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4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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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안개가 문정리 앞산 골짜기를 기어올라 비녀봉을 타고 향로봉을 향해 부지런히 산을 넘는다. 저 젊었던 시절 우리 한신대생들의 머리띠처럼 흰띠(그땐 붉은띠였지)를 두르고... 우리 청춘의 입에서 터져나오던 힘찬 구호는 이젠 저 휴천강이 외친다. 때로는 구름이 곧 주저앉을 자세로 산아래까지 내려와 강물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와 손을 잡고서 한 몸으로 어우러진다. 비온 뒤 휴천재 창가에서 내다보는 자연의 몸놀림은 항상 그 자체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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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파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이번 장맛비에 다 녹아버려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실파든 대파든 풀에 묻히거나 비에 약하다는 걸 눈으로 공부한다. 어제 읍내 치과에 나간 길에 시장을 한 바퀴 다 돌고서 딱 한 집에서 평소에 두 배는 비싸게 파모종을 사와서 오늘 새벽에 심었다. 산청 임신부님의 노동철학에 따라 한 시간 일하고 나서 꼭 쉰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해도 두세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이젠 땅에 떨어져 젖은 낙엽 같은 엄마엄마의 젊은 시절에 활달하고 생동감 넘치던 모습이 그립고도 슬프다이 근방에 귀촌한 사람들의 아낙들이 나를 보고 철의 여인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게 바로 엄마 모습이었다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에 다녀와서 하루 종일 단1분도 허투로 쓰지 않았고낮잠 한번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그런 엄마가 80을 넘기며 사그러져가던 단계단계가 눈앞에 보이며 나의 미래의 모습도 그려진다길어진 인간의 수명이 꼭 고맙지만은 않다.


장맛비로 젖은 텃밭에서 작업하는 수녀님들의 패션이 다채로워 한 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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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담양 '성삼의 딸' 수녀님들이 휴천재 텃밭의 신선초를 베러 왔다. 그걸로 담그는 장아찌 등을 팔아서 호구지책으로 삼나보다. 갓난아기가 고사리손으로 한 남자의 손가락 하나를 붙잡고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그 남정은 영영 그 아기의 포로가 된다. 예수님이 그 지엄하신 하느님을 우리더러 '아빠!'라고 부르라고 시키신 다음부터 하느님은 인류에게 꼼짝 못하신다. 더구나 하느님께 무작정 의탁하는 수도자들의 저런 신앙심에 하느님이 대책없으리만큼 꼼짝을 못하시고 먹여살리시는 것도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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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라선지 낯선 사람들이 휴천재 옆길을 자주 오르내린다. 예전 같으면 누구 집에 왔나?’ ‘누구집 자손인가?’ 밭에는 뭘 심었는지, 얼마나 실하게 자라는지 한 마디 주고받고서 지나가는데, 휴가 왔다는 해방감에는 쉽게 입이 풀리는데, 말없이, 서로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으로 묵묵히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긴 휴교 끝에 찾아온 긴 방학에 꼼짝 못하고 답답하던 손주들이, 아범이 우리 함께 한국 과자 고르는 놀이를 하자했는지 택배로 주문한 스낵과 주전부리가 계속 휴천재로 도착했다. 커다란 상자 가득히 담긴 간식꺼리 과자가 부러웠든지 스.선생이 아내 체칠리아에게 봐라! 이거 좀 배워라!” 해서 웃었는데, 오늘 그 보따리를 끌고 읍내 우체국으로 가서 과자 상자를 펼쳐 놓고 스위스 갈 EMS상자에 옮겨담는데 곁을 오가던 사람들의 눈이 순하지는 않았다. 우리 어린 시절에 주전부리를 생각하면 세태도 참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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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가타리나가 빵고신부가 휴천재에 깔아주고 간 네플릭스에서 영화 데이비드 게일을 감상하자며, 여자끼리 보자며 오늘 저녁 휴천재에 내려왔다. 체칠리아도 왔고, 실비아도 오랜만에 만났다. 남편이 돌연히 떠나고, 친정어머니도 보내드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힘겨웠으면 실비아는 머리가 하얗게 샜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엽다.


주인공 데이비드 게일은 젊고 잘나가던, 패기에 찬 텍사스 오스턴 대학의 철학과 교수다. 사형제도 폐지 운동단체인 데스 워치(Death Watch)’의 회원으로 지적이며 존경받던 대학 교수가 자기가 가르치던 벨린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백혈병을 앓고 있던 가장 가까운 동료 콘스탄스의 죽음 때문에 사람을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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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와 변호사와 언론의 공모가, 피해 당사자의 증언과 정황이 그를 성폭행범, 강간 살해범으로 만들어가는 영화를 보며 박시장 생각을 많이 했다. 자기의 혐의를 벗을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무죄한 죽음으로 사형제도의 허점을 호소하려던 게일의 희생이 과연 보람 있는 것일까


27년 전에 쓰여진 소설을 2003년에 영화 한 작품인데 어쩌면 지금도 똑같은 일이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진실이 웃을 수 있는 현실 사회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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