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1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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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겨 키워온 서울집 코스모스장미가 잎을 안 틔워 가까이 살펴보니 진딧물과 깍지병이 줄기 전부를 하얗게 덮고 있다. 세상에! 얼마나 지겨웠을까? 비명도 못 지르고 서서히 죽어가는 식물을 보자면 소리라도 내는 동물보다 더 측은하다. 부지런히 꽃집에 가서 살균제와 살충제를 사다가 장미 줄기에 뿌려주었다. 어제 아침에도 보스코가 약을 한번 더 뿌렸다. 저렇게 약을 치면 과연 살아날지도 자신 없지만 그간 함께 보낸 세월에 보이지 않는 정이 들어 ‘제발 아프지 말고 부디 살아나다오!’ 꽃나무에게 빈다.

최근 두 사람의 부고를 받았다. 어떤 사람의 영이별이 슬프지 않으랴만 두 사람의 죽음은 각기 다른 슬픔으로 다가온다. 한 사람은  95세 나이로 돌아가신 이탈리아 친구 카를라 폰타나(Carla Fontana) 아줌마.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프란치스코가 있었지만 고등학교 엄격한 라틴어 교사로서, 또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면서 실천적 일환으로 가난한 나라와 이웃을 돕는다는 신념에 따라 70년대에 한국에서 두 아이를 입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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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산드로, 한살 아래 딸은 안나. 둘 다 대학교육까지 받고 좋은 직장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베니스의 메스트레에 살던 가족인데 80년대 우리 가족의 로마유학시절 당신의 두 아이에게 한국 음식과 한국인 정서와 생활모습을 보여주려 우리 가족을 방학마다 당신네 베니스 집으로, 여름이면 알프스 휴가지로 초대하여 함께 지내게 하셨다


 해 전 연하 남편 막시를 앞세우고 혼자 남으셔서도 꿋꿋이 사셨는데 돌아가시던 마지막 날까지도 품위를 지키시다 잠들 듯 떠나셨다는 안나의 부고가 왔다우리나라 아이를 둘씩이나 키워주셔서 고맙고, 80년대에 우리 가족까지 거둬주신데 감사드린다. 그 반듯한 심성으로 주님의 나라에서도 안나와 산드로, 큰아들 프란체스코의 기둥이 되어주실 것이다. 우리를 만날 적마다 우리를 통해서 약간의 돈을 (두 아이를 입양한) ‘홀트에 기부하곤 하셨다


2015년 베니스로 방문했던 폰타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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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신부가 자기 어렸을 적(1981)에 베니스 산마르코대성당옆 붉은 대리석 사자상에 무등을 태워주던 카를라 할머니를 위해서 위령미사를 드렸다. 우리는 며칠째 카를라 영혼의 안식을 위해 로사리오를 바치는 중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동네 안경점 주인의 젊은 아내다. 마지막까지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포기 못하고 눈물겨운 투병생활을 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그미의 병세를 전화로 묻던 날, 남편이 "바로 옆에 누워 있습니다. 괜찮습니다."고 대답했는데 그 뒤 사흘 만에 영원한 길을 떠났단다. 남편의 안경점에 간혹 나와 일손을 돕던 병약한 여인으로 기억난다. 그 전화 통화가 작년 12월초에 있었으니 벌써 넉달 전이건만 "시간이 흐르면 잊힐 것 같았는데 새록새록 생각나 몹시 괴롭습니다."는 남편의 하소연.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맞는 크나큰 정신적 외상을 누가 다독여주고 위로해 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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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 우리 '순둥이' '오드리'가 다녀갔다. 남편과 둘이서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10분 이내에 달려갈 곳에 늘 대기 중이어야 한다는 그미. 그래도 서울 온 나한테 얼굴이라도 보여주겠다고 달려왔다가 서둘러 돌아가는 그미가 너무 고맙고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우리 둘이 하도 짝짝꿍을 하는 바람에 다른 딸들이 엄마가 데꼬들어온 딸이라고 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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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은 내 칠순 선물이라며 우리 두 아들이 새 태블릿을 사주었다. 빵고가 토요일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우이동 집에 와서 태블릿 세팅을 해주었다(헌 것은 보스코에게 물려주었다.) 아들이 온 김에 두상이 서방님 부부도 초대해서 피자를 대접하였다. 며칠 후 내 생일이라고 빵고가 케이크까지 사와서 나를 감격케 했다. “역쒸 아들은 낳고 보는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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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거의 두 달 만에 주일미사로 우이성당을 갔다. 교우들의 응송이 없는 미사는 바다 속 같이 깊은 침묵이다. 마스크를 한 신부님의 강론은 잘 안 들려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오늘 복음 토마스야, 너는 보고야 믿느냐?”라는 꾸중이 너는 들려야 알아듣냐? 들리지 않아도 알아먹는 사람은 행복하다!’처럼 들린다.

[보스코의 주일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70]


아래층 집사(제5대) 강레아 사진작가의 초대전이 7일부터(26일까지)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다. 오늘 오전에 한목사랑 이엘리랑 관람을 갔다. 인사동 사거리에 있는  ""화랑 4, 5층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전시장에는 바위 틈의 소나무들이 위엄있게, 위태롭게, 또는 무심하게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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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가 푸앵트로 꼿꼿이 서듯 레아의 소나무들은 구불구불 움트러진 몸통으로 바위 위에 갖가지로 각도를 잡고 있다. 암벽 위에 뿌리를 박고 바위틈에서 비바람을 버티며 자라난 소나무는 이미 한편의 시요 마치 레아 그미를 보는 듯하다. 그미는 한 그루의 소나무가 되기까지를, “한 알의 씨앗이 단단한 바위 틈을 열고 연하디 연한 손길이 차디찬 가슴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둘은 하나가 된다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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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셋은 모처럼 만났기에 북촌을 돌아 선재미술관뜰에서 노닥거리다 정독도서관까지 갔다. 오늘도 우리 큰딸이엘리의 손녀사랑은 차고 넘쳐 뚝뚝 흘러 떨어진다. ‘누군가를 저렇게 미치도록 사랑한 기억을 가진 사람만이 엘리의 마음을 알리라. 4시가 넘어 헤어지면서도 아쉬워 종각역까지 엘리랑 걸었다. 친구란 워낙 인생길을 함께 가는 길 동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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