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1993.6.27)

 

하느님 앞의 표정관리

 

성 염 (서강대 교수)

 

     젊은이의 귀중한 목숨이 또 하나 희생되었습니다. 김춘도 순경, 이 젊은이가 자라온 가난한 환경이며, 경찰직에서 국가에 봉사하고 생활을 영위하려던 소박한 꿈이 부셔짐을 보고서, 저는 기성세대로서 심히 부끄럽고, 대학에 몸담은 교수로서 고인과 그 가족에게 참으로 죄책을 느낍니다. 젊은이의 영혼을 위해 주님께 기도드리면서, 이러한 정치적 사건에 당면하여, 시국과 사태를 신앙인다운 안목으로 판단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눈이 맑으면 당신의 온 몸이 밝고 당신의 눈이 흐리면 당신의 온 몸이 어두울 것입니다"(마태 6,22)는 예수님 말씀이 두렵습니다.

 

강원도 명주.양양 선거에서 민자당 중진인사가 패배하자 그 당의 민정.공화계 인사들이 (속으로는 기쁜데 겉으로는 같은 당 사람의 일이라 안됐다는 시늉을 하며 남 앞에서)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쓰더라는 신문기사가 나왔습니다. 젊은 순경이 한창 나이에 목숨을 잃자, 정치계의 보수적인 집단들은 "찬바람 지나고 햇빛이 비쳤다"고 말하더랍니다. 김순경이 죽음이 그들에게 사정의 칼날을 피할만한 따스한 햇볓이 되어 주었다는 얘기 같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갖난 아기가 되어 성전을 찾아오셨을 적에 시므온 노인이아기 엄마에게 하던 말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읍니다. "이 아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속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가 2,35). 구세주가 오시자 동방 박사들은 이국 만리에서 경배 드리러 왔다갔고, 가까운 헤로데는 군인들을 풀어 구세주하고 생일이 비슷한 아기들까지도 모조리 죽여 버렸읍니다. 예수를 주님이라고 믿는 우리들이지만,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사정바람이나 김순경의 죽음 같은 사건이 생기면 이상하게도 속생각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고 맙니다.

 

제가 만일 재작년에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데모하다 경찰들에게 맞아죽은 사건을 안타까워하고 당시의 정권에 정말 분노했다면, 금년 김순경의 죽음을 애도하고 학생들의 과격시위를 비난할 권리가 있습니다. 만일 그해에 성균관대 김귀정 양이 최루탄 가스에 질식하여 죽었을 적에, "비싼 등록금 들여 대학을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데모는 왜 해?"라고 제가 욕했거나 그 당시 관제언론에 동조했다면, 이번에도 "송군을 처단하라!" "학생운동을 분쇄하라!""한총련은 이적단체다!" 라고 부르짖는 관변언론이 제 귀에 솔깃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입에 거품을 물고 학생들을 욕하는 본심이 무엇인지 하느님께 들키지 않도록 하느님 앞에서 표정관리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야 아무리 생명존엄이니 법질서니 국가안보니 하고 내세우지만, 혹시 우리 손아귀에 있는 것은 절대로 남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욕심(맘몬숭배자)이 있지 않은지, 공안당국의 억지 주장에 우리가 놀아나서 좌익으로 몰리는 사람들을 무작정 증오하는 심정(반공교신자)이 내심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 신앙인은 누구를 판단하거나 욕하기 전에 "여러분이 심판하는 그대로 여러분도 심판받을 것입니다"(마태 7,2)라는 말씀을 한 번 더 조심스럽게 헤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