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3일 일요일, 흐리다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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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나절 햇살은 쌀 한 말인디..." 드물댁의 한숨이다. 고추농사를 비롯 과일농사도 채소농사도 이미 망한 터에 따가운 햇볕에 벼가 한창 익어야 할 계절에 세 차례 태풍이 지나고 쉴새없는 가을장마라 올해 쌀농사도 농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미래학자들과 환경론자들의 예언대로, "어? 어? 어! 어!" 하는 새에 인류는 2030(10년밖에 안 남았다!) 지구 생태계 파국을 향해 큰물에 떠내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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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허리 때문에 고생하는 걸 아는 친구가 몸이 허해서 그렇다며 영양보충 하라고 삭힌 홍어회를 보냈다. 택배상자를 여는 순간 암모니아 냄새가 온 집안에 최루탄 가스처럼 퍼진다. 광주사람인 보스코는 그냥 먹지만 생소한 음식에 필이 꽂히는 나는 매우 좋아하는 게 홍어다. 그런데 이런 별식도 옆에서 즐겨 먹는 사람과 함께라야 제맛이 나는 법. 그래서 이런 귀한 음식을 받아들면 누구랑 먹을까?’ 하는 숙제가 먼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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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사람인 이사야는 0순위고, 무슨 음식도 즐기며 고마워하는 스.선생이 뒤를 잇는다. 그래서 비가 부슬부슬 오는 그제 점심에 스.선생네 솔바우에서 삼합(홍어+돼지고기 수육+묵은지)과 막걸리를 마음 통하는 친구들과 함께 들었다. 천국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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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아직도 비는 내린다. 금요일까지 대전 정하상교육관에서 효소단식피정을 지도하고 돌아온 미루에게 전화해서 이사야랑 함께 휴천재에서 점심을 하자고 했다. 예전엔 더 자주 보았는데 공장을 짓고 가족기업으로 올인하다 보니 짬을 내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래도 두 아들이 옆에서 지켜주니 든든하여 더 바랄게 없고,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들도 흐뭇하다. 이사야는 말수가 적고 속이 깊어 비슷한 성격의 보스코가 퍽 좋아한다.


그러고보니 내 허리 아픈데 조언해 줄 사람이 하나 있으니 정형외과 전문의로 척추 전공인 김원장님! 처음부터 그분 생각을 했지만 마치 디스크 수술의 대가에게 찰과상을 내보이며 엄살을 떠는 것 같아 곧 낫겠지 기다려보자하며 참아오다 이제 통증이 임계점에 와서, ‘주말이니까 혹시 임실에 내려오셨으면 이사야네랑 점심이라도 하자고 전화를 했다. 주말농군으로 무씨와 쪽파를 파종하려는 참이란다. 그래도 천하에 뻔뻔하고 염치없는 휴천재 여주인이 떼쓰는데 못 이겨 기꺼이 한 시간 반을 달려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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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 미루네는 산청축제 준비로 먼저 자리를 뜨고 김원장님은 제일 원시적이지만 제일 간편한 치료법을 보스코에게 전수해주었다. 마룻바닥에 나를 엎드려 눕게 하고 발뒤꿈치로 허리를 힘주어 밟듯이 문질러 주는 요법. 예전에 내게 카이로프락틱을 해 주시던 모래네 이집사님은 아예 등위에 올라가 두발로 밟아주셨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 내 허리가 !’소리를 내면서 뼈가 제자리를 찾아갔는지 통증이 사라지곤 했다.


보스코가 그 체중으로(64Kg!) 내 등에 올라가면 아마 등뼈가 요절날 꺼다. 그래도 아침저녁 한번씩 그의 정성으로 오늘까지 10분씩을 네 번 밟아주었는데, 신통하게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고 보스코 발은 약발이다.


오늘은 주일이지만 코로나 2.5단계 종교행사여서 집에서 두 사람 사이에 성무일도와 로사리오로 주님을 모셨다. 그 동안 청정지역을 뽐내던 함양에서마저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자 이웃 지자체들에서 보내오는 긴급문자함양가지 마라!’ ‘함양사람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옛사람들이 문둥병자에게 돌을 던지던 악습이 재현된다, 이번에는 지구 전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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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발행인으로 이웃 거창에서 나오는 '한들신문'은 이곳 주변에서 나오는 지역신문 중에 읽을거리가 제일 많다. 그 신문에 어린이를 위한 도서라지만 어른들에게도 의미 깊은 책소개가 나온다. 월프리드 루파노 글, 마야나 이토이즈 그림, 김미선 옮긴 팬티입은 늑대우리는 늑대라면 아기돼지 3형제빨강모자에 나오는 날카로운 눈빛과 뾰족한 송곳니를 가진 두려움의 존재로만 생각한다


"코로나는 북한의 지령으로 좌파정권이 퍼뜨리는 전염병이다!"  "신통한 병도 아닌데 여론조작용으로 질본이나 KBS로 소란을 피우는 거다!"(내 귀로 직접 들은, 어느 의사선생) "경건한 기독교인들 예배 못하게 종교박해하느라 신천지 사랑교회 신도들은 환자 아니어도 확진판결을 내려 잡아가둔다!" 찌라시 신문들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나라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바로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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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산꼭대기에 늑대 한 마리가 살았어요. 울음소리는 멀리서 들어도 온몸이 얼어붙을 듯 살벌하고 눈빛도 무시무시한 늑대라네요... 늑대를 직접 만났다는 동물은 없어도 소문들이 진실이 되어 즉시 늑대 대응법이 만들어지고 교육도 하고, 늑대 관계 추리소설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늑대울타리‘, ’늑대올가미‘, ’늑대경보기사업은 불티가 나고, 늑대 공격에 살아남을 태권도학원도 인기가 좋았어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다람쥐가 파는 견과류도 불타나게 팔렸어요. 아침 신문에는 '늑대가 숲속 동물을 둘이나 또 잡아갔다'고 대서특필 되기도했어요. '아기돼지 찾는다'는 전단이 붙고, 세금을 올려 '늑대잡는 특수부대'도 편성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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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늑대가 나타났다!!!' 누군가 외쳤지만, 늑대를 알아보는 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늑대 전문연구가라는 사슴도, 긴급상황을 알리는 특수부대원들도... 늑대가 직접 찾아와서 자기가 늑대라고 설득하는 우습기도 하고 씁쓸한 장면이 연출됐어요. '죄송합니다만 제가 늑대거든요.' 흐리멍텅한 눈빛과 부드러운 털에 귀여운 줄무늬 팬티를 입은 늑대라니! 늑대가 자신이 틀림없는 늑대며 아기돼지는 본 일도 없고 고기도 정육점에서만 사 먹었다고 진술했어요. 워낙 추위를 타서 집앞 바위 위에서 벌벌 떠는 자기를 위해 올빼미 아줌마가 소중한 팬티를 짜줘서 부끄럽지만 입고 있다고 했어요....


"그동안 무서워서 힘들어했던 모든 이가, 이젠 무섭지 않다는 걸 알고 나서도 왠지 더 힘들어 보였어요. ‘도대체 왜 사는 거야?’ ‘두려움이 삶의 이유야?’"


오늘 오후로 가을장마가 끝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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