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28일 화요일, 장마비 주룩주룩


뉘요?” “그쪽에서 전화 하셨잖아요?” 집전화로, 핸폰으로 여러 번 전화가 왔다. “누꼬?” “아저씨, 이층집 교수댁이예요.” 유영감 목소리 같아 나를 밝히니 무슨 번혼가 있어 눌러봤단다. 비가 쏟아지니 갈 곳도 없고 오는 사람 역시 없으니 얼마나 적적했을지 이해가 간다. 내가 살아있음을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확인하려는 노인들이 간혹 전화를 걸어오는데 초면이라도 급한 일이 없으면 가능한 한 길게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 또 전화해도 되오?”라고 물어오시면 물론 또 하세요.”라고 답하지만 두 번을 해오는 분은 없다. 같은 번호를 두 번 잘못 누르는 일은 드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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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호천이가 엄마를 뵈러 갔는데 아들 며느리는 알아보시지만 희노애락이 다 사라져서 그저 담담하시더란다. 반년만에 유리청 너머로 뵙는 길이어서 소리를 거의 못 들으셔서 종이에 글자를 적어서  대화를 나누었단다. 건강해 보이시지만 이 생에 더는 미련이 없어 천국행 열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표정이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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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부터 EX-SAL모임이 하나 있었다. 보스코와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한 솥 밥을 먹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와 생활을 하지만 그곳에서의 끈끈한 정으로 일년에 한두 번씩 만났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가족 전부가 만났으니 아이들 끼라도 친했고 여자들은 지금도 누구 엄마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빵기엄마.


1980년 사진(뒷줄 가운데 네 남자는 이미 고인) 오른편 끝은 김영배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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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터라 궁금하여 오늘 아침 전화를 돌렸다. 도밍고, 시몬, 세바스티안, 아우구스틴 네 분은 돌아가시고 미망인 부인들 중에 루치아는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 전화라야 형욱이 엄마’가 주로 이어진다. 민영이 엄마는 어쩌다 전화연락이 끊겼다. 보스코처럼 수도원에 살다 나온 사람들이니 착하기만 하고 주변머리가 별로 없다보니 다들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만족한 삶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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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각자의 성격과 능력에 따라 죽음의 안배도, 남은 가족에 대한 섭리도 잊지 않으셨다. '형욱이 아빠'가 일주일에 두 번씩 신장 투석 중에 뇌졸증이 오자 병원에 입원해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었다. 멀리 호주에서 도착한 작은아들은 크게 반대했지만 김원장님의 설득으로 인공장치를 떼어내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22평짜리 연립이 남은 재산의 전부였으니 만약 지속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면 '형욱이 엄마'는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으리라. 장례식에 들어온 부조금이 병원비와 장례비로 딱 맞는 금액이었다니 그 또한 하느님의 안배였다고 감사한다. 그 당시 자신들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조언을 주신 김원장님이 참 훌륭한 의료인이시라며 그분을 위해 감사의 기도를 매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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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떠나자 큰아들이 모든 공공요금을 내주고, 남편이 들었던 국민연금에 노인연금으로 이제는 친구들과 만나 커피라도 살 수 있는 '풍족한'(?) 생활을 하노라며 "감사, 감사, 감사!"가 실은 남편이 떠나고 그미가 받은 제일 큰 유산이란다. 큰아들은 벤쳐기업을 운영하는데 잘 되고 있으며, 작은아들은 호주에서 교수생할을 하니 더 바랄 게 없겠다, 손자도 둘 보았고.


'항건이 엄마'도 요즘은 외아들이 낳아준 두 손녀를 키우느라 행복하기 이를데없다. 남편 마태오 역시 두 손녀에 흠뻑 빠져 "노경에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주셨으니..." 라며 어쩔줄 모른단다. 그 부부에 비하면 알프스 마리오가 모처럼 들어선 손자가 유산되었다면서 그 아픔을 이메일로 전해와 마음이 아프다. 큰아들은 장가나 손주 얘기가 없고 작은아들은 그래도 시칠리아 며느리라 친정집 권유대로 아기를 가졌을 텐데... (작은아들 부부는 둘다 모델활동을 한다.) 손자손녀는 인생 노래에 하느님이 주시는 가장 기쁜 선물임에 틀림없다.


휴천재 뒷꼍에 물길을 낸 게 한 5년은 되었는데 물이 안 빠진다고 보스코가 걱정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인규씨가 물길을 시멘트로 발라 하수구로 연결했는데 그 수로가 축대에서 흘러내린 흙으로 덮여 있으니 흙을 긁어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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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텃밭에 부직포 깔다 몸을 상한 노인이어서 행여 그 일을 하겠다고 보스코가 나설까 봐 노랑 고무 코팅 장갑, 노란 세숫대야와 큰고무 양푼, 구루마를 끌고 내가 나서서 하수구에 덮인 흙을 퍼내자 시멘트 바닥이 나왔다. 엄마가 실버병원으로 가시며 남겨주신 노란 양은세숫대야는 호천이가 고물장수 준다는 걸 내가 가져와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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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평생 못다한 일도 그 세숫대야에 담겨 날 따라 왔나 보다. 오늘처럼 흙도 퍼내고, 빨래도 삶고, 밭에서 농작물도 담아서 드나들고, 그 대야와 노랑 고무코팅 장갑 한 켤레, 오리궁둥이 의자면 무서운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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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하수구 뚫었다니까 용인집 하수구도 막히면 뚫으러 오라던 문부제님에게서 멀리 신탁(神託)이 왔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오늘 부엌 하수구도 마저 뚫었다. 수채구로 흘러내린 기름기가 잔뜩 끼어 거의 다 막힌 참이라 '뚜레퐁'을 부어넣고서 보스코에게 부엌 출입금지령을 내렸다(물론 이런 금지령을 어길 보스코가 절대 아니다). 문부제님, 지금도 캐나다집 하수구 막혀 뚫러 오라고 안 불러주시려나?


저녁에는 감자(감나무 밑에 '개똥감자'로 한 포기 자라던 것을 오늘 캤더니 텃밭 이랑에 하지감자라고 정식으로 심었던 것보다 튼실했다)를 삶아 올리브유에 구워 우유와 사과로 저녁을 먹으니, 고흐의 그림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란 그림 같다. 고흐의 식탁은 맨감자와 소금이 전부였겠지만 일을 끝내고 지친 몸에 가족이 함께 받는 저녁상이다. 가난하지만 그 뒤에 쉴수 있는 밤이 기다리는 삶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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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 빵고가 지난 번에 깔아준 '왓챠'에서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빛나는 친구시즌1을 보기 시작했다. 가난한 나폴리 빈민가 풍경과 사투리에 푹 젖어 이탈리아에 다녀온 행복한 기분이다. 창밖은 천둥 번개와 장마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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