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6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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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내리고 내린 비가 구름으로 자꾸 앞산 기슭을 타고 올라 다시 비로 내린다. 산속에 살며 수없이 보는 광경인데도 질리지 않는다. 좋다. 참 좋다. 어제 아들 한빈이를 데리고 한빈이 외할머니 집을 찾아온 진이가 한 말. “이웃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애를 데리고 몇날며칠이고 집에만 갇혀 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 내일은 애 데리고 백화점에라도 가서 바깥 공기를 좀 쏘이고 와야지 이대로는 미치겠다!”고 하더란다


도시 사는 친구들이 나더러 시골에만 갇혀 살면 답답하지 않느냐?’고 물어온 일이 있어 그런 생각 할 틈이 없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코로나 사태를 당하고서 보니까 시골, 산골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해방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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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오스티아의 내 절친 카르멜라와 도메니코가 오늘 결혼 50주년을 맞는다는 소식이 페북에 떴다. 문자로 축하를 보냈다. 천성이 동양적이고 순박한 카르멜라와 친자매처럼 지낸 세월이 거의 40년이다


80년대 보스코의 유학시절 오스티아의 같은 아파트에서 5년을 살았고, 97~98년에는 보스코의 안식년을 로마에서 보내며 두 집 문턱이 닳도록 오갔고, 2003~2007년의 공직생활 중에서도 무척이나 뻔질나게 오간 사이다. 카르멜라의 친정부모 피에트로와 엘리사베타, 그미의 두 오빠, 두 아들 (이제 50줄에 들어서는)막시밀리아노와 시모네, 며느리들과 손주들... 그리운 친구 그리운 시절이 세월 저편에서 그날처럼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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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휴천재 배를 땄다. 조생종 원앙인데, 땄다고 할 것도 없이 몇 개 안 담긴 박스를 보고 이렇게 농사를 지으려면 과연 배 농사를 지어야 할까?’ ‘봄철 한때 배꽃이나 보게 그냥 두어야 할까?’ 고민스럽다


초봄 김원장님 아버님과 집사님이 가지치기를 해주시고, 보스코가 서너 번의 소독을 하고, 열매 솎기, 봉지싸기, 거름 주기 등 과수에 쏟는 노력이 너무 아깝다. 물까치떼가 배봉지마다 입질을 해서 모조리 썩어들어가고, 썩은 자리엔 파리떼와 개미 그리고 말벌이 난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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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서 배농사를 크게 하는 요한 선생(거제 살던 보스코 후배 고 율리아노씨의 절친)의 사정이 걱정돼서 전화를 했다. 배농사가 생업으로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국내에는 낼 것도 없는 배 농사의 달인이다. 한숨 섞인 탄식이 전화에서 울렸다


"올봄엔 유난히 배꽃이 튼실하고 예뻤어요. 배밭에 하나 가득 피었어요. 그런데 35일 아침에 일어나 배밭에 나가보니 배꽃이 하얗게 땅바닥을 뒤덮었어요. 간밤의 느닷없는 추위 때문에 얼어 떨어진 거에요. 그 다음 첫 태풍에 남아있던 배도 다 떨어지고 금년엔 딸 배가 하나도 없어요." 


"배 딸 시기가 되자 집사람의 상심이 너무 커서 자매들과 놀다오라고 부산에 보냈어요..."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은 그 농산물이 자식이기에 무슨 위로도 드릴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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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난 배를 한 바구니 까서 태우 할머니에게 들고 갔다. “올해 비가 너무 와서 고추밭에 물이 차 참깨랑 고추농사는 다 망쳐뿌렀다. 콩도 일곱 되를 심었는데 고라니가 다 먹어 치워 두 되도 몬 거뒀다. 우린 죽지 못해 산다.” 엄청난 기후변화에 과일농사도 밭농사도 농부들에게 시름에 시름을 안겨준다. 요새처럼 태풍이 연달아 몰아치고 날씨마저 어제오늘처럼 초겨울 기온이면 벼농사마저도 망치고 말 것이다. 이런 폐해는 전지구적 기근이라는 재앙으로 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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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탄식 중에서도 어머니는 물속에서 건져온 토마토며, 비를 맞으며 따온 콩잎이며, ‘요새 남새꺼리가 다 녹아 먹을게 없으니 가져가 반찬해 먹으라고 고구마 줄거리를 따주신다.) 사람들이 나더러 주고자푼병걸린 사람이라는데, 어머니는 줄 것이 없다며 고구마 밭 고랑가를 더듬어 풀섶에서 근대 한 줌마저 찾아 꺾어주신다


사는 게 왜 이리 폭폭한지 모르갔다. 울 아들 나 없으면 어찌 될까 내사 기를 쓰고 살고 있다.” 한숨 지으시는데 아들마저 내게 나 엄니 땜시 산다고 푸념한 적 있어 모자간의 폭폭한 인생을 보여준다. 저렇게 효성스런 아들과 극진한 어머니가 서로를 바라보며 지탱해 주기에 가족이다.


목요일에는 체칠리아가 준 콩으로 콩국수를 함께 말아 휴천재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금요일 점심에는 그집에서 바베큐를 하겠다고 불렀다. 그집 감동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는데 벌써 바람 끝이 차다. 오틸리아씨 부부도 함께 자리를 했다. 우리가 매일 푸성귀만 먹는다며 영양보충은 그 집에서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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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일찍 배를 따고서 상심하고 있는 터에 이사야네가 보스코를 보고 싶다고 휴천재로 넘어와 실상사 앞 까망집엘 갔다. 지리산 둘레 만인보 때부터 주인 아줌마의 변함없는 불친절에도 그집의 변함없는 올갱이 수제비 맛에 발길이 닿는 집이다. 넷이서 휴천재로 돌아와서 커피와 후식을 들며 위로를 받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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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미사가 없으니 삶의 중심이 흔들거린다. 임신부님네 오누이가 사는 산청 석대리의 가림정(佳林亭)은 특히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들의 유일한 안식처. 미루가 그곳을 가림정 공소로 삼고 공소회장을 자처하는 이사야, 총무를 자처하며 우리 모임을 주선하는 귀요미랑 신부님을 모시고 오늘 주일미사를 드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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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네 식구들이 제네바 한인 미사에 가는 길이라며 전화를 했다. 어느 새 큰손주 시아는 훌쩍 커서 총각티가 완연하고, 작은손주 시우는 아직 어린이 모습으로 엄마를 사로잡으니 생존하는 방법은 모두에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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