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7일 금요일, 징하게 내리는 비


일기장IMG_8909.JPG


폭포수 옆에 집을 짓고 창문을 열어놓은 듯하다. 5분정도 화장실을 다녀온 장맛비가 좀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한다. 동남아 스콜처럼 물을 쏟아 붓는다. 동이째 퍼붓는다. 우리 집은 고도 340에 있고 집뒤에 높은 축대도 없고 그 위가 논 대신 밭이니 특별히 걱정은 없지만 집안은 습하고 곰팡이가 한철을 신나게 번지고 있다.


일기장IMG_8899.JPG


일기장20200807_095525.jpg


빗속에서도 틈만 나면 텃밭에 가서 오이와 가지, 옥수수, 고추를 따고 장마에 제철 만난 듯 사방으로 뻗어 나가든 호박덩쿨을 들어 올리니 아기머리통 만한 호박이 쓰윽 나타나 얼마나 놀랍고 반갑던지! ‘! , 여기 숨어서 뭐해? 어서 가자, 가서 비도 오는데 땡초랑 부추 넣고 전 부치자 그래, 깻닢도 넣어야지.’ 자잘한 옥수수는 아기 입속에 나는 첫 이빨인데 어찌나 보드랍고 달고 맛있는지!


일기장20200804_081400.jpg


내 손으로 기른 텃밭 채소로 요즘은 식탁이 풍성하다. 봉재 언니는 늘 당신 밭에서 나오는 토종 푸성귀로 소박하고 감사한 생활을 하는데, 엊그제 어떤 방송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들으니 어렸을 때의 언니 모습이 그려지고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었다. 애는 많고 가난한 시골생활을 하다보면 봄마다 오는 보리고개는 모든 이가 힘겹게 넘어야 하는 슬프디 슬픈 고개였다. 그때면 들과 산에 나는 모든 풀은 삶고 데치고 우려서 독초도 남아나질 않았단다. 배고프면 허기진 배를 맹물로 채우던 시절... 


https://youtu.be/YesbJ85IrWc

농민운동시절의 임봉재 언니

일기장20200524_154605.jpg


한번은 피난 온 아이가 껌을 씹는데껌이라곤 밀이삭이나 송진이 고작이던 시절, 꼬마가 얼마나 그것이 씹어보고 싶던지 조금만 달라 했더니, 손톱만큼 떼어주며 '너 이거 갚아야 해!‘ '응 갚을께!' 그게 족쇄가 되어 볼 때마다 껌 세 개 값으로 30전을 갚으라는데 돈이 없어 걔를 피해 다녔단다. 그러던 하루 집에 가니 아버지가 회초리로 다리가 터지게 매를 들어, 매맞는 중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단다


일기장20200807_091811.jpg


터진 다리에 된장을 발라주시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누시던 말씀이 '저 쬐껜한게 뭐하느라 30전이나 돈을 꾸었을까?' 그 뒤로는 내 것이 아닌 것에는 눈길도 안 주고 내 손으로 가꾼 것만 먹고 남으면 나눠주는 생활을 하게 됐단다


한번 배불리 먹어 남기는 게 소원이어서 젊어서부터 농민운동에 매진했는데,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절실함을 모른단다. 정말 나 어려서도 도시락 못 싸오는 애, 집에서도 보리반 감자반을 으깨 된장 하나로 끼니를 때우던 친구들도 많았다. 그때는 다들 자급자족했고 없으면 굶는게 보통이었다.


일기장20200805_140757.jpg


일기장20200805_141753.jpg


일기장20200805_144929.jpg


요즘처럼 호우 속에 읍내 장에도 안 가고 집안 텃밭에서 나오는 것들로 나날을 사니 그때 일들이 많이 생각난다. 내가 매일 푸성귀만 먹다 보니 몸이 허하다는 말을 듣고 그제는 도정 체칠리아가 마천삼거리 식육식당에서 돼지괴기를 먹여주겠다고 초대했다. 오랜만에 실비아도 보고 김 교수 부부와 도메니카, 여름방학을 맞아 갈곳없어 여주에서 택배로 부쳐온 스.선생의 큰손주도 왔다


우리 아홉 식구는 간만에 남의 살' 구경도 하고 마천강을 끼고 난 둘레길도 걷고, 마천에 새로 문을 연 그럴듯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도 마시고, 이 코로나 사태에서도 청정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맘껏 즐겼다. 도시에서라면 이사오는 날 앞집 사람 얼굴 보고 인사하고 끝!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이 이웃에 있다는 걸 몸으로 직접 확인하며 산다.


어제는 김원장님이 전화를 했다. 이 빗속에 뭐를 하느냐고, 부인 문섐이 3~4년간 써오던 책이 드디어 끝을 보고 빛을 보기 위해 출판사로 넘기고 오늘 모든 일에서 손을 뗐단다. 얼마나 크게 축하할 일인가


일기장20200806_211146.jpg


일기장20200806_193409.jpg


그래서 두 사람은 그 폭우 속에 원주에서 지리산까지 날아와 내가 후닥닥 마련한 수제비에 부추전을 먹고 포도주로 축배를 들었다. 축하여행으로 (코로나 때문에) 크루즈는 못타지만 휴천강에 나가서 송문교 위에서 배를 타고 왔다. 우리 중 단연 최고의 효자 김원장님은 한밤 중 그 빗속을 뚫고 자정까지 사립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실 당신 아버지 품으로 떠나고 우리에겐 억세게 질긴 빗줄기만 남겨주었다. 친구가 좋긴 좋다.


일기장20200807_164717.jpg

휴천강 송문교 위아래

일기장20200807_164557.jpg


오늘 하루 종일 귀로만 듣는 비가 궁금해 차를 타고 억수 같은 빗속에 휴천강을 보러갔다. 거기서 호기심이 더 동하여 송전길을 지나 용유담의 물길을 구경하고 마천에 가니 붉은 황토강이 적토마(赤土馬)의 기상으로 앞발을 들고 히~힝 콧소리를 뿜으며 달려 내려온다.


일기장IMG_8955.JPG

용유담 

일기장IMG_8931.JPG


일기장IMG_8975.JPG


우리 동네 앞을 흐르는 강은 발원지 운봉에서부터 인월까지는 람천(藍川), 산내부터는 뱀사골 물과 합쳐지고 마천에서 백무동 물과 합쳐 기세가 더욱 거세지면 말이 갈기를 휘날리며 내달리듯 여울이 심하여 마천(馬川), 그러다 우리 동네에 와서는 갑자기 흐름이 느려져 휴천(休川)이다


그래서 우리 집 당호가 임보 시인께서 지어주신 대로 휴천재(休川齋)’요 동창들이 보스코에게 붙여 부르는 호도 휴천(休川)’이다. 아래 한남마을을 지나면 강폭이 넓어져 엄천(嚴川)이고, 동강(東江)이라는 이름으로도 생초까지 흐르다 남덕유산의 남계천과 합류하면서 산청의 경호강(鏡湖江)을 이루어 저 멀리 진주 남강으로 흘러간다.


일기장IMG_8993.JPG

마천의 적토마 

일기장IMG_8989.JPG


일기장IMG_9004.JPG

 

일기장사본 -IMG_901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