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8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아침 일찍 휴천재를 떠났다. 덕유산은 긴 허리에 흰눈을 얹고서 두툼한 구름을 이불로 덮고서 아침 햇살에도 편안한 자세로 늦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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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가 이탈리아 조기유학 6년만에 서울에 돌아와서 아직 빠다가 덜 빠져혀꼬부라진 소리를 하던 시절이었다. 학교생활이 경직되다 못해 엄마, 한국에선 깡패만 선생이 되나요?’라고 물어올 만큼 학교에서 매타작을 당하던 무렵이었다. 노총각인 담임선생님이 빵고와 반아이들 몇을 데리고 덕유산 산행을 다녀왔다. 그 뒤로 빵고는 부쩍 담임을 따랐고 학교 가는 일에도 재미를 부쳤다. (그러다 이혼한 동료 여교사와의 사생활이 불거져 여교사는 권고사직을 당하고 그 담임은 다른 학교로 전임을 갔다덕유산을 머얼리 지날 때면 늘 작은아들의 힘겨운 초딩시절과 더불어 그 노총각 선생님의 '가난한 사랑' 얘기가 내 머리에 한 줄로 엮어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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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코로나로 몸살하는 서울로 올라가는 건 별로 안 달가운 일이지만 한 켠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이기에 한강을 건너면 맘이 설레기도 한다. 강동대교를 건너자 아파트에 포위당한 불암산이 보이고 그 뒤로 수락산이 버티고 있다. 터널을 지나 의정부 인터체인지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도봉산의 다락능선이 우뚝 서서 우리를 맞고 그 뒤로 북한산 인수봉이 넘겨다 보인다. 이렇게 기다리는 건 사람들만 아니라 아름답고 수려한 산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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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30분에는 수유성당 옆 박순용정형외과에 갔다. 동네 친구들이 이 일대에서 제일 친절하고 실력 있는 분이라며 추천한 병원이었는데 과연 소문대로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였다. 이젠 병원이라는 서비스업도 친절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 내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일 년 전부터 방아쇠증후군으로 나를 성가시게 했는데, 왼손 손바닥을 지나 중지 바로 밑에 염증이 생겨 힘줄이 통과하는 터널이 좁아지는 증상으로 1~2센티 정도로 절개를 하고서 힘줄이 걸리는 부위의 터널을 절개하여 공간을 넓혀주는 수술이었다. 부분마취하고 준비하는 시간부터 40분가량 소요되었다. 섬세한 성격이라면 발작이 일어날까 전신마취도 하겠지만 나처럼 야생마 같은 여자는 이 정도 수술은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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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닌데, 내 수술이 염려되어 효소절식강의 후 산청으로 내려가던 '셋째딸' 미루가 안부전화를 했고, 빵고도 엄마의 문안을 했다. 어제는 큰딸이엘리가 다녀갔고 오늘은 막내딸엄엘리가 자기 딸 지연이랑 다니러 왔다. 지연이는 전형적인 동양미인으로 살그머니 웃는 눈이 퍽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두들 쌍까풀 수술로 눈을 키우지만 서양에서는 저런 눈을 매력 덩어리로 생각하니, 국제적인 위상을 생각하여 한국 여성들은 쌍까풀 수술을 자제할 만하다.


지연이는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그때 꿈이 농부여서 풀무고등학교를 갔는데, 여름에 땡볕에서 콩농사를 짓다가 더위를 먹어 자기 체력으로는 힘들 것 같아 여자농군을 포기했단다. 사회운동가로 살아온 엄마아빠는 이 무남독녀더러 공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하라고 했지만 한신대에 가서 국제관계를 공부했단다. 내 보기엔 언젠가 땅을 찾아올 것 같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농사를 좋아했는데 나이 들어서 시작한 농사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이렇게 즐거운 심경으로 보아 그미의 중학굣적 첫사랑이던 농부의 꿈은 언젠가 다시 현실로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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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 또는 '바오로딸'에서 출판한 보스코의 역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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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바오로딸 수녀님 두 분이 수녀회 한국진출 60주년 기념 프로를 만든다며 보스코를 인터뷰하러 찾아왔다. 빵기가 50이 돼가니 우리가 그 수도가족과 맺은 인연도 50년은 된다. 요즘처럼 책 안 읽고 사람들이 만나기 힘든 시절 수녀님들은 사도직의 이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기는지 걱정된다. 보스코가 펴낸 책이 절반 이상이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나왔으니 바오로가족은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 준 고마운 분들이다. 이베르나르도 수사님, 표테클라수녀님, 홍아우구스타수녀님, 이루치아수녀님, 정아우실리아 수녀님... 그리운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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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둘째딸'이 장만해 보낸 별식으로 아랫층 레아네와 같은 집 식구의 정을 쌓았다. 6대 집사로 좋은 사람을 맞았다


모처럼 찾아간 우이성당 9시 주일미사에는 듬성듬성 앉은 구교 신자들을 마스크 쓰신 예수님이 맞아주고 계셨다. 첫독서에 의하면 (어젯밤에 넷플릭스에서 뉴암스텔담이라는 미드에서 본 대로) 아브라함이 딱 걸린 신앙의 딜레마가 나온다. “너한테 하늘의 별만큼, 바다의 모래만큼 자손을 붇게 해 줄 테니 네 외아들 나한테 죽여 바쳐라!” 아니면, “네 나이 100, 사라 나이 90에 낳은 한 점 혈육 이사악이니 애지중지 품에 안고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거나...” 얘기의 결말은 우리가 잘 아는데, 보스코는 먼 훗날 아버지 하느님이 골고타에서 몸소 당신 손으로 치르실 '외아들 제사'의 예행연습이 아니었을까 라고 이 대목을 풀이한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묵상하고 싶은 분은 보스코의 옛날 주보 글을 읽어보시고...)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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