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4일 토요일, 맑음

 

진이네 감동 옆에 잡초가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까지 넘보고 있고 환삼덩쿨과 사위질빵, 새콩은 서로 어울려 넝쿨을 층계참까지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우리 침실에서 내려다 보면 영 보기가 안 좋아 며칠 전부터 낫질이든 대가위질이든 손을 대야겠다고 맘 먹었다가 오늘 드디어 숙원사업을 하였다.

 

그러다 그 덤불 속에 벌개미취가 자라고 있어서 낫질을 하면 모두 절단날까 봐 풀을 손으로 뽑기로 했다. 매해 예초기만 당해서 잎만 자라온 잡초는 뿌리 부분이 약해서 조금만 힘을 써도 잘 뽑혀 나온다. 그리고 뽑힌 자리를 보면 언제나 포실포실하고 비옥한 흙이 되어 있고 지렁이가 서너 마리 꿈틀 거리고 있다.

 

그러니까 그 풀이 공짜로 그 땅을 빌려 쓴 게 아닌 듯하다. 메마른 땅을 비옥한 토양으로 가꾸고 벌레와 지렁이들을 키워온 것이다. 그러고서는 벌레들에게 잎을 뜯어먹히고 초식동물에게 뜯어먹히는 것으로 생명을 내어주기도 한다.

 

내 한 평생이 저 풀 한 포기만큼의 보람이라도 주변과 후세에 남기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더구나 꽃을 피워 씨를 남길 적에도 벌나비나 벌레들에게 반드시 꿀물과 꽃가루를 선사하고, 열매를 맺어서도 새들에게 반드시 먹을 과육을 주고서 그 씨앗을 멀리 퍼뜨리지 않는가? 식물이 주위 동식물에게 공짜로 일을 시키는 법이 도무지 없다. 나와 보스코가 살아온 인생이 주변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은덕을 입고 살아왔으니만큼,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다가올 만한 비옥한 흙이 되고 우리 밑으로 그만한 생명들이 깃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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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창을 열고 내려다 보면서 이제 그만 좀 하란다. 타샤 투더 할머니처럼 30만평의 땅을 꽃 천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잡초 쯤 뽑는다고 탓하는 소리에 “나 좀 봐야 혀!” 하는 격한 심정으로 얼른 올라왔다. 그러자 그는 나를 보자 얼른 표정을 바꿔 아침기도를 하잔다. “마음 약한 내가 져 줘야지 뭐.”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궁금한 건 타샤 할머니가 그 넓은 세계를 겨울에는 수선과, 봄에는 튜립과 곱실 거리는 작약과 장미, 사철 꽃이 떨어지지 않는 세계를 꾸몄고, 틈틈이 직물도 직접 짜서 옷을 해 입었고, 도자기와 과자 굽기에 열중했고, 게다가 100여권의 동화책까지 쓰다니 그게 한 여인으로서 어떻게 가능했을까 였다.

 

그건 그니의 재능이고 나는 오늘 독서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텃밭에서 솎은 상추나 나눠주러 가야겠다. 하도 무성하게 자라 올라와서 지나가는 동네아줌마더러 “상추 좀 뜯어다 잡수세요.” 했더니만 “그럼 우리 상춘 어쩌고?”라고 되묻는다. 밥상 만한 땅에 뿌린 상추마저 다 먹지 못하니 장날 함양장에 이고나간다고 해도 오가는 차비나 기름값도 안 나올 테고 그래서 읍에 텃밭 없이 사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상자 챙겼다.

 

사나흘 전만 해도 아주 실하던 상추가, 엄마 말대로 비가 내린 후에는 물을 털어주어야 되살아나는데, 그걸 안 했더니 소낙비에 누운 상추는 그대로 누워있어 속으로부터 물러지고 있었다. 얼른 손질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먹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과년한 딸을 곁에 둔 엄마의 심정이겠다.

 

여름이 오면 정자를 비워 정리하고 시원한 오후를 맞고 싶은데 농사일하는 집이라 여기저기 농자재가 만원이다. 더구나 이런 시골까지 “분리수거”를 하는 통에 종이나 재활용품을 모아놓은 것만도 서너 상자 된다. 진이네는 블루베리 방조망(防鳥網)을 치는데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도 일끝이 안 보인다고 한탄이다.

 

읍에 나가는 길에 종이 재활용품이라도 싣고서 나갔더니 낯선 할머니가 “우리 동네”에 버리지 말란다. (“여긴 우리 동넨데.”) 휴천면사무소에 들렀더니 거기서도 한 마디를 한다. 아예 함양읍까지 싣고 가서 처리장에 버리고 나니 속이 개운하다. 우리가 하나하나 쓰면서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남은 쓰레기에게 행방을 찾아줘야 하니 쓰는 만큼이나 버리는 것도 많고 쓰는 일 못지않게 버리는 일이 중요함을 실감하겠다.

 

서울집 뒷산에서 쓰레기 줍기를 해 본 보스코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쓰레기다.”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저절로 분해되고 해결되는데 비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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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반까지 함양도서관에서 만난 친구들은 신기마을에 사는 자성씨네 집에서 “아이들은 놀기 위하여 세상에 온다”(편해문 지음)라는 책의 독후감과 아이들 키우며 엄마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닦달했는지 자성하는 고백적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인도에서 그 가난한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놀이를 찾아 행복하게 사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애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또한 어른들은?  행복한 어른들이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데...하기야 자성씨 남편이 직접 중국집에 가서 주문 배달해 온 음식과 맥주를 나누면서 행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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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마라도까지도 자장면이 배달된다는데 시내에서 10분도 안 되는 집인데도 이곳 함양에서는  중국집이 "배달 사절"이란다. 상인들의 타고난 불친절에 익숙해져선지 잘 견뎌내고 불평불만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 “역시 함양이구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