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5일 목요일, 맑음


어제 서울을 떠나기 전 도봉구청에 잠깐 들렀다. 우리 동네에 공공주택재개발을 하는데 내용을 아는 사람이 가까이에는 아무도 없어 구청에 질의서를 내고 왔다. 이런 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공무원들이 우리보다는 그래도 좀 더 알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러나 오늘 구청 담당자가 진정인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는 내용으로는 우린 전혀 모르는 일로 국토교통부의 심부름이나 한다는 취지다. ‘간단하게 답변해 보내겠다기에 진정인도 4장의 진정을 올렸으니, 간단하게 말고 하나하나에 정성껏, 진정인이 쓴만큼 대답을 하시오.’라고 대답했다. 이명박 정권부터의 '뉴타운' 정책이 가난한 서민들 땅 뺏고 집 뺏고서 내쫓았듯이 자칫 국토부와 LH가 나서서 땅 빳고 집 뺏는다는 원성으로 변하지 않도록 뜻있는 시민운동가들이 이 정책을 감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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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와서도 내가 서 있는 땅이 흔들리는 듯한 기분이다. 언제까지 서민들은 멀미나듯 울링거리는 이 모양으로 살아가야 할까? 갑갑하다. 말람씨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이런 일이 있으면 생기가 나서 밤낮없이 전화속에 새로 알게 된 소식을 전하느라 식사도 거르던 사람이다. 하늘나라에서도 그미는 하느님을 상대로 이런 시민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미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잘 알 텐데.... 이젠 하는 수없이 그미 몫까지 내가 해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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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갈 때와 달리, 한 주간 사이였는데, 서울을 벗어나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의 위용도 봄빛이었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려 내려오는 산자락은 연두색의 봄이 완연하다. 나무마다 색갈과 모양이 다른 모습으로 조화를 이뤄 창조주 앞에 자기가 가진 가장 멋진 모습을 공연 중이다.


점심은 오창휴게소에서 먹었다. 싸온 리소토를 휴게소 전자렌지에 데우고, 우동 하나를 시켜서 국물 삼아 먹었다. 이 말을 들은 큰딸 엘리의 말이 그래서 부자가 되셨네요.’ 라며 놀리는데 고속도로를 다니며 고민 하나가 식사할 장소와 메뉴다. 어디서 뭐를 먹어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니 차라리 집에서 챙겨가서 적당히 먹는 게 마음 편하다. 더구나 이 코로나 정국에는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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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서울을 떠났는데 함양에 도착하니 5시가 다 됐다. 휴천재가 있는 문정리를 가려면 남호리를 지나야 하는데 한 주간 동안 새로 심은 풀과 나무가 제대로 싹을 틔우고 살아남았나 궁금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보스코는 내일 와서 보지 않고...’라며 내 승질이 이상타나? 농부가 자기 키우는 식물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은 태평이 더 이상한 게 아닐까


호두나무는 한 그루를 제외한 39 그루가 싹을 다 틔우고 있었다(그 하나는 아직 겨울잠에서 늦잠자는 게으름뱅이 같다). 체리는 다 눈을 틔웠고 밤나무 네 그루도 똘망똘망하다. 자기가 어디가서 뭘 하는 중인지 안 잊고 있었다. ‘저게 커서 아가 주먹만한 밤이 열리기까지 기다리는일은 커다란 인내가 필요하다. 엄나무만 열 그루에서 셋만 살아남아 뭐에 그리도 마음 상했나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그래, 살아남은 너희라도 이 산속 시원한 공기에 터잡고 쑥쑥 자라다오!’ 하였다신선초도 자리를 잡아 100m 경주 출발선에 엎드려 총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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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만큼 가느다란 나무를 심고서  언제 커서 열매를 따먹나 하는 심경은 아기를 낳아놓고 남의 집 아이들 뛰노는 걸 보며 우리 애는 언제 크지?’ 하는 맘과 다를 바 없다. 세월은 흐르고 아이들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훌쩍 자라듯이 작은손주 시우가 그려 보낸 부활절 카드가 휴천재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알록달록 토끼가 등에 짊어진 부활달걀 그림이다산토끼가 겨울이 오면 눈색갈로, 봄이면 갈색으로 변신하여 자기를 보존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부활(변신?)을 연상시킨다는 암브로시오 성인의 설교 이래로, 유럽에서는 부활성야에 토끼 모양 설탕과자를 구워 애들에게 줬단다. 지금은 초콜릿 토끼로 바뀌고 부활달걀도 큼직한 초콜릿 달걀(속이 비어 있는 대신 흥미로운 장난감이 들어 있기도 하다)로 바뀌었지만... 빈 십자가 곁의 노랑 빛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짠!"하고 나타나셨다는 상징이란다.  지금은 빛의 축제임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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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없는 사이에 토마스가 식당채 부엌 뒤꼍 데크를 멋지게 손질해 놓았다. 블루베리 농사로 한창 바쁜 계절인데 시간을 쪼개기 어려웠을 텐데... 새 데크가 오래 가려면 그위도 지붕으로 덮어야겠다니까 망가지면 또 해줄 테니 돈 들이지 말고 그냥 쓰세요.’란다.


국수녀님이 엊그제 휴천재 텃밭 신선초의 안부를 물어왔다. 제철을 맞아 장아찌 담기에 딱 좋은 크기라고 했더니 오늘 수녀님들이 와서 텃밭의 신선초를 베어갔다. 참나물과 우엉도 징발하고 나니 텃밭이 완전히 삭발한 중학생 까까머리가 됐다. 오후 내내 베고 다듬고 한 이파리로 장아찌를 담아 팔아 근근이 수녀원의 가난한 삶을 끌어가는 중이다. 그래도 산골로 오가는 길의 꽃구경으로 행복하기만 했다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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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서산을 넘고 지치고 배고픈 분들이 내가 서둘러 구워낸 피자를 놓고 원선오 신부님의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보스코 작사)를 식전기도로 부르면서 행복해했다. 한참이나 담소를 나누다 별이 총총한 밤길을 떠나 담양으로 떠났다.


http://rosario.kr/music/sh/m/isi/%EC%97%A0%EB%A7%88%EC%9A%B0%EC%8A%A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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