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4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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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떠오르는 왕산 위로 아침노을이 찬란하다. 숨 쉬고 사는 하루하루가 하느님이 마련하신 선물로 고맙기만 하다. 일어나 그 빛을 남기려 카메라를 들고 테라스로 달려 나가니 십여초 사이에 찬란함은 신기루처럼 스러지고 흰색 구름으로, 얼마 뒤엔 회색 구름으로 자태를 바꿔 보인다. 내 인생에서 뭔가 뽐내보려 하지만 움켜진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흘러버리고 거기 남아 있는 허무함이 스산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공허감이 찾아올 땐 몸을 움직이는 일이 최고의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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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층 두 곳 화장실에서 깔판을 다 꺼내다 가을 햇살에 일광욕을 시키고 화장실은 벽부터 바닥까지 박박 닦아냈다. 때를 한 켜 벗겨내자 장님 눈 뜨듯 앞이 훤하다. 결국 청소는 내 마음 속에 가둬두었던 땟국을 벗겨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딸들 넷 다 정신없이 바삐 그리고 보람 있게 살지만 큰딸네손주들 사진이 제일 생기 있는 미소를 짓게한다. 겨우 두 살짜리 아기한테 남동생이 태어났다. 엘리의 오후는 유아원에 찾아가서 손녀를 데려온 다음 저녁까지 두 아기를 돌보는 일로 분주하다


그 어린 것이 아기를 목욕시키는 아빠곁에서 동생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씻어주기도 하고 동생을 여간 이뻐하지만, 아기를 끌어안은 엄마 곁에서 엄마, 애기 내려놓고 나도 좀 안아줘!’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광경에선 할미 마음이 짠하게 아려온단다. 두어 달 전까지만도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시선과 손길이 자기한테만 쏠렸던 터라, 부모와 할미의 사랑을 누구와 나눠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리면서 저 어린 생명이 벌써 과거의 추억으로 살아가는 처지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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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월요일 오후엔 오랜만에 느티나무독서회아우님들을 만난다고 들떠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임이 다시 취소되었다. '공공부문에서 3분의 1은 재택근무에 할당. 대면모임이나 회식 감염 시 문책'이라는 조처가 공문으로 내렸단다. 회원 대부분이 공무원이기에 국가 시책에 제일 먼저 순응해야 하는 입장들이다.


읽어야 할 책은 깃털도둑(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흐름출판사)이다. 우리 여자들은 고가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면 보석류만을 생각해왔는데 서양에선 명품가방 따위가 나오기 전 자신의 높은 신분을 표현하는 수단이 죽은 새의 깃털이었단다. 수컷 새는 암컷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신의 깃털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왔는데 여성은 이 깃털을 이용해 모자와 패션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도구로 썼다.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일에 잔인하게 새를 잡아들였기에 아름다운 새일수록 더 빨리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됐다. 여자들이 모자와 옷에 새의 깃털을 애용했다면 낚시광 남자들은 많은 고기를 잡으려, 고기를 자극하는데 아름다운 깃털로 플라이를 만들었으니 새들의 또다른 수난이었다.


이 책에서는 열아홉 살의 런던왕립음악원에 풀루트 연주자로 재학 중인 에드윈이 플라이 낚시에 쓸 새의 깃털과 돈을 얻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류 컬렉션을 갖고 있는 트링박물관을 털어 새 가죽 299점을 훔쳐오면서 시작된다. 나중에 들통이 나서 체포된 후에 재판 과정에서 야스퍼거증후군이란, 말도 안되는 병명으로 풀려나고 그는 여전히 플루트를 연주하며 플라잉 낚시를 즐긴다. 전세계의 아름다운 새들은 플라잉 타이어들에 의해 점점 사라진다. 인간에게 금지된 것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본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벌어지는 자연파괴 행위는 오늘도 멈출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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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서 낚시광으로는 남해형부네 부부가 유일한데, 그분들은 매일 마을앞 방파제에 앉아 곧은 낚시질을 하는 강태공들이어서 저런 치한들과는 사뭇 다르다.형부는 매일 아침 바다에서 떠 오르는 태양을 휴대폰으로 낚아올린다. 


어제 오후에 김원장님이 배추 열 폭과 무 열 개를 얻으러 임실에서 오셨고, 오늘은 봉재언니가 알타리무(드물댁 고랑의 무가 물이 부족하여 알타리무가 되고 말았다. 작년의 우리 무 농사가 딱 그랬다!)를 좀 얻으러 오셨다. 내가 보기에 오가는 차량 기름값이 더 드는 비경제적인 소득행위인데, 배추나 무는 만남의 핑계일뿐 실상은 농사를 지은 농사꾼을 만나려고 오셨음이 분명하다


휴천재 텃밭은 친구들의 텃밭으로 우정을 키워 나누기에 좋은 장소다. 저녁을 들고 해박한 지식이 한없이 풀리는 한담을 나누다 자정이 가까워 돌아가는 김원장님이 우리에게 남기고 가는 마음의 여운은 늘 풍요롭기만 하다. 더구나 우릴 찾아오실 적마다 재미있고 무게 있는 책들을 한 아름 선물로 가져다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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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들이 나더러 힘드니까 이젠 밭농사 그만 지으라고, 심지어 날 고생시키는 텃밭에다 시멘트 콩크리트를 부어 포장해 버리겠다는 순둥이의 어깃장마저 있지만, 농부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자연과 소통하고, 친구들과 함께 소출을 나누는 즐거움이야 그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게다.

 

봉재 언니도 한 봉지의 알타리를 가져가며 도정의 체칠리아 부부랑 점심을 함께하면서 나눈 우정도 한 자루 쯤 챙겨가셨다보스코의 말마따나적어도 우리 부부가 살아온 한 생을 돌이켜 본다면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손길은  따뜻이 오가는 이웃들의 우정을 통해서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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