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7일 화요일, 맑음

 

눈이 일찍 떠지면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보스코는 네 시도 되기 전에 서재로 간다. 그러나 캄캄함 밤에 벌떡 일어나 오도카니 앉아있기가 내키지 않는다. 밤새 울고서도 짝을 못 찾았은 (아마도 못난이) 개구리들은 이 새벽까지도 목청을 돋구고 있다. 개구리는 목도 쉬지 않나?

 

왕산을 지나 훤해지는 새벽의 옷자락이 사라지면서 태양이 떠오른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어제 옮겨심은 곰취가 물을 흠뻑 먹고서 편하게 잎을 펴고서 쉬는 모습이다. 다른 꽃들은 척박한 자갈 위로 옮겨 심어줬다고 심술이 났는지 아직도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어 걱정이 된다. “며칠만 기다리렴. 그럼 그게 네 땅이 될 게다.”

 

정말 농부는 하늘을 우러르며 사는 사람이다(하과장의 강의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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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아침기도를 하자고 부른다. 이렇게 간절한 아침시간 함께 기도할 길동무가 있다는 게 또 얼마나 고마운가! 식사하러 가시기 전에 받으시라고 엄마한테 전화부터 한 통화 하고 서재로 갔다.

 

진이네는 한 이틀 손님 때문에 일을 못해선지 아침 일찍 산으로 갔다. 새로 만든 꽃밭에서 오전에 잡초를 뽑고 있으려니까 웃동네 강씨가 지나가면서 한참이나 쭈삣거린다. 엊그제 내려와서 보스코에게 행패를 부리고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고 또 다시 내려와 찾아다녔다는데.... 강가에 아들이 공장짓는 문제로 앙금이 남았겠지 싶어 보스코는 한번쯤은 넓은 마음으로 봐주기로 마음 먹은 듯하다.

 

우리가 환경운동에 나서고 30여년 넘었는데 행패와 욕설을 당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대기업은 차라리 쉽게 포기를 하는데 소기업은 아예 깡패를 사서 “네 배 칼 안들어가나?”라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우이동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빨갱이 새끼야!” 등의 낙서를 하고 갔고 대문과 우체통이 발길질과 몽둥이질로 우그러지기도 몇 차례인지 모른다. 심지어 성당까지 찾아와 미사 중에 옆자리에 앉아서 협박과 욕설을 하기도 했다. 집짓는 사람들이 성당다니는 신자들이면 우리가 어느 시각에 미사에 오는지도 알려주어 시키는 짓이다. 기도원 환자들을 몰고 와서 행패부리는 일도 없지 않았고.... 한밤중의 전화질과 욕설이야 다반사였다.

 

저런 일에 주눅이 들어 겁을 먹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지.... 사업 단위가 적어질수록 반발이 포악해지고 이번처럼 한 마을에서 눈뜨면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게 특히 힘들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욕설과 따돌림을 받는 일은 더욱 안타깝고...

 

함양농대 약초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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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2시부터 시창작교실과 약초교실이 같은 시각에 있었다. 하도 결석을 많이 해서 오늘은 꼭 참석해 달라는 하과장의 엄명이 있어 읍내 농업기술교육원으로 갔다. 우정옥씨가 작년가을에 담근 오미자 효소를 큰병으로 갖고와 기다리다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친구들에게 받는 선물은 그 고운 마음씨로 포장되어 늘 감격스럽다. 더구나 정옥씨의 미소와 맑은 웃음소리라니....

 

하과장은 그 특유한 달변으로 4시간을 지치지도 않고 내리 강연을 이끌어갔다. 농업이 왜 어려운가를 말하면서 “하느님이 동업자”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농부라면 하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선수가 된다. 날이 가물면 하늘만 쳐다보고 사니 그만큼 하늘나라와 가까이 산다는 얘기겠다.

 

이어서 지리산 둘레길에 대한 얘기와 더불어 농업의 부가가치가 평당 소득 1만원 안팎으로 나오는 양파나 2500원이 고작인 벼농사도 중요하지만, 경관농업을 해서 아름다운 농촌으로 만들어 도회지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게 만들어 부가가치를 키우자는 주장도 하였다.

 

"지리산 둘레길은 태초부터 있었던 게 아니고 인간이 걸으면 길이 되고 그 길이 세월이 가면 역사와 문화가 된다. 그러니 길은 스스로 개척하는 선구자가 늘 새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 산다는 게 자라고 배우고 감동하는 것이므로 우리 모두 그 길에 매진해야 한다."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하과장의 강의는 매우 선동적이었다.

 

최일남씨 댁은 기품있는 소나무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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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고 몇이서 안의에 사는 최일남씨 댁에 가서 차를 마셨고 나는 황금송 한 그루를 얻어 왔다. 그이는 늘 강의실 앞자리에 내 자리를 맡아주는, 신사도가 넘치는 분인데 그이 집은 정말 갖가지 소나무로 얼마나 우아하고 운치있게 가꾸어져 있는지 모른다.

 

안의 가는 길에 칠선 파비아노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돌아와 보스코랑 창원마을 가까운 오리고기집으로 가서 푸짐한 저녁을 대접받았다. 돌아오면서 칠선의 파비아노 선생님댁 “청산별곡”에 들러 과일을 대접받고 새우젓도 한 통 주시는 걸 받아왔다. 그 집 함박에는 남자로서 살림과 요리솜씨가 탁월한 집주인이 새로 담가놓은 배추김치가 버무러져 있었다.

 

창원에서 파비아노 선생님과 오리고기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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