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25일 금요일, 흐림


허리 아프다는 내 엄살을 듣고서 마음씨 착한 후배 목사가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다. 아침 9시에 휴천재에 도착했으니 도대체 몇 시에 김포에서 떠났으면 이 시간에 왔을까? 나는 느긋하게 집안청소, 아침기도, 티벳요가마저 다 하고서 아침식사를 막 끝난 시간이었는데... 부지런히 아침상을 차리니 아침도 먹었다며 커피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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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서 왔다는 소리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친구 김원장님 얘기로는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자는 잠이 우리 두뇌에 제일 깊은 잠(램수면)이자 건강에 가장 유익하다던데. 부연하여 요즘 코로나 확산에 단연 앞장선 한국개신교 일부의 미친 짓이 새벽기도를 한답시고 새벽잠을 안잔 뻘짓’의 결과라는 설명마저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렇담 보스코처럼 새벽 4시면 일어나 서재로 가서 책상 앞에 앉는 습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반화의 오류정도일까?


전목사는 시술용 간이침대마저 싣고 와서 나를 눕히고 무려 4시간에 걸쳐 몸 전체의 혈() 500여개를 일일이 눌러가면서 내 몸에 이상을 일으킨 혈들을 제압하여 치료를 해준다. 그미의 남편은 소리없이 아내의 수기치료를 돕는다. 나야 고맙기 짝이 없지만 그런 정성된 마음을 갖고 천리길을 찾아오게 사람 맘을 움직이신 것은 오로지 저 위에 계신 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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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한없이 많다. 이게 은총이다. 주변사람들에게 도움과 격려와 사랑을 받게 하시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 않고 희망을 놓지 않게 보살펴 주시는 섭리의 손길에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보스코가 자기 묘비명에 적어 달라는 시편 구절, “주님께서 너에게 잘 해 주셨으니, 고요로 돌아가라 내 영혼아”(시편 116,7) 라는 말씀 그대로가 우리 부부, 우리 두 아들, 그리고 큰아들네가 살아온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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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주변에 남들에게 사정없이 짓밟히고 상처 입고 지쳐있는 사람이 있다면 거침없이 손을 내밀어야 하는 까닭이 우리가 저 모든 따뜻한 손길을 거져 받아왔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 사이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깊이 상처를 입는다. 상처 입지 않으려고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보는 안타까움도 거기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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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목사는 학교 다닐 때부터 노동운동으로 투옥되는 등 고된 삶을 살아왔고 감옥에서 병을 얻어 몸이 몹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고통에 주저앉지 않고 '민중교회'를 하다 지금은 자기보다 몸이 더 아픈 사람을 위해 온 몸과 시간을 내놓으며 '치유목회'를 하고 있다. 몸과 맘을 아울러 사역하는 셈이다.


저렇게 애오라지 타인들에게 헌신하며 살아가는 어리숙한 사람을 보면 나는 한없이 부끄럽다, 저런 힘 든 삶을 잘도 피해 오늘까지 아무런 아쉬움 없이 살아왔으니까. 주님은 어찌 보면 사람의 그릇에 따라 고통을 배분하시고 거기 따른 상급도 그 그릇에 따라 마련하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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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시간 동안 누워서 지압을 받는 나도 힘든데 후배는 변함없이 따뜻한 손길로 온 몸을 어루만진다. 930분에 시작한 치료가 130분에나 끝나고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에는 전목사가 다듬은 요가도 가르쳐주어 보스코가 교본으로 정리하게 했다. 본래는 점심 후 꽃무릇이 한창일 상림숲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는데 지압 시술로 몸을 움직일 여력이 없어 후배 부부를 보내고나서는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대로 잠이 들어 저녁까지 내리잤다.


전목사는 익산에 가서 지인들을 만나고, 1시에 김포에 도착했고, 오늘도 예약된 네 사람을 치료한다니 징그랍게 짠하다’. 나는 오늘 오후에서야 겨우 몸이 풀려 정자에 한가로이 앉아 텃밭에 심을 마늘씨를 깠다, 보스코와 함께. 한목사네 마늘(시댁에서 보내준다는)이 6쪽으로 좋아 보여 나한테 보내 달라 했더니 50여 통을 택배로 보내왔다. 땅에 한 접반을 심으면 아홉 접은 거둔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 절반만 나온다 해도 얼마나 남는 농사냐? 오늘 오후에 마늘을 심기로 했는데 저녁 나절 휴천재로 올라온 드물댁이 마늘은 내일이나 심잔다. 나도 오늘은 일하기 싫었는데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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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 얘기가 월암댁네 담에 누렇게 잘생긴 늙은 호박 두세 통이 매달려 있었는데(나도 침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상해 따다 갈라보니 다 썪고 벌레가 생겨 껍질을 벗겨 지붕 위에 너는데 하루 종일 걸렸단다. 보스코가 어제 배나무밭에서 꼭지 떨어진 늙은 호박 한 덩이를 들고 올라와 나더러 자꾸 갈라 보라 했다. 평소 착한일’을 별로 한 게 없어 놀부네 박속이 겁나서 미루고 있었는데, 드물댁 얘기를 듣고 우리 호박도 갈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호박도 속은 벌레 동네가 되어 골목골목에서 뛰어놀던 애들처럼 거기 가득하던 애벌레들이 모조리 튀어나와 팔딱팔딱 신이 났다. ‘으악~’ 내지르는 내 비명에 드물댁이 깔깔 웃는다. 요즘은 똑똑한 어미벌이 아예 애호박 때 침을 주어 새끼를 까놓아 늙은호박을 가르면 대부분 이렇단다. 드물댁이 자기가 갖다 말려 떡이나 해 먹겠다기에 얼른 내주었는데 내가 평소 놀부 마누라처럼 못되게 굴었나?’ 싶다.


추석 선물을 보내온 지인들에게는 고맙디 고마웠고, 특히 저녁나절 사부인과 나눈 통화에서는 두 손주 시아, 시우 자랑을 실컷 주고받았다(두 안사돈의 공동손주 자랑은 돈도 안 낸다.) 우리 큰딸네 큰딸이 둘째(윤서 동생)를 낳았다는 반가운 소식이며, 둘째딸 순둥이가 옆집에서 넘어온 나무를 가지치기 하다 쐐기에 몇방을 물려 고생하는 얘기며(그런 고생 하다보니 휴천재 텃밭에 레미콘을 보내서 '꽁끄리'로 확 덮어버리고 싶다나, 나 고생 않게?), 셋째딸 귀요미가 산청한방축제로 여러 TV방송에 나온 이쁜 얼굴을 보며 행복한 하루가 또 간다. 그런데 우리 막내딸 '꼬맹이'는 어디서 뭘하나, 조서방 다친 데는 차도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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