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2일 목요일, 흐림

   [지난 3일부터 오늘 6일까지 휴천재 인터넷 고장이어서 일기 늦게 올렸습니다]

구름 아래지만 산하가 오롯이 제 빛을 간직한 채 아침을 맞는다. 하지가 지난 지 열흘. 낮의 길이는 점점 줄어들어도 7, 8월은 햇볕의 열기로 지상의 모든 생명을 영글게 한다. 그래서 나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을 좋아하고, 밤이 짧고 낮이 길어 모든 것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어 새벽부터 낮을 기다린다.


일기장20200630_061658.jpg


말라서 못 먹는 감자를 감나무 밑에 버렸더니 싹이 나고 뿌리를 내려 엄지손톱만한 새끼 감자들이 조랑조랑 매달려 힘을 키우고 있었다. 생명은 어디서나 이렇게 놀랍다. 나는 생명의 경이를 그려내며 아침상에 앉았는데, 보스코는 요즘 침대에서 밤마다 읽다 잠드는, 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가 생각나선지 전혀 색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휴천재에서는 아침상이 제일 걸다. 우리네 아침상 첫접시는 (불루베리+꽃가루+아로니아가루+아몬드+호두를 넣은) 야쿠르트, 두번째 접시는 계란과 토마토와 파프리카, 세번째로는 떡이나 빵을 차나 커피와 함께. 마지막으로 과일들(사과, 참외, 수박, 키위, 오렌지 등) 한 접시. 물론 양이 넘치지 않도록 한 조각씩 정도 먹는다.


이걸 다 준비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고, 기다리다 못한 보스코가 날라가는 대로 먹기 시작하니까 그가 다 먹을 즈음에야 주부인 내가 식탁에 앉는다. 그는 새벽 일찍 일어나 번역작업을 하고 글을 쓰는 터라(우리 몸의 에너지 대부분을 뇌가 소비한다니까) 배고플 시간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고, 내가 밥상에 앉을 즈음에는 그냥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는 터라 전혀 불편함이 없다.


일기장사본 -20200702_173124.jpg


여보, 사람이 죽으면 여러 종류의 파리들이 모여드는데 죽은 시간에 따라 오는 파리의 종류가 다르데.” “... ...” “맨마지막에 오는 파리는 시체에서 나오는 추기물을 빨아 먹는데.” “... ...”(나는 말없이 열심히 먹는 중) “그런데 여보, 미국에는 시체농장이 있데. 시체에 따라 썩어가는 모양과 순서가 다양하고 시체를 세밀하게 관찰하여 얻어지는 지식이 법의학 발달에 도움이 크데.” “... ...”(, 다음엔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여보, 저자 샐리 티스데일은 자기가 제일 선호하는 장례식이 있데, 비용은 제법 많이 들지만. 영하 175도로 시체를 얼려 크리스탈처럼 단단해진 상태에서 산산조각으로 부숴뜨린데. 크리스탈 가루를 땅에 묻는 거라 저자는 크리스탈 상태로 묻히고 싶다는 얘기야.” “... ...” (작가가 땅에 묻히니까 송장 얘기가 끝나겠지) ”그런데 제일 재밌는 건 후손들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유골을 가루로 빻아 폭죽으로 쏘는 장면이야. 수장도 아니고 수목장도 아니고 이건 공중장이야.“ ”... ...“


아내의 식욕을 돋궈주겠다는 이야긴지, 나더러 다이어트를 하라는 이야긴지 모르지만 나도 밥을 다 먹어갈 즈음인데 아직도 그 이야기가 이어질까 싶어 내가 한마디 한다. “여보, 아침 식탁의 대화 소재치곤 정말 쿨(= 썰렁)하다 그치?” 그때서야 이성을 찾은 보스코와 드디어 포크를 내려놓던 나는 함께 '터졌다.


일기장20200703_090310.jpg


일기장20200702_192458.jpg


일기장20200702_193627.jpg


이주여성인권센터의 긴급안건이 생겨 임시총회 소집으로 서울엘 왔다. 어제 오후 2시 버스로 함양을 떠나 6시 반에 우이동집에 도착하니 정원손질하기에 딱 좋은 시각. 마당의 잡초를 뽑고 기생초를 심어주고 나니 어둠 속에 들리는 건 모기소리뿐. 우이동 모기들이 모조리 모여서 내 등허리에서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지리산 텃밭을 손질하다 보면 서울집 일은 그야말로 '껌'이다. 혼자 남겨두고 간 뜰에도 능소화는 담밖으로 한창 뽐을 내는 중이고, 분홍 루드베키아도 (그 꽃을 갖다 주고 떠난 친구 말람이의 추억을 간직한 채) 곱게 피었다. ‘무상한 아름다움에 슬픔이 문득 치민다. 넝쿨장미도 부지런히 감아오르고, 수국도 가지마다 자잘한 꽃몽오리를 가득가득 채우는 중이다.


일기장20200702_184911.jpg


183622.jpg


일기장20200702_180618.jpg


일기장20200703_093612.jpg


자정이 다 된 시각에 갈려온 보스코의 전화. 어제 오후 한나절, 나없는 사이에 사고를 쳤노라는 자랑. 휴천재 입구에 독일가문비 나무 세 그루가 20여미터 자라올랐는데 한 그루는 능소화의 지주노릇을 해주고 있고, 정자 옆의 다른 두 그루는 워낙 가지를 넓게 펴 정자 지붕을 덮고 주목 한 그루를 사정없이 내리누르고 있다. 그 나이에 제발 사다리 타고 높이 올라가지 말라고, 더구나 전기톱 들고 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아내의 잔소리가 멀리간 틈을 이용해서, 벼르고 벼르던 끝에, 드디어 가문비 나무 두 그루에 가지치기를 왕창 해 놓았단다! 베어낸 가지도 전기톱으로 뒷처리를 했노라는 자랑이다. 


일기장20200703_111222.jpg


일기장20200703_111644.jpg


오늘 오전 11시 삼선교의 하나다문화센터 '다린'에서 임시총회로 안건을 마무리하고, 또래인 김상림교수와 한목사랑 커피 한잔을 나누었다. 3시에는 보스코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휴천재에 내려가겠다는 엄엘리네 부부를 모란역에서 만나 그 집 차로 함께 내려왔다.


덕유산을 지나며 내리던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고, 휴천재에 도착하자 보스코가 우리 세 사람을 (판문점 이산가족처럼) 반가이 맞아주고, 엘리가 싸온 먹거리로 저녁을 하고서 논에 개구리 소리도 빗소리에 묻혀 잠드는 시각까지 우리는 민트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리 부부는 보스코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드라이아이스로 물안개도 피워 올리며 생일을 축하해 주니 보스코는 천진하게도 웃고 놀았다, 아이처럼.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그저 좋기만 한 보스코는 낼모레가 80인데도 정신연령은 여덟 살이다.


일기장20200703_194556.jpg


일기장20200704_111803.jpg


일기장20200703_202003.jpg