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9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밤에 넷플릭스에서 리지라는 영화를 봤다. 스릴러나 끔찍한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여성영화라면 억압사회에서 한 여성이 자기 삶을 어떻게 선택 결단하여 당당히 살아가는가를 지켜보려고 가능하면 끝까지 관람한다. 영화로 성평등의 세계를 암시하려는 제작자나 감독, 배우들의 헌신도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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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미국에서 리지 보든이라는 여자가 살인혐의를 받은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연극과 뮤지컬도 많이 나왔단다)에 나오는 아버지의 종말이 끝까지 궁금했다. 돈 많다는 남자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악덕들. 수전노이자 방탕아, 이웃과 가족에게 인정머리 없고, 위선적이고 교활한 부자들... 몇 해 전 우리 언론을 뜨겁게 달군, 어느 항공회사 물주네 집안 풍경은 온 국민이 목격한 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악덕의 대가를, 지옥까지 갈 것도 없이 자기가 낳아 자기 가치관으로 키운 딸에게서 옴팡지게 받는다. 도끼로 계모와 친부를 죽이는데, 마치 고기 다지듯 도끼질 하는 장면을 보고서는, 아무리 영화라도 양키들이나 저렇게 찍지 우리 정서로는 너무 끔찍해 보였다. 그렇게 부모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식에게 무슨 가치를 심어주어야 하는지 암시하면서, ‘저렇게 살다가는 저렇게 당하지, 자식들 한테서도!’라는 교훈을 담아 어버이날 보여줄 만한 부모 교육용 영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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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일 어버이날. 아침 일찍 작은아들이 맨입이지만 축하드려요. 아침 미사 드리며 부모님을 기억했습니다는 문안인사. 수도자가 어버이에게 맨입인사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부모 위해서 기도하고(우리의 경우 제발 한날 한시에 돌아가시도록...’) 거기서 잘 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답했다두 아들과의 영상통화는 언제나 즐겁다. 그러다 엄마, 전 우리 부모님이 자랑스러워요.”라는 한 마디는 어버이날에 자녀에게 들을만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어버이날이란 부끄럽지 않을 부모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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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체중이 늘고 복부비만증이 심해지면서 간혹 낡은 옷을 버리고 하는 수 없이 새옷을 사게 된다. 팔은 짧고 키는 작고 배는 나오고... 아내 혼자 애가 타고 정작 보스코는 태평천하여서 내 옷 좀 사지 말라! 있는 옷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입는다!” 성화다. 하지만 그건 본인 편에서 먼저 체중 조절을 하고 나서 할 소린데...


어제 저녁 남방 두 개의 손목을 자르고 팔을 줄이고, 바지는 단을 한참 오려야 했다그렇게 재봉틀을 돌리다 바늘이 부러졌다. ‘오늘은 바느질을 접고 읍내 나가는 날 바늘을 사다가 마저 하지하고서 바늘쌈지를 뒤지니 바늘 한 쌈(10)이 고스란히 나온다. 먼 옛날 우이동 아래아래 집 아줌마가 아파트로 이사하며 거기 가서는 더 이상 재봉질을 않겠다!’ 선언하면서 내다 버린 싱거 바늘을 주워서 간직했는데 20여년 지난 오늘 쓰게 되다니....


미루가 장만한 어버이날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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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모임을 위한 음식 장만으로 어제 오후를 보냈다. 감자그라탕, 카프레세, 호두파이... 아래층 진이엄마가 보다못해 제발 그만 좀 바시락거리시고 제발 좀 쉬세요하지만, 사람이 자기 인생을 꾸려가는 삶의 자세가 본인의 팔자가 되지 팔자가 사나와서 어찌되는 건 아닌 성싶다


남해 파스칼 형부 영명축일에다 남해 언니 생일에다 또 어제가 어버이날이어서 미루네집에서 은빛나래단을 위해 미사가 집전되고 정성껏들 차려온 음식으로 점심을 나누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뱀을 구경하는 일이 참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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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네 새로 심은 잔디밭에 스프링클러가 돌자 뱀 한 마리가 찾아와 물을 맞으며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신부님과 이사야가 달려 나가 뱀을 작대기로 말아 언덕 밑으로 던져준다. ”넌 그래도 이 동네 살아 다행이다. 도정 사는 가타리나 눈에 띄었으면 기절하는 비명이 나오고 귀하신 마나님을 놀라게 한 괫심죄로 그미의 남편에게 맞아 죽었을 텐데(저 먼날 낙원에서 저지른 조상 여자의 죄까지 뒤집어 쓰고).”


식사 후 돌아오다 지난 번에 휴천재를 방문했다 두고 가신 모자를 돌려드리러 허신부님 댁에 들렀다. 은퇴사제로서 지금도 심리상담을 하는 분이어서 허신부님과 보스코는 가톨릭교회의 이혼한 사람들 사목 문제를 두고 오래 얘기를 나누었다. 하루 피정이나 상담차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펜션도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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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부님이 오늘 선물하신 십자가를 휴천재 식당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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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농담이 많은 분이어서 지난 번에도 ‘식사 중 과연 누구에게 먼저 술잔을 드리느냐?’는 문제가 나오자 죽을 순서대로 먼저 드리시오!”라는 농담으로 해결하셨다. 사람이 모이면 상석을 찾고 자기 차례가 늦으면 기분 나빠하는데 그래, 먼저들 드세요, 전 천천히 먹고 천천히 죽을 테니까!’라는 위트가 퍽 실용적이었다


오늘 우리 작은손주가 제네바 동네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했다는 디지털 사진이 왔다. 첫영성체 미사에 오신 손님들에게 시우가 일동을 대표해서 인사를 드리고 감사기도를 했다는 자랑도. 종교심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소중한 정신 유산이다. 어려서 부모 손에 이끌려 다니던 성당이나 교회에 대한 추억으로 신앙생활이 성장하고 이어지는 법이지 교우 자녀인데 세례도 안 주고 '다 커서 자기가 알아서 가겠지.'라는 말은 좀처럼 미덥지 못하다. 멀리 스위스에 살면서도 아이들을 진리의 길로 동반해가는 며느리가 늘 고맙다. 선교를 하는 것은 남자들이지만 신앙을 간직해두는 건 여자라는, 엄마라는 격언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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