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4일 화요일, 종일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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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도 왔다. 그러나 소란스럽지도 부산스럽지도 않게 조용히 얌전하게 조손하게 왔다. 2충 데크의 측우기딸기그릇은 벌써 차서 넘쳤고, 아래층 테라스 양푼에는 찰랑찰랑하니, 200m 이상 온 셈이다. 새벽녘에 비가 제일 많이 내렸으니 아침에는 이미 물이 많이 빠졌다. 그래도 송문교 다리 밑에서 춤을 추는 황토색 강물의 춤사위를, 그동안 가뭄에 맘 조린 생각을 하면, 그냥 넘길 수 없다. 큰물 지면 우리는 송문교에 배타러 간다. 배의 속도는 물량과 물살의 속도에 정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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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안와 실개천처럼 물이 흐르면 좀처럼 배가 떠나질 않지만 오늘처럼 물이 많을 때는 눈길이 풍랑에 닿는 순간 벌써 배는 달린다. 내려오는 물길을 거슬러 무섭게 전진을 하고, 떠내려가는 물길은 빠르고 격하게 뒷걸음친다. 우리 둘이 함께 다리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가며 신나게 배를 탔다. (깊은 산속 개울에서 여객선 타는 법: 다리 위에서 아래로 세차게 흐르는 물길과 다리난간을 멀거니 내려다보고 있으면 여객선을 타고가는 착시효과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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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어제 진드기에 물린 자리를 보건소 소장에게 보여주러 보건소로 가고, 보스코는 장화 신고 커다란 우산을 쓰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제 남해 가는 차에서부터 에어컨이 춥다고 몸을 떨더니 어제 바람에 날리는 이슬비에 젖은 옷 때문에 감기가 됐나 보다.


내가 몸에 붙어 피를 빠는 현행범 진드기의 사진을 보여주자 보건소장 처녀는 일주일쯤 지나야 쯔쯔가무시병 여부를 알 수 있단다. 허리춤에 팓알만하고 매끈매끈한 딱지가 느껴져 손톱으로 잡아올리는데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그야말로 찐드기다! 그런데 '살인찐드기' 물린 자리는 노랗게 딱지가 앉는단다. 살인진드기가 옮기는 쯔쯔가무시병엔 예방주사가 없다니 진드기가 맨살로 못 들어가게 몸을 꽁꽁 묶고서 일 나가고, 집에 와서는 몸은 싹싹 아니면 박박 잘 씼고, 밭에서 입었던 옷은 매일 탁탁 털어 빨아야 한다는, 일장 훈시만 듣고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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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부터 보스코가 잠자리에서도 오슬오슬 춥다더니 열이 나고 몸살이 났다. ! 그 말에 코로나-19’가 직통으로 연상된다. 코로나에 걸리면 제일 큰 걱정이 가까운 친구들에게 병을 옮겨 줄지도 모른다는 자책! 더구나 보스코의 지병인 심장은 어찌하나? 그러나 오지도 않은 불행을 먼저 불러내 괴로워하는바보짓은 안할 나이가 됐기에 약을 챙겼다. 그런데 자기가 이미 찾아 먹었노라는 보스코. 밤새 몸살과 열 감기로 끙끙 앓기에 도대체 무슨 약을 먹었나 물어보니 맥문동을 먹었다나? 기가 막혀, 해열 진통제를 찾아서 4시간마다 먹자 오후에는 열이 떨어졌다.


그와 살면서 실생활에 관한 한 내가 박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럴 때 나더러 잔소리를 한다고 흉보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네끼리는 큰소리로 싸울 게다. ‘그런들 어떠랴! 부부가 이레저레 살다 같이 늙어가고 함께 하느님께로 떠날 일만 남았는데?‘ 이렇게 마음이 편하니 나이 드는 것도 좋은 일이다.


긴 장마에 집안이 습해서 에어컨에서 제습을 돌리니 실외기가 돌지를 않는다. 다행히 비도 오고 날씨가 덥지를 않아선지 AS기사 둘이 오늘 왔다. 참 빨리 왔다. 기사는 서재 창을 열고 식당 채 지붕을 밟고 서서 에어콘 실외기를 점검한다. 실외기 기판을 열자 생쥐가 감전되어 죽어있고 회로는 합선되어 돌기를 멈춰 있었다! 기판에는 딱정벌레들도 단체로 들어왔다 겨우내에 얼어죽어 있었다. 기사들의 말로는 어느 집은 지네나 새, 뱀이 들어가 사고를 쳐 놓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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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엔 KT기사가 출장와서 휴천재 와이파이 선을 쥐가 갉아 끓어놓았음을 발견했고, 오늘은 생쥐가 에어컨 기판을 아작냈고! 요즘 방에서 간간이 쥐똥도 눈에 띄던데... 밀림의 생활이 따로 없다. 내가 워낙 강심장이어서 휴천재 서재의 보스코 책상위에 또아리를 하고 있던 뱀도 쓰레기통에 몰아넣어 밖으로 쫓아내고, 개구리 두꺼비들과는 아예 친구하고 지낸다. 그것들 무섭다고 악악거릴 나였으면 서울을 떠나지도 않았겠지!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을 사랑스런 눈으로 지켜보고 친밀한 손길을 내밀면 다 친구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5464: 휴천재, '동물의 왕국'


오후 늦은 시간부터 비는 다시 내리고 얼마 전 병원에서 퇴원한 유영감님이 몸에 비를 온통 맞으며 아직도 논두럭을 손질하고 있다. 저분의 머릿속에 하느님이 남기신 마지막 미션이 논두럭 손질인가 보다. 저러다가는 자칫 논두럭에서 전지전능하신 농부를 만나뵙겠다고 할까? 창조주를 만나는데 어디 장소가 따로 있겠나, 온 우주가 당신 손 안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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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낳고서 아들 덕에 성녀가 된(?) 어머니 모니카가 이역 땅에서 숨을 거두며 하느님께로부터 먼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세상 종말에 그분이 어디에서 나를 부활시켜야 하실지 몰라보실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단다.”라던 말마디가 귀에 맴돈다. 주님! 구름으로 흐릿한 산 그림자에 물안개가 기대고 있는 아름다운 이 세계 어디에서도 당신의 숨결과 손길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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