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1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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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일어나 동쪽 하늘을 바라보니 검은 생선비늘이 하늘을 온통 뒤덮어 흉흉하고 섬뜩한 기운을 준다.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이 자연스럽지 못한 공포스러운 위협을 보이는 일이 참 드문데 오늘 새벽 하늘은 등줄기를 오싹케 한다


날은 가물고 기온은 낮아서 꽃도 피지 않고 벌들도 외출을 금지당하는지 자태를 볼 수 없고 못자리의 볍씨도 자라오르질 못한다. 과일밭의 사정은 더 형편없다. 보스코가 잔 열매를 솎아낸 배밭은 이파리가 모조리 적성병으로 허덕이고 작년에 풍성했던 자두나무는 열매가 너무 성기다. 그래도 새들은 여기저기 둥지에 먹이를 물어나르느라 유난히 바쁘다. 날씨가 차서 벌레가 적어 어미새들이 자기 배를 채우기에도 급급할 터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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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신부가 로마에서 귀국한 첫해를 제주도에 청소년 회복지원 시설 '숨비소리'를 개설하는 일로 보냈다. 아들이 그곳 초창기 멤버였고 내 주변 인사들에게 그곳을 돕도록 부탁까지 하던 곳이어서 그 기관에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중이다. 오윤택 신부님이 무던히 고생하고 계시고 부모도 사회도 외면한 상처투성이의 저 애들을 어떻게 하나 늘 걱정되는 곳이다이번호 살레시오 가족지에 실린 그곳 얘기 한 토막


"열아홉 서준이는 한글을 몰랐다. 단순한 단어조차 뜻을 모르고 대화도 불가능해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욕설이요 거친 행동으로 자신을 내보였다. 소통이 안되니 분노만 쌓여갔다. 악동이 된 서준이는 교육자들의 모임에서 문제아 사례 발표에서 모델이 될 정도였다. 그런 모임에 참석한 대부분 교육자는 소년원이 답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모임에 참석했던 선생님 한 분이 놀랍게도 숨비소리에서 서준이를 실제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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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사는 서준이에게 우리말의 기초부터 시작하여 문장 맞춤법까지 우리말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가르쳤다. 그러자 서준이에게 신세계가 열렸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게 되었으며 '하느님''성모님'이라는 말에도 반응을 보였. 자신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 오신부님의 눈에서 슬픔을 볼 줄 알게 되고, 그 슬픔에 가슴 아파 새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성당 교우들 앞에서 밴드 공연을 하던 날, 서준이는 문득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며 내가 뭐라고 이토록 큰 행복을 주시는지!’하는 감격과 사람이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알았다." 서준이 얘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제 그는 숨비소리를 떠나 '사도요한 '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준비하며 새로운 삶, 새 희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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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랑, 끝없이 인내로운 사랑만 사람을 변화시킨다. '단순히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소년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사랑하시라!'는 돈보스코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도자들이 있고 우리 아들이 그 대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오늘 아침일찍 남해 형부가 평화방송 새벽 미사를 성하윤 신부가 집전하고 있으니 들어가 보시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너무 오랫동안 TV를 안 보던 터라 CPBC 채널을 찾다가 미사가 끝나고 말았는데, 날렵한 미루가 유튜브에서 찾아 편집까지 해서 보내주었다. 내 친구들이 여럿 우리 아들을 보았다고 연락을 해왔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말이 없어 엄마한테 무심한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고 저런 의연함이 든든하기도 하고... 엄마 마음이란 참 알쏭달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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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의 쪽파가 한해 살이를 마치고 씨앗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드물댁이 와서 쪽파를 캐고 나는 감자밭 골골에 무성한 갓을 뽑아서 지인에게 택배로 부쳤다. 캐낸 파뿌리('파씨'라 부른다)는 끈으로 엮어 정자 기둥에 보스코가 못을 박아 걸어주었다. 저기서 여름내 말라 늦가을에 심으면 겨울을 나고 파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텃밭 건너에 인기척이 있어 살펴보니 유영감님이 논두럭에 괭이질을 하고 있다. “아저씨! 작년에는 그렇게 두럭을 깎아 둑이 터져 논농사도 못 지었는데, 또 그러세요? 아드님은 돈 들여 축대를 고쳐 놓았는데 또 그러면 어쩌십니까?” “아니, 내가 농사를 몇 년을 지었는데 그것도 모를까 봐?” 영감님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만류할 길이 없어 아들에게 전화로 일러바치니까, “아파서(치매여서) 그러시니 어쩌겠어요? 얼마나 사실지 모르니까 그냥 두세요.”란다. 그래도 서울 여자의 이바구에 주춤하던 영감님은 괭이를 논두럭에 던져놓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나 때문에 서운하셨나? 그냥 놓아둘 걸 그랬나? 어차피 농사짓기는 글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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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화요일. 보스코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참나무지’(한길의 군내버스 정차장)에서 군청에서 보내준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접종을 하는데, 보스코는 나랑 차로 갔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 남자다. 특히 늙은 남자. 집에 돌아와 타이레놀을 먹고 그는 세 시간을 내리 자는데 몸살을 앓는 기색이다


오빠는 백신 주사를 맞을까 말까 고민중이라 하고, 호천이는 엄마를 만나 뵙는데 지장이 없도록 주변에서 제일 먼저 접종 예약을 했단다. 모든 관심과 걱정이 엄마로 시작하여 엄마로 끝나는 진짜 효자가 우리 호천이다. 나는 5월 31일로 읍내 병원 한 곳에 예약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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