 전체를 관망하기도 했다. 김신부님의 아들 신부님’(가톨릭에서는 신학교에 가도록 추천해주고 후원해준 주임사제를 아버지처럼 받드는 전통이 있다)과 함께 점심을 대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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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김신부님은 우리 부부를 호수공원으로 데려가 구경을 시켜주셨으므로 호반의 산보와 커피숍에서 커피를 들면서 보스코와 한솥밥 먹으며 당신이 걸어온 우정을 조곤조곤 나누었다. 6.25 전쟁에서 부모님을 잃고 이웃 분의 호의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사연이 보스코와 비슷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는 듯했다.


(김신부님은 휴천재도 방문하셨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5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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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부님과 헤어져 대전까지 돌아가 정림동 수도원에 맡겨둔 짐을 찾아 싣고서 지리산 휴천재로 떠났다, 두 주만의 귀가였다. 지리산은 언제 돌아와도 홀로 기다리다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는 엄마 같아서 그 품이 따뜻하다. 


엄마의 눈을 감겨 드리고, 죽은 엄마 옆에서 이틀을 지내고, 엄마를 관에 담아다 하얗게 태워 한 줌 재로 만들어 항아리에 담아 봉안소에 모셔 놓고 떠나온 서러움이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이젠 정말 엄마가 없구나!” “산 사람들의 땅에서 다시는 못 보겠구나!” 하는 외로움에 장례 때엔 안 나오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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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들어서니 밭마다 감자를 이미 캤다. 어제가 21일 바로 하지, 하지감자캐는 날이었다. 오늘 새벽 다섯시가 못 되어 먼동이 트자마자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내려갔다. 보스코도 뒤따라 내려와 이랑을 덮은 비닐 멀칭을 걷어내고 내가 호미로 캐낸 감자를 상자에 담아 감동으로 실어 날랐다. 염려했던 것보다 알도 잘 들었고 썩지도 않았다. 인간이 엄지 한마디ㅣ 만하게 감자를 쪼개서 심으면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굵은 감자를 대여섯개씩 매달아 돌려주신다. 정말 저 흙 속에 하느님의 기운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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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감네 논에도 이태만에 벼가 심어졌고 벼를 살피러 올라온 유영감님이 그동안 어딜 가고 없었느냐며 우릴 반기신다. 우리가 감자 캐는 모습을 보고선 웬 감자를 이리 많이 심었노?” 하시더니 당신은 절대 감자를 안 심는단다. 당신이 어렸을 적 보릿고개마다 보리 몇 알에 감자만 가득 넣은 감자밥으로 고픈 배를 채웠노라며 그 보릿고개가 지긋지긋해서 이제는 감자 먹는 사람들 이해가 안된다고 푸념하신다. 우리 아버지가 감자바위강원도 평강 분이라서 난 언제 먹어도 좋은 게 감자다. 풋감자를 삶아 올리브유에 노릇노릇 구워서 저녁상에 올렸더니 보스코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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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부터 잔뜩 찌푸린 얼굴로 오후 내내 하늘에서 도구통(돌절구)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해거름엔 소나기로 바뀌고 식사 중에는 우박으로 쏟아졌다. 분주했던 이틀을 일기장에 올리는 이 시각, 뒤꼍 오죽밭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듣기에 좋다


엄마 아빠는 40여년만에 하늘나라에서 방가방가 하실 테고, 내 남편은 침실에서 꿈나라로 떠났고, 두 아들과 한 며눌과 두 손주가 먼데서나마 행복하니 더 바랄 게 뭔가! 보스코가 좋아해서 언젠가 자기 묘석에 새겨달라는 시편(116,7) 문구 그대로다. “주님께서 너에게 잘해주셨으니, 고요로 돌아가라, 내 영혼아!”


옛날엔 다 하지 께에 모심고도 잘만 가을걷이를 해서 먹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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