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7일 목요일, 눈 온 뒤 맑음


보스코의 심장 종합검진을 위해 어제 아침 9시에 우이동 집을 나섰다. 동부간선도로를 지나 천호대로를 달리는데 우리 소나타 계기판에 빨간색의 배터리가 ', 아파!' 라며 눈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어느 운전자라도 계기판에 나타나는 붉은색이나 주황색 시그널은 공포스러울 게다. 그 다음 'ABS브레이크'에 불, '에어백'에 불, '브레이크' 등! 너댓 개 도깨비불이 번갈아 계기판을 돌면서 겁을 준다. 드디어 액셀이 안 밟아진다. 시속 80Km에서 60, 40, 20으로 속도가 떨어지기에 깜박이를 켜고 5차선을 나와 골목길 쪽으로 핸들을 꺾자마자 핸들도 말을 안 듣고 브레이크도 듣질 않는 순간 다행히 차가 멈췄다. 약간의 오르막길이었던 덕분이다.


보훈병원에 걸린 문대통령 사진은 '대깨문'들을 뭇흐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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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병원으로 꺾는 큰길 앞이어서 보스코에게 입원가방을 챙겨갖고 먼저 병원으로 걸어가라고 했다. 예약시간에 도달할 만한 3Km쯤 남은 거리여서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여미고 바퀴가방을 끌며 찬바람 속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기사인 나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레커차를 부르고 쌍문동 단골 카센타에 사고경위와 증세를 알리니 레커차 기사에게 차 열쇄를 주어 자기 센타로 보내면 고쳐서 차를 대리기사 편에 병원으로 보내주겠단다. 오후에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내가 일찍 들러서 찾아가겠다고 했다.


이런 경우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큰 사고 없이 갓길을 찾아 차가 멈춰선 것도 다행이었다. 우리차가 끌려가는 송아지의 슬픈 눈동자를 하고 떠나자 나도 병원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보스코는 그새 입원수속을 마치고 9층 입원실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 쓸 환자 살림을 차려주고 점심을 함께 먹고서 나는 세시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주치의가 외사촌동생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랴, 걱정이 없다. 더구나 보스코는 짜투리시간 애용의 명수여서 어디서든 짬나는 시간을 기막히게 선용하는지라 입원실 침대를 배정받자마자 노트북부터 펴놓고 아우구스티누스와 씨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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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나타(차 뒤에는 SONICA라는 마크가 붙어 있다!)는 베터리와 알터메이터와 제네레이터 고장이란다. 재생품으로 교환하고 25만원을 지불했다. 이 또한 외국에 비하면 얼마나 싸고 신속한 수리인가! 수유역에서 마을버스로 카센터를 찾아가 수리된 차를 내 손으로 몰고서 집으로 올라왔다.


저녁 다섯 시쯤 예보대로 서울집 마당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아랫동네에 사는, 인권센터 허오대표가 찾아와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은 기분이다. 엄마의 긴박한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안도감에 만사가 대수롭지 않고 맘편하다. 남편을 병원에 두고도 배는 고프고 밥도 잘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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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들과 며느리의 효성으로 갑자기 좋아지셔서 원장선생님도 가족이 주는 치유 능력에 놀라시더란다. 엄마는 정신이 들자 호천이에게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안 왔느냐?’ 물으시더란다. 밖에 사는 우리 젊은것들이야 전화도 하고 오가기도 하지만 코로나로 요양병원에 갇힌 어르신들은 외부와 가족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감으로 죽고 싶도록 고독했으리라. 엄마의 이번 생사위기는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골)이라고 일컫는 절망에서 온 것이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고독하여 절망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게 인간이다. 정호승 시인은 그의 시 수선화에게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도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도 했다. 우리 엄마가 단 이틀만에 저토록 빨리 회복을 보인 것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작은아들과 몇 밤을 함께 보내시면서 고립과 절망으로부터 풀려나서였다. 당분간 요양병원의 단절된 삶을 견딜 힘도 생기셨을 꺼다. 오늘부로 호천이는 엄마를 대건효도병원에 다시 남기고 아내랑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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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를 보러 병원으로 갔더니 하느님은 공정하셔서 보훈병원 마당도 소복히 눈이불을 덮어주셨다. 보스코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너 가지 검사를 했다. 심장의 단층촬영을 하고 혈류검사도 하였다. 두 해 전의 스턴트 착용 후유증이 없나 철저하게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저녁을 함께 먹고서 보스코를 입원실에 두고 전철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와 우리 온 가족이 성남의 이민상 원장님, 선내과 원장님, 서정치과 원장님, 보훈병원의 김과장님 등 얼마나 친절한 인의(仁醫)들에게 생명을 빚지며 살아가고 있는지 절감하며 전철 내내 고마움의 로사리오 알을 굴렸다


보스코가 오늘 받은 마지막 검사 '6분 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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