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일 일요일, 맑음


보스코가 입원했던 병실은 5인실로 옆침대 환우는 밤낮으로 탱크를 몬다. 보훈병원이라면 상이용사나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주로 온다고 알려졌지만 그사람 병과는 기갑부대 탱크병이었음에 틀림없다. 이틀 밤을 샌 보스코 얘기로는, 그의 탱크몰이는 초저녁에 끝난다지만 보스코가 잠이 들면 그 소음을 못 들을 뿐, 그 파월장병은 밤새 탱크를 몰고 정글을 누비며 쉴새 없이 돌진하고 있으리라. 낮에 내가 잠깐 들렀을 때에도 그 탱크병의 코골이로 병실이 뒤흔들리는데, 친절하게도 보스코는 나더러 보호자로서 환자 침대 옆의 접이의자에서 자고 가라고 초대하는데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보스코가 나이 들며 내는 3박자 소음, 즉 코골이, 이갈기, 무호흡에 뒤잇는 푸푸푸(양압기를 쓰면서 많이 좋아졌다)로도 밤이 시끄러운데 남의 남자 소리까지 이중창으로 들려주겠다니? 눈물겹게 고맙다. 그런데! 그가 집에 없던 지난 이틀, 우이동집 고요 속에서 나는 더 잠을 못 이뤘다!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는 칙칙폭폭이 안 들리면 잠들지 못하는 걸까? 부부가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의미를 몸이 체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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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철저한 종합검사는 심장에 장착한 스턴트 혈관의 중간이 약간 좁아진 것 외에는 별반 이상이 없어 앞으로 4, 5년은 걱정을 안 해도 된단다. 추운데 갑자기, 그것도 식사 직후 집밖에 나가는 일을 조심하라는 충고는 있었다. 요즘 발전하는 의료수준으로는 인간의 수명이 120을 넘어까지 예상된다고, 전에는 심장수술을 60, 70대까지 하더니 요즘은 80대도 하고 얼마 전엔 92세 노인도 했단다. 아이 낳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노인 수명은 길어만 가니 거리에도 새 차는 안 보이고 똥차만 굴러다닐 날들이 올 것 같아 진땀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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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정오에 병원에 가서 검사결과를 시동생 주치의에게 자세히 듣고, 근처 식당에 나가 그와 함께 점심을 하고, 내가 아침에 우이동에서 짐을 챙겨 나온 길이어서 그대로 지리산으로 떠났다. 서울에서 제일 힘든 것은 탁한 공기, 문밖만 나가도 마스크를 하는 불편이다. 지리산이야 마스크를 안 해도, 더구나 이 강추위에 인기척도 없으니 모든 면에서 완벽한 청정지역이다. 모처럼 내린 눈으로 화려한 덕유산 설경을 감상하며 저녁 6시 가까워 휴천재에 도착했다. 집에 올라가는 비탈길도 양지여서 눈이 다 녹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휴천재 2층에는 온수가 얼어 있었다! 싱크대, 세면대에 밤새 촛불을 켜 녹이려 했지만 물 나올 기미가 안 보여 어제는 혹시 무슨 방도가 없을까 해서 화계의 철물점을 찾아갔더니 우리집도 온수가 안 나온지 사흘이라오. 다음 주에는 기온이 올라간다니 기다리시구려. 적어도 올여름까지는 틀림없이 녹을 테니까 내 말 믿어요.’ 했다. 동네 열 집에 일곱은 온수가 얼었다며 대수롭지도 않게 넘기는 그의 비범함에 위로를 받고 돌아왔다. 서울집은 더 걱정스러울 참인데 레아씨가 신경을 써주어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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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병원에서 퇴원한 길이니 목욕을 시켜야 하는데... 온수가 나오는 일층 부엌에서 양동이에 물을 길어 이층 화장실로 들고 올라간 다음 그더러 샤워를 하라고 했더니 허리 아픈 여자가 무겁게 물동이를 들고 다녀야겠느냐, 며칠 지나면 수도가 녹을 텐데?’라며 되레 역정을 내고서 샤워를 안 하겠단다!


아마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염아, 너 매맞고 할래? 그냥 빨리 할래?”라고 야단을 치셨을 게다. 초딩 4학년까지 엄마가 매를 때리면서 목욕을 시켜야 할만큼 목욕을 싫어했다는 보스코! (지금도 그의 샤워는 5분 안에 끝난다!) 


어머니가 안 계신지 하도 오래되어(65년째!) 어쩔 수 없이 내가 어르고 달래어 샤워실에 밀어 넣고, '길어다 준 뜨거운 물을 대야에 퍼담고', '찬물을 섞은 다음', '바가지로 몸에 끼얹으라'고 방법까지 자상히 일러주고선 ("그런 건 당신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라는 볼멘 소리도 무시하고) 문밖에서 엄마보다 무서운 아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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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우리 가족의 목욕은? 그래도 교장 사택이어서 집에 일본식 목욕탕이 있곤 했다. 겨울이면 2주에 한번쯤 목욕을 했는데 U자로 된 커다란 무쇠솥에 집밖 아궁이에서 장작불로 물을 끓였고, 차례로 들어가 몸을 푹 불려서 때를 밀었다. 무쇠솥 바닥은 장작불로 달궈져 나무깔판을 깔고 그 위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먼저 남자 식구들, 그 다음 여자 식구들이 목욕을 하고 나서는 둥둥 뜬 때를 채로 걷어내고 그래도 온수라고 거기다 일곱 식구가 벗어 놓는 옷들을 빨았다. 세탁기도 없던 시절 주부에겐 할 일이 끝이 없었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들끼리 얘기하다 지금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 중에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나온 세탁기!”라는 합창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제도 세탁 끝났다는 경보음이 나자 깨끗이 세탁된,  빨래를 꺼내서 따뜻한 방안에서 빨랫대에 널며 곤고했던 엄마의 시절을 떠올렸다. 추운 겨울 냇가에 나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동태처럼 얼어붙은 빨래를 이고 돌아오던 그 세월 다 보내고 100세의 언덕에 올라선 울엄마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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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이고 주님 세례 축일.’ 11시에 함양성당 미사를 유튜브로 보며 신부님이 강론하시던 세례의 의미를 음미한다. 세례는 죽음과 재탄생을 의미한다고,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다 비우고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사람만 영원한 삶을 얻는다는 말씀에 영세했습니다라는 말을 입밖에 꺼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오늘로 '성탄시기'가 끝났지만 코로나로 신자들과의 대면 없이 한 해를 다 보내는 사제들의 가뜩이나 외로운 삶이 한결 무겁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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