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월 16일 화요일, 찬바람 쌩쌩 불다 눈보라


바람이 무섭게 불어 며칠 따뜻한 온기로 몸을 풀던 봄꽃들도 다시 움추렸다. 겨울이면 빈 논에 볏단이 쌓여 있던 기억도 까마득하게 사라진 세월, 그제까지만 해도 워낙 푸근한 날씨여서 벼 그루터기 틈새로 논바닥이 쩍 갈라지며 개구리라도 튀어나오는 초봄이려니 했지만, 어제 오늘 삭풍이 불어 겨울잠 자는 나무들 흔들어 깨우는지, 지금 밤도와 쏟아지는 눈보라는 봄이 아직 멀었다며 우리 몸마저 움츠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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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주일미사를 마치고 읍에서 돌아오며 양조장에서 얻어온 술지게미 통을 보스코가 배나무와 자두나무 밑으로 옮겨 놓는다. 함양 양조장은 함양 초입 인당에 있는데 먼 옛날에는 내 친구 베로니카네가 주인이었단다. 보통은 양조장이나 정미소집 딸들은 그래도 부잣집이어서 먹는 것, 입는 옷 또한 남부럽지 않았고 공부도 많이 시키곤 했는데, 여러 세대가 물려받는 일이 흔치는 않다.


아무튼 주인이 바뀌어 새 주인은 공장을 크게 늘리고 모든 것을 자동화 설비로 바꾸어 제법 규모 있게 운영하고 있다. 나야 술맛을 모르지만 우리 휴천재 나무들은 술지게미 맛에 재미를 붙여 그걸 마신 금목서, 불두화, 자두나무가 작년엔 제법 효도를 했다. 그 양조장 앞을 자주도 지나다니며 덜컥 말을 못붙이다 서울 사는 울 오빠가 그 양조장 주인이 자기 친구의 처남이라고 소개를 해줘 양조장 빈터에 내놓은 술지게미를 얻어서 싣고 오곤 했다. 그제도 여섯 말이나 들고 왔으니 올 과일나무도 술에 취해 잘 열릴 게다


술지게미를 배나무에 주기 전 물까치떼에 먼저 먹여 취하게 한 뒤 저놈들을 일망타진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랫터 구장네 밭 봄동 위로 그놈들이 까많게 붙어 쪼아먹고 있다. 무어라도 먹을 게 있으면 먹고 살아 남아야지 명이 붙은 생명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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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줬는지 도에서 줬는지 각 사람한테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이 나왔다. 설에 자식들도 못 내려 오는데 아마 설상이라도 차리라는 배려 같았다. 그날 오후에 읍내에 나가는 내 차를 한 아짐이 손을 번쩍 들어 세운다. 군내버스 정거장마다 장가방을 끄는 할매들이 군내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에 와서 읍내 나갈 적마다 할매들을 곧잘 태운다. 남자는 사절. 평소에 떵떵 큰소리치고 살았다는 생각에 은근히 심술이 나고, 담배냄새나 사랑방 냄새가 너무 나서 비좁은 차 안에서 함께 견디기엔 괴롭다


그 할매는 그날 받은 지역화폐를 보여 주며 새끼들이 안 내려온다니 조구새끼라도 사다가 간 해 놓으려고장엘 가는 길이란다자기는 원기마을’(고려 시대에 커다란 절이 있던 절터 동네) 사는데 강 건너 운서마을에서 시집을 왔단다. 두어 해 먼저 그곳으로 시집온 이웃 언니가 운서댁이라는 택호를 차지하는 바람에 자기는 그냥 건터댁’(강건너 집터에서 시집온 여자)이라는 택호로 불렸단다. 참 여자들 이름은 태어나도 성의 없이 지어지고, 시집가면 성의 없는 그 이름마저 잃고 동네이름으로 아들이름으로 불리다 죽는다. 죽어서 묻혀도, 심지어 이장해서 새로 비석을 세워도 이름 석자중 '경주김씨(慶州金氏)'라고 친정집안 본관 성씨만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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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매는 먼 옛날, 애기 낳은지 20일만에 깐난이를 업고 저 포토재를 넘어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팔러 갔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냈다. 돈을 받긴 받았는데 강아지 모가지를 자꾸 들어보며 무게를 가늠하던 아저씨가 너무 성가셨던지 그만 개가 덥썩 개장수를 물어 팔뚝에 이빨 자국을 남기더란다. 그러자 갯값도 뺏기고 약값까지 물어줄 판이라 냅다 줄행랑을 놓았단다. 개장수 패거리가 '조막만한 애기 업고 낭자 튼 아줌마'를 잡으러 다니더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집에 와서도 간이 콩만 해졌고, 얼마간 사릿문 밖에 인기척만 나도 오금이 저리더라며 과연 사람이 죄 짓고는 못 살겠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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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신부가 관구경리 수사님과 함께 연피정을 하러 휴천재에 내려왔다. 내일부터 사순절 단식 피정에 들어간다니 오늘이 바로 카니발(carnevale: ‘고기여, 안녕!’) 축제여서 오늘 저녁밖에 내가 어미로서 밥을 해 줄 틈이 없다. 파스타와 고기, 채소로 이탈리아식 엄마손 밥상을 차려 주었다. 경리 수사님은 내가 꽃을 좋아 한다 들었다고 분홍색 긴기아난을 두 화분 가져왔다. 마룻방 화단에 올렸더니 우리집 흰색 긴기아난과 미모와 향기를 서로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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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며 눈보라와 바람이 더 무섭게 분다. 엊그제 심장수술한 올케를 혼자 집에 놓아두고 호천이가 대건효도병원으로 달려가노라는 전화가 왔다. 엄마가 바람 앞에 촛불처럼 펄럭인다는 병원측 전화를 받은 참이다.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는데 호천의 경과보고가 왔다. "누나, 엄마가 지난번 보다 훨씬 나빠." 하지만 임종이 가까운 것은 아닌 듯해서 나로서는 '대기중'으로 밤을 새야 할 듯하다. 작은아들이 모처럼 곁에 와  있어선지 엄마 처지가 지난번보다 덜 절박하게 느껴져 '치사랑'이 '내리사랑'을 못 이긴다는 말이 실감 난다.


호천의 전화가 이어진다. "누나, 내가 지난번에 기도하면서, 정월 말고 한 3월쯤 좀 날 따뜻할 때 가시게 해 주십사 했거든. 그땐 절박해서 그렇게만 기도했는데, 몇 년 3월인지를 말씀 안 드렸거든. 내년이나 저내년, 아니 한 십년 지난 3월이라고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햇수를 잘못 뺀 것 같아. 하지만 이제 와서 기도를 바꾸면 하느님이 이놈!’ 하시겠지?" 효성스런 아우의 음성에 조금 마음을 놓았으니 잠자리에 들어도 괜찮겠다. 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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