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9일 일요일, 흐림


잡초는 잡초여서 속상하겠다. 자기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싹 틔우고 꽃피우고 씨를 맺어 흩뿌리는 일을 다하는데 농부치고 누구도 반기거나 고마워하거나 보살핌도 못 받고 저렇게 혼자서 살아간다. 특별히 누구를 해코지하는 것도 아니고, 빈자리에 빌붙어 조금만 살다가자는데 아무도 보아주는 이도 없다. 예전 같으면 꼴을 베서 소여물을 하거나, 퇴비로라도 쓰였지만, 지금은 톱밥에 돼지똥으로 발효시킨 퇴비가 면에서 지원하여 반값으로 공급되는 바람에 두엄에서조차 밀린다.


[크기변환]IMG_8617.JPG


그런데 밭에 가면 바랭이, 집에 오면 시엄씨라는 아낙들 노래가 나올정도로 미움받는 바랭이나 쇠비름, 개비름, 망춧대는 몽땅 소탕 했다고 허리 펴고 일어선 게 일주일도 안됐는데 다시 밭고랑 밭이랑 가리지 않고 저렇게 뻔뻔스레 자리를 다 차지했을까! 이틀간을 사력을 다해 풀을 뽑다 지쳐 더는 진을 안 빼겠다고 마천농협에 가서 부직포(1.2 X 200m)를 사왔다.


[크기변환]20200718_161716.jpg


요즘 내 밭일은 새벽 5시부터 10시 정도까지 일하고, 한낮 더위를 피해 오후에는 5시 넘어 해저물 무렵에 일을 마무리 한다. 한낮의 뙤약볕은 시골농사에 날고 기는 동네 농부들도 피하는 시간대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제 보스코가 하루 중 제일 더운 오후 세 시에 부직포를 깔겠다고 나섰다. 나야 남편이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여서 얼른 따라나섰는데, 한 고랑을 겨우 깔더니 얼굴이 노래지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인다. 심한 부정맥이 발동했다.


[크기변환]20200718_174550.jpg


잘못하다가는 일 나겠다 싶어 집에 들어가 우황청심환을 들게 하고 그냥 정자에서 쉬라고 했다. 기왕 시작한 일이니 나머지 일은 내 몫! 그 더위에 밭 나머지 전부에 부직표를 혼자서 까는데 더위도 더위려니와 보스코 걱정에 내 뒷머리마저 땅기고 지끈거렸다.


[크기변환]IMG_8557.JPG


이럴 적마다 콰레스키라는 이탈리아 작가가 쓴 신부님, 우리 신부님(원제목은 돈까밀로’) 한 대목이 떠오르게 만드는 보스코! "여보, 맹세해요, ? 다시는 오후 3시에 텃밭일 하지 않겠다고"라고 다시 맹세를 시켜야겠다. 우리집 성나중(우리 산골에는 성질 급한 귀농 또는 귀촌 아내에게서 애칭으로 불리는 남편들이 제법 있다: 신대충씨’, ‘고다음씨’, ‘전태평씨)도 분명 이 맹세는 결코 깨?뜨리지 않을 것이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1676


[크기변환]20200718_120917.jpg


어제 밤늦게 드물댁이 부엌문을 두드렸다. 서울댁 밭에서 깻닢 대가리를 쳐왔는데 자기네 집에 두었으니 가려가란다. ‘낼 서울 간다는데 친구들 나눠주면 좋아들 할 끼라면서. ‘잘됐다고 했더니만 오늘아침 휴천재를 내려오는 비탈길에 그 밭에서 깻닢 한 푸대(박까지 한 통 따서)를 더 베어이고서 얼굴이 벌개져서 언덕길을 올라오는 드물댁을 다시 만났다. ‘그거 쬐깨 갖고 누구 코에 붙이나 해서 또 해 왔다는 말씀.


[크기변환]20200719_161004.jpg


그 맘이 고마워 가져가기는 하는데 서울 냉장고에 자리도 없고 그냥 놓아두면 열에 뜨겠고... 제일 만만한 큰딸에게 전화해서 가져다가 식당하는 '둘째' 오드리한테 전해 주라고 했다. 이웃에 사는 한목사한테도 양파를 싣고 가니 가지러 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우리 본당에 가서 저녁미사를 하는데 (마스크 하고 열재고 손소독하고 이름 쓰고 장궤틀 한 줄 건너 앉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오늘 미사에는 교우가 사제와 화답하는 말도 일체 않고 해설자들이 대표로 응답을 하여 '벙어리미사'가 됐다! 개신교에서 온 신자라면 평소에도 성당 미사는 교회 예배에 비해서 사제 혼자 공연하고 신자들은 '관람'하는 것처럼 보일텐데(구교우들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오늘 미사는 그야말로 눈요기미사’였달? 코로나를 보내는 바람에 하느님 받으시는 제사가 참 허름해져버렸다!


[크기변환]IMG_8579.JPG

이번 비로 휴천강 물이 제법 불었다

[크기변환]IMG_8593.JPG


밤늦게 헐레벌떡 부천에서 도착한 이엘리가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 “오드리 기다리겠다. 저거 빨리 갖다 줘라!” “나 문턱도 아직 안 들어섰는데!” 하는 소리에 아차, 실수다!’ 생각은 했는데("외손주 등에 업고 친손주 걸리면서, '빨리 가자. 애기 발 시럽겠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큰딸 참 속좋은 여자다


그 많은 집안식구들, 그 많은 교구활동들, 거의 까무러칠 지경의 손녀사랑으로 봐서 하느님이 저 딸한텐 착한 마음 보따리를 하나쯤 더 주신 것 같다. 저런 딸이 내 배도 안 아프고 공짜로 굴러들어왔으니 제일 복이 많은 건 바로 우리 부부다. (참고: 네 딸이 서로 지칭하기로 둘째 오드리는 '어무이가 데꼬 들어온 딸', 셋째 미루는 '아부이가 데려온 딸', 첫째와 막내 두 엘리는 '계모 밑에서 서러운 전실자식'이라는데...)


[크기변환]20200719_20252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