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8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아침. 날씨가 너무 차다. 지리산 하봉이 다시 하얗게 눈으로 덮혔다. 목요일에 신선초를 베러 온 수녀님들을 한 줄로 세워 휴천재 이층에서 겨울을 난 화분들 50여개를 아래층 데크밑으로 내려다 놓았다. 데크밑 화단엔 일년내 해가 안 들어 주로 난초를 놓고 아침해라도 받을 앞자리에 제라늄과 꽃이 피는 화분을 놓아주니 그 자리에는 저절로 화단이 만들어진다. 크고 작은 화분들이 겨우 겨울을 나고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아침 기온이 0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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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냉해는 무엇보다도 과일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상실감을 줄까 걱정된다토요일 아침에 바람이 없는 고요를 틈타 보스코가 배밭에 두번째로 약을 쳤다. 벌써 이파리가 말리고 있는데다 이 봄에는 꽃송이가 유난히 적어 금년에도 배농사에 재미를 못 보겠다. 작년엔 물까치떼가 배농사 재미를 완전 독차지하고 말았는데... 자두라도 작년처럼 풍성히 열리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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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님과 문섐이 금요일 저녁에 휴천재를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식당채 뒤꼍에 새로한 데크에 오일스텐을 칠하려고 마음먹었던 참이라 급히 함양엘 나가 제비표 폐인트상에서 데크용 오일스텐을 샀다. 너무 흐린 색은 때를 타고, 너무 진하면 색깔의 조합이 어려워 무난하게 오크 색으로 구했다. 세 번은 칠해야 한다는데, 초벌을 칠하고 30분은 있어야 마르기에 ‘1시간 30분이면 손님들 오기 전 데크칠을 마칠 수 있겠다계산하며 눈썹을 휘날리며일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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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상임감사 2년을 마치고 퇴임한 문섐은 임실읍에 17평 짜리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하고 또 그만한 돈을 들여 리모텔링을 했단다. 남편 김원장님과 소꿉놀이로 여생을 보내기엔 딱 알맞은 크기겠다. 두 분이 휴천재에 머문 시간은 (5시에 와서 9시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짧은 시간이지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나이 들어서도 부부 각자가 생활과 활동을 침해받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엄청 많이 연구한 듯한  주제는 퍽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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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나타 뒷창에도, 내 핸드백과 핸드폰에도 세월호 나랑나비가 아직도 펄럭이고 있다. 촛불혁명 정권에서도 무엇하나 분명하게 밝혀지거나 해결된 것 없이 기득권과 사법부의 엄정한 은폐 속에 세월만 가고 그 젊은 혼들은 잊혀져 가고 있다. 가톨릭에서만 여러 교구(춘천, 인천, 수원, 대전, 부산, 마산, 광주)가 정평위 주최로 추모미사를 드린 것 같다. 지금도 '세월호'만 나오면 거의 발작적으로 반발하며 유가족에게 증오를 터뜨리는 사람들, 더구나 가톨릭 인사들을 보면 저 사건이 그 작자들의 양심에도 무거운 돌덩어리로 얹혀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4.3도 4.16도, 4.19도 망각하려고 발버둥치는 가해자 집단이 언론과 사법, 재계와 정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역사적 현실을 직시할수록 분노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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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얼마 전 휴천재 3층 물탱크 밖의 한 평 짜리 테라스에 방수 시멘트를 했고 오늘은 그 위에 방수페인트를 칠했다. 페인트는 세 번을 칠해야 한단다. 처음엔 투명색으로 시멘트에 물이 스며들지 않게 틈새를 막고, 두번째는 그 위에 페인트를 입혀 고정을 하고, 마지막으로 고무 같은 질감이 느껴지도록 도색을 한단다. 적은 양으로는 가게에서 팔지를 않아 통째로 사와서 좀 여유 있게 칠했더니만 잘 굳지를 않는다. 로마 역사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지만 주부 페인트공의 탄생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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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리에 심은 묘목들 옆에 잡초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늘 매달려 풀을 매줄 수가 없어 대책을 궁리해야 했다. 오늘 오후엔 부직포를 한 아름 길이로 60여장 자르고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나무에 꿰입히고서 핀으로 부직포 네 귀퉁이와 그 중간 그러니까 여덟 군데 핀을 박아서 바람과 잡초에서 나무를 보호하기로 했다


풀 매기 싫어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인데 초목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제초제를 안 치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일러준다. 휴천재 텃밭 체리 나무에 시험적으로 둘러쳐 보니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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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셋째 일요일이어서 저녁에 문정공소에 본당신부님이 오시는 날. 신부님은 강론에서 페루 찬차마요시의 시장이 된 한국인 정홍원(마리오 정)씨의 일화를 언급하셨다. 스승이요 주님이셨던 예수님이 그렇게 비참하게, 단 하룻만에 처형당해 돌아가시자 제자들이 너무도 절망했던 상실감

[오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68]


내가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자랐고 신학을 공부하고 또 살아오면서 늘 품어왔던 의문이 있었다. 곧 무려 3년간 밤낮으로 동고동락하던 주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셨을 적에 제자들이 그분을 못 알아본 정신상태, 무덤가에서 엉엉 울던 막달레나가 그토록 사랑하던 스승님 음성을 못 알아듣던 심리상태가 무엇 때문이었느냐는 물음이었는데, 그 '충격적 상실감'에 이유가 있었다는 설명으로 오랜 의문이 풀렸다.


페루 오지마을의 정시장이 딸과 아들을 윌슨병으로 잃고서 오로지 그곳 빈민들에게 헌신하던 이웃사랑으로 소생한 이야기가 감격적인 것은, 헌신적인 사랑만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도 영원히 산다는 실존적 믿음을 갖게 하고,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종교적 진리를 믿게 만든다는 깨우침을 주기 때문이다. 보스코가 자기 퇴임논문집(2007년) 제목으로 쓴 말처럼 사랑만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언이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마음에 와 닿는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58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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