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일 수요일, 해나다 구름끼고 한두 방울 비, 밤엔 천둥번개에 소나기

 

아침엔 성무일도를 하며 내 대모 김상옥 수녀님의 어머니, 프란체스카 할머니를 위하여 기도했다. 지금 살아계시다면 103세이신데 23년전, 그러니까 80세에 선종(善終)(가톨릭에서 ‘죽음’을 일컫는 말)하신 날이 오늘이란다.

 

그해 5월 31일에 어머니가 딸 수녀에게 전화해서 집에 좀 다녀가라고 하셨는데 성모성월 마지막 날이니까 이튿날 찾아뵈겠다고 하자 “내일이면 늦을 것 같다, 얘.” 하시더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수녀님들과 의논하고 저넉 다섯 시에 뵈러 갔단다. “하느님께서 예수 성심(聖心) 성월(聖月)(가톨릭교회에서는 6월을 예수님의 인류 사랑을 각별히 기념하며 기도하는 달로 삼고 있다)에 나를 부르실 것 같은데 그분을 뵈면 제일 먼저 무슨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못 정해서 수녀 딸과 의논하려고 부르셨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좋겠다고 말씀드렸단다.

 

오늘의 순례는 동강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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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막내가 울면서 전화하기를 아침에 자기가 목욕을 하고 나오니 어머니가 묵주를 손에 들고 앉은 채로 돌아가셨더란다. 목욕하러 들어가기 전 어머니가 등을 좀 두들겨 달라고 하셔서 서너 번 두드려 드렸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셨고, 당신은 80세까지만 살겠다는 말씀을 해 오셨고, 심지어 매달 전기세 받으려 오는 아저씨한테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그 동안 고마웠다." 하시면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도 하시더란다. 당신에게 요셉 성인이 나타나셨는데 보통 성화에서 보듯이 늙은 영감이 아니고 20대의 잘 생긴 청년이더란다.

 

그래서 오늘 아침 수녀님의 모친을 위한 우리 기도는 “우리에게, 빵고신부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얻어 주세요.”라는 기도가 되었다. 우리 두 아들이 어렷을 적부터 부모를 위해서 바쳐 오는 기도, “두 분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같은 날 하느님 품에 들게 해 주세요.”가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송문교에서 떠나면서 순례자의 기도를 합송하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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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리산 종교연대”의 천일순례(千日巡禮)에서 보스코에게 배당된 날이다. 하필 동네앞 송문교에서 산청함양추모공원까지 걷는 구간이어서 교통편이 편했다. 우리 부부와 스.선생 부부, 오라버니와 아랫집 도미니카씨가 동행하였다. 비올까 걱정했는데 흐리기만 하고 바람도 불어서 걷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지리산 자영이네"에 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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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명상을 하며 걷는 묵언순례(黙言巡禮)인데 침묵하며 얘기하며 여기저기 들르며 걸었다. 강건너 예쁜 아기 자영이네(집 앞에 세운 커다란 바위에 “지리산 자영이네”라고 새길 거란다)에 들르고, 운서의 미자씨네 “바나실”에서 식혜도 한 잔씩 얻어먹고, 동강에서는 지리산 계곡에서 꽃과 나무를 가장 아름답게 가꾸는 집(“시골베짱이” http://blog.daum.net/dongkang300라는 블로그로 알려져 있다)에 들러 일행에게 잔디밭과 정원과 꽃밭을 구경시키고서 매실차도 한 잔씩 얻어먹고 하는 통에 “순례길”이 “마실길”이 되었다.

 

운서의 "바나실"에 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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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구석구석 가꾸어진 나무며 꽃들을 보다가 감탄에 탄성을 거듭하던 체칠리아씨는 장독대를 보고서 “여봇, 장독대는 바로 요롷게 하는 거에욧!”라고 가리켜 보이고 남편 스.선생은 “새로운 지시사항”에 우리 눈치를 보고, 오라버니는 체칠리아씨에게 “형수는 딱 한 달간만 남편 기죽이지 말고 칭찬해 줄 꺼리를 찾아보라.”고 권유하는가 하면, 아내의 지청구를 끊임없는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이며 아랑곳하지 않는 스.선생에게는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듯해서 부부관계란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들을 했다.

 

동강마을 "시골베짱이"에도 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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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출발한 걸음이 12시 넘어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에 도착했고 몇은 전시관을 둘러보고 보스코는 도미니카씨를 동반하고 묘지를 방문하고 몇은 의자에 앉아서 그 아픈 과거사를 얘기하였다. 묘지에서 내려오는 도미니카씨에게 오라버니가 “왜 울지 않고 내려오느냐?”고 묻는다. “저런 사연에 접하면 분개하고 통곡해야 마땅한데 우리 심장에 암이 걸렸는지 그 엄청난 비극 앞에서도 애도하는 감정을 못 느끼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요지였다. 오라버니의 양심이 얼마나 투명하게 맑은지를 보여주는 한 마디이기도 했다.

 

추모공원 방문은 잘못된 과거사를 보고 분노할 줄 알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각자가 얼마나 해 왔는지 반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 여섯 명은 모두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사건을 분개하는 사람들이어서 공감을 이루었다. 추모공원에 와서도 “빨갱이 새끼들은 모조리 쏴 죽여야 해.”라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이나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찾아가서도 “전라도 것들은 모조리 쓸어버려야 해.”라고 기염을 토할 만큼 지역감정의 화인(火印)이 양심을 지져버린 파렴치한들이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어서 다행이다.

 

오늘의 순례목적지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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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밑에 미리 세워둔 내 차로 화계에 가서 백반을 먹고(스.선생이 쐈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채취한 마삭 덩굴을 심고 텃밭에 고랑 하나를 더 일구고 잔디를 깎고 하는데 김인식 선생이 모처럼 친구와 함께 휴천재에 들렀다.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일에 너무 지쳐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말 그니 집에는 "힘센 머슴" 하나가 필요하다.

 

김인식 선생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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