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6일 일요일, 맑음


올해는 박하 차를 마련하는 시기가 좀 빨라졌는지 향이 전년만 못하다고 타박을 했는데 한아름 잘라다가 마루에 걸어 말리다 보니 박하향이 거실 가득해서 머리가 맑아온다. 박하 차는 부서져 가루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게 잘라야 한다. 산청 대장간에서 사온 작다란 작두가 수고를 덜어준다. 박하는 상처가 향기가 된다. 우리도 상처 입을 때 거기에 묵묵히 참고 견디면 언제가 그 향기를 맡은 친구가 다가오려니... 마루 그늘에 말린 박하를 오늘 병병에 담았다. 선물 받을 이들이 그 향기에 몸도 마음도 맑아지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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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옆 허영감댁을 지나며 집안을 들여다보니 기척이 없다. 그의 아내가 집 앞에 그리도 곱게 키우던 접시꽃이 올해도 변함없이 피었기에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도종환 접시꽃 당신에서)라던 저 시인의 심경 그대로이리라이틀 전 연화동에서 허영감을 만났는데 경운기로 그곳 논에 심을 모판을 나르고 있었다안사람이 먼저 간 그 남자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논일을 하면서도 몸이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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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는 보스코가 라틴어에서 번역하고 주석한, 키케로의 법률론나왔다. 학진의 지원으로 김창성 교수가 키케로의 국가론』을 맡고 보스코가 법률론』을 편찬했던 책이 한길사의 한길그레이트북스’ 172권으로 양장본 표지를 하고 간행되었다. 보스코의 라틴어 고전 주해서(古典註解書)로는 열여덟 번째 책이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종이책과 안 친한 세상에서도 용감하게 저 멋진 책을 만들어 준 한길사가 고맙다. 지인이 사 보낸 조국의 시간도 한길사가 펴낸 것으로 보아 좋고 믿음직한 출판사다.


http://www.donbosco.pe.kr/xe1/?mid=juhae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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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11시 용유담(龍游潭)에서 '지리산권 남강 수계 네트워크 출범식'을 했다. 그동안 지리산을 지키자는 캠페인이 나오면 모두 산으로 갔는데 산과 함께 산을 싸고 도는 강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주변 환경 및 생명운동 단체 17개가 모여 운봉에서 발원하여 산내와 마천, 문정과 산청을 지나 진주남강을 이루는 이 물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함께 지켜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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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중 보스코가 80으로 나이가 제일 많았고, 금반 초등학교 1학년(7) 어린이도 왔다. 물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증거다. 대한민국의 가장 아름다운 명승(名勝)으로 알려진 용유담을 댐 속에 수장시켜 버리려던 국토부(수자원공사)의 횡포에 맞서 우리가 20년 이상 투쟁하여 댐공사를 저지시켰지만 그것도 문정권의 과감한 결단 덕분이다. 수자원공사가 환경부 산하로 개편된 이후로는 원터마을 앞에서 강물을 오염시키던 음식점을 그 공사가 매입하여 철거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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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삽질시절, 우리 마을 앞에 공장을 세우겠다는 것을 우리 부부가 앞장서 반대하느라 마을 주민과 심한 갈등을 겪었지만 기어이 막아내어 진주남강 상수원을 망치지 못하게 말렸다.  어언 10년 전 일이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57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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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NGO 시민운동의 시대로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자연을 지켜야 한다. ‘지리산 종교연대도 참석했는데 가톨릭측에서는 봉재언니와 임신부님우리 부부미루와 이사야 부부가 참석했다. 용유담으로 상징되는 이 물줄기는 임천강,휴천강, 엄청강, 동호강으로 이름을 바꾸며 흐르다 남강으로 개명을 하면서 진주와 그 일대 소도시들 시민들의 식수원이 된다. 네트워크 출범문을 발표하고(최세현 대표), 보스코가 축하인사를 하고, 산청 단성의 성공회 성요한 신부가 축하공연을 하고, 용유담 바위마다 새겨진 이조시대의 각자(刻字)들을 방문하면서 해설을 들었다.  


오늘은 성체성혈대축일’. 이달 첫 주여서 임신부님이 문정공소에 미사를 집전하러 누님이랑 함께 오셨다미루는 총무로 이사야는 기사로 함께 왔다신부님 일행이 우리 집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미루네 신선초가 커가는 남호리 '관광'을 갔다귀요미는 그 밭에 '미루농원'이라는 간판을 달아 달라는데 그미의 기여도를 보고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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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씨 좋은 체리 나무 주인 토마스가 우리 손님들더러 체리도 따가라고 허락한 터라 산비탈로 올라가 실컷들 땄다. 나는 언니가 따도록 나뭇가지를 굽혀 잡아주었고, 신부님은 농부의 아들이자 나자렛 목수의 제자답게 아예 체리나무에 높이 올라가서 따고(“자캐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하시면 어떡하실 참이냐는 물음에 주님, 쫌 천천히 오이소. 나 지금 한참 체리 따는 중이라요.”하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이사야는 개구장이 나무 타듯 가지를 오르내리며 땄다. 미루는 카메라우먼으로 폼을 잡고 보스코는 체리농장 총감독이라며 뒷짐지고 왔다갔다만 했다.


남호리 산비탈에 며칠 전 돌아가신 윗마을 강영감 산소에 가족이 성묘를 하고 있어 우리 일행이 인사를 나누었다. 강영감의 아내는 세 해 넘게 병수발 해온 남편이 편히 누워서 올려다볼 지리산 상봉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혼잣말로 한숨 짓는다. "사람이란 숨 넘어가면서도 죽는 줄을 모르더라구요."  우리는 임신부님의 선창으로 고인을 위한 짧은 연도를 올렸다죽어가는 이를 위해, 죽은 이를 위해서 산 사람들이 해드릴 일이 참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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